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제 보물 1호입니다.”
한국천문연구원 박석재(49) 원장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지고 누렇게 색이 바랜 소책자를 내밀었다.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의 내용을 보여줬다. 그의 손길에는 책에 대한 애정을 넘어 약간의 경외감이 묻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방학 때 전과와 수련장을 베껴서 나름대로 만든 천문학 책이다. 연필로 또박또박 태양계 행성의 특징을 썼으며 달이 차고 기우는 원리나 별자리 그림도 멋지게 그렸다. 어린 천문학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미국 유학 시절에 공부하기 힘들 때마다 이 책을 넘겨보면서 ‘이때만 못하면 안 된다’고 하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박 원장은 말했다. 이 책이 그의 인생에서 나침반 역할을 했던 셈이다.
천문학 향한 외길 수순
그는 한국인 블랙홀 박사 1호다.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에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블랙홀 모델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블랙홀은 빛조차 꿀꺽 삼키는 특이한 천체다. 언제부턴가 그의 이름 앞에는 ‘블랙홀 박사’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바둑에 외길 수순이란 게 있죠. 제 인생은 천문학, 즉 블랙홀을 향한 외길 수순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의 일방통행 길에는 천문학이란 학문만 놓여 있지 않았다. 그 길에는 학문의 선후배, 천문학을 좋아하는 어린 학생,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이 중요하게 자리해왔다. 과학 대중화의 전도사다운 이력이다.
박 원장은 “어린 시절 대전 변두리 유등천에서 늦게까지 물고기를 잡다가 올려다본 밤하늘이 우주에 대한 첫인상”이라며 “은하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그는 요즘 아이들이 은하수처럼 별이 쏟아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우주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우주의 진면목을 봐야 영화를 만들어도 한국판 ‘스타워즈’를 만들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중·고등학교 때 그는 ‘학생과학’ 같은 잡지를 보다가 블랙홀을 처음 접하고 신비한 천체의 매력에 한껏 빠졌다. 대학 때는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 ‘골치 아픈’ 일반상대성이론을 독학하기도 했다. 이때 변변한 블랙홀 교과서가 없어서 몹시 아쉬웠다고 한다.
198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텍사스대에서 지도교수 에단 비시니액 박사를 만나면서 블랙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천문인 10만양병설
박 원장은 대학 시절 아마추어 천문학 활동도 즐겼다. 대학 때 후배들과 함께 망원경을 들고 산으로 가 천체를 관측하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우주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몰랐으니까. 그의 노력 덕분에 1979년에는 ‘제1회 한일 친선 별 관측대회’가 4박 5일 일정으로 국내에서 열리기도 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에도 아마추어 천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1991년 그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KAAS)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20세기 말까지 회원의 수를 10만 명까지 늘리고자 하는 ‘10만양병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1992년 그는 한국 아마추어 천문인 모두에게 길이 남을 사건을 터뜨렸다. 과학동아와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KAAS가 후원한 ‘제1회 대기오염 측정 전국 별자리 관측’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켰던 것이다. 전국의 도시에서 밤하늘의 직녀성(거문고자리 으뜸별 베가)을 관측해 그 도시의 대기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행사로 학계와 일반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992년 천문연구원에 들어온 뒤에도 그는 연구실에만 틀어 박혀 있지 않았다. ‘블랙홀 박사’의 과학 대중화 노력은 계속됐다.
과학, 특히 천문학을 일반인에게 알리려는 박 원장의 열정은 남다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우주 쇼가 펼쳐지거나 과학 관련 이벤트가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대중 강연이나 방송에 해설자로 참여했다.
“우리 민족은 자랑스러운 ‘우주 민족’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게 안타깝습니다.”
박 원장은 태극기가 세계 수많은 국기 중에서 유일하게 ‘우주의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한국인이 사람 이름을 지을 때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진다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또 하늘이 열린 날, 즉 개천절을 기념하는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SF 집필에서 전기기타 연주까지
2001년에는 대전시를 설득해 대전시민천문대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이후 시민천문대는 붐이 일어 곧 전국에 10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2005년 초에는 1993년 대전 엑스포의 마스코트였던 외계인 ‘꿈돌이’를 되살리는 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박 원장은 “10여 년 간 총 3600명이 넘는 교사를 대상으로 2박3일의 천문학 연수를 진행했던 게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지하실에 외계인의 시체가 묻혀 있다고 하면 비웃음만 사요. 그런데 왜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외계인을 조사한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근엄한 블랙홀 박사가 국가정보원과 외계인이 등장하는 과학소설(SF) ‘코리안 페스트’를 집필했다. SF 불모지에서 나름대로 참신한 시도였다.
물론 SF 이외에 다른 책도 많이 냈다. 별과 우주를 다룬 천문학 교과서에서부터 블랙홀에 대한 흥미로운 교양서 ‘블랙홀이 불쑥불쑥’까지 다양한 책을 썼다. 어렸을 때 읽을 만한 과학책이 없어서 겪은 아쉬움이 컸던 이유도 있다.
현재 우주신령, 은하신령, 지구신령이 나오는 어린이용 만화도 ‘어린이 과학동아’에 기고하고 있다. 이 연재만화는 미국에 유학 가 있는 딸과의 합작품이다. 그가 간단하게 스케치를 해 e메일로 보내면 딸이 예쁘게 색을 칠한다고 한다.
박 원장이 난데없이 DVD를 틀어줬다. TV 화면에는 전기기타를 열정적으로 치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곡은 별 이야기를 담은 ‘대덕 밸리의 밤’. 그가 직접 작사와 작곡을 했다고 한다. 최근 이 곡을 ‘프렌즈’라는 밴드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는데 이 모습을 DVD로 만들었던 것이다.
지난 5월 말 한국천문연구원장에 취임한 그는 15년째 몸담고 있는 연구원에 대한 책임을 막중하게 느끼고 있다. 천문연구원이 국내 다른 연구원에 비해 인력, 장비, 예산, 성과 등 모든 면에서 뒤져 있는 걸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한국 천문학의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방안을 털어놓았다.
박 원장은 “일본이나 미국처럼 대형 망원경을 해외에 건설하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며 “그러면 우리 천문학이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을 따던 소년이 별 박사가 된 후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청소년기에 하고 싶은 것을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하다. 방학을 이용해 시인이나 작가가 될 사람은 시나 소설을 써보고 영화감독이 꿈인 사람은 영화를 찍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해보면서 느끼는 게 많기 때문이다. 물론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우주여행에 나서 보자. 또 인생을 설계하거나 우주를 알기 위한 훌륭한 가이드로서 교과서 이외의 잡지 같은 책을 많이 읽으라. 자신이 알고 싶은 세계를 풍부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