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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속 공룡 DNA는 진짜일까

DNA는 1백만년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세마리의 개미가 사마귀를 공격하고 있다.


1993년 6월 개봉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은 호박(amber)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영화의 원작은 1990년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쥐라기 공원'이다. 그 서막은 이렇다.

공룡은 1억6천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로 6천5백만년 전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화석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유전공학과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공룡 복원이 가능하게 됐다.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진이 굳으면 호박이 된다. 이 호박 속에서는 수많은 곤충이 발견되는데, 그 중에는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후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진을 피하지 못하고 갇힌 모기가 있었다. 모기는 나무진과 함께 호박이 됐다. 과학자들은 이 모기의 뱃속에서 공룡의 피를 꺼냈고, 그 피를 이용해 공룡의 DNA를 찾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안 투자가들은 과학자들을 코스타리카의 한 섬으로 불러들였다. 이곳에 공룡공원을 만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룡을 복원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쥐라기 공원이다.

쥐라기 공원은 6개월 동안 미국에서만 3억1천2백만달러를 벌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실감나게 그려낸 공룡시대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공룡 복제가 실제 과학의 힘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도 화제가 됐다. 정말로 호박 속의 모기로부터 공룡의 피를 뽑고, 공룡의 DNA를 찾아내 복제해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우선 영화와 소설이 허구의 세계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소재로 쓰인 호박이 잘못 선택됐다는 지적이 있다. 쥐라기 공원에 등장하는 호박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산출된 것이다. 도미니카 호박 속에서는 많은 곤충이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도미니카 호박은 2천만년 전에서 4천만년 전의 것으로 공룡이 살았던 시대(2억3천만년 전-6천5백만년 전)와 큰 차이가 있다.

공룡시대에 형성된 호박은 수없이 많다. 백악기 시대의 호박이 발견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는 미국의 알래스카, 캐나다 시다호수와 그래시 호수, 일본의 초시와 구지 지역, 영국의 와이트섬,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스위스, 러시아 타미르 지역 등이다.

그래서 호박 속에서 공룡의 피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수많은 호박 속에서 공룡의 피를 간직한 곤충이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공룡 DNA를 찾아내는 일의 초석이 될 곤충 DNA 찾기에 돌입했다.
 

흑파리가 거미줄에 걸려 있다가 호박 속에 갇혔다.


곤충 DNA 찾기

동물이 죽게 되면 그 세포조직은 물, 효소, 산화물질 등에 의해 파괴된다. DNA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수천만년이 지난 화석에서 원래의 DNA를 복원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1985년 화석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DNA의 흔적을 크게 확대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 기술은 중합연쇄반응(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이라는 것으로, 화석 안에 들어있는 작은 DNA 조각으로부터 1조개의 복사본을 만들 수 있다. PCR 기술은 개발된 첫해에 2천5백만년 전의 이집트 미라에서 인간의 유전자를 추출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고대동물의 DNA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PCR 기술은 '가뭄에 단비'였다. 학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 1천3백만년 전의 땅나무늘보의 DNA, 4만년 전의 털매머드의 DNA를 찾아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호박 속에 갇힌 동물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92년 미국자연사박물관의 롭 드살레, 와드 휠러, 데이비드 그리말디, 존 가테지 일행은 호박 속에서 곤충의 DNA를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그들은 히스패니올라(하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서인도제도의 섬)에서 출토된 호박으로부터 2천5백만년 전의 흰개미 DNA를 추출했다. 이 과정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996년 4월호에 데이비드 그리말디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 1993년에는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분교)의 포이나 박사팀과 캘리포니아 과학기술주립대학의 라울 카노 일행이 레바논에서 출토된 호박에서 1억2천5백만년 전의 바구미 DNA를 추출했다.

이 바구미 DNA는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1억4천만년 전-6천5백만년 전) 시기의 것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바구미는 공룡의 피를 빨지 못하는 초식곤충이었다.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백악기의 호박 화석들이 제공한 매우 중요한 정보가 또 있다. 이때부터 꽃을 피우는 식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꽃을 피우는 식물의 진화는 개미, 흰개미, 꿀벌, 나방, 나비, 딱정벌레와 같은 오늘날의 곤충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이때 등장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호박 속에 갇힌 곤충의 조직으로부터 그 DNA를 추출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학자는 캘리포니아 과학기술주립대학의 라울 카노 박사다.

카노 박사는 1993년 1억2천5백만년 전의 바구미 화석으로부터 DNA를 추출했을 뿐더러, 1995년에는 2천5백만년 전-4천만년 전에 살았던 벌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를 호박 속에서 찾아내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기도 했다. 고대동물의 DNA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 긍정론자들은 대부분 그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호박 속의 곤충 DNA 연구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 먹구름 중 하나는 DNA가 1백만년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1993년 임페리얼 암연구재단에서 DNA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토머스 린데일 박사는 "1백만년 이상 지나면 DNA를 찾을 확률이 10만분의 1로 떨어진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 하나의 먹구름은 PCR이 너무 성능이 좋아 고대의 DNA이든 현재의 DNA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증폭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호박 속에서 발견된 고대 곤충의 DNA는 후세의 다른 DNA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리말디 박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996년 4월호에서 고대 곤충 DNA 찾기에 대해 여전히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4000만 년 전의 도미니카 호박 속에서 동물의 DNA를 추출했던 드살레(오른쪽)와 휠러(왼쪽). 드살레는 최근 호박 속에서 DNA를 발견할 수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탈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1997년 10월 18일 영국의 주간 과학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실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리처드 토머스팀은 3년 동안 호박으로부터 고대동물의 DNA를 재생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리고 두가지 결론을 얻었다. 고대 DNA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DNA에 의해 오염된 것을 추출한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어느 시대의 DNA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발견된 호박 속의 고대동물 DNA는 믿을 수 없다는 것.

"우리들은 지난 3년 동안 고대동물의 DNA를 추출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이뤄낸 성과를 같은 방법으로 검증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어떤 DNA도 고대 나무진 화석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토머스는 "우리는 지금까지 성공했다고 보고된 어떤 논문보다 많은 표본을 가지고 실험했다"며 자신들의 연구야말로 완벽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미국 자연사박물관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한때 그리말디와 더불어 호박 속에서 고대동물의 DNA를 찾았다고 주장했던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롭 드살레도 백기를 들었다. 그는 "영국자연사박물관의 연구 결과는 완벽했으며, 그들이 수집한 데이터는 더 이상 논쟁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스미소니언박물관의 마이클 브라운 역시 "고대동물의 DNA를 복원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며 허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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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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