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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이유 있는 심술꾸러기

경부대 미생물학과 교수 이재열

“30년 동안 바이러스를 연구했지만 아직도 그 마음을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때로는 쏙 감춰버리죠.”
낙엽으로 가득한 경북대 교정에서 이재열 교수(55)를 만났다. 이 교수는 최근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를 펴냈다.

“한 달 동안 바이러스로 실험한 적이 있는데 내내 실패했죠. 아무리 환경을 바꿔도 안됐어요. 내심 포기했는데 한 달 만에 갑자기 결과가 나오더군요. 아직도 이유를 몰라요.”
이 교수의 말을 듣다 보니 바이러스가 마치 심술꾸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조류 인플루엔자를 비롯해 에이즈 등 각종 병원성 바이러스도 인간에게 심술을 부린다. 과연 바이러스의 ‘이유 없는’ 심술일까. 그는 아니라고 고개를 젖는다.

“인간이 자기 편하겠다고 환경을 너무 바꿨어요. 새로운 환경을 만든 거죠. 인간에게는 좋지만 바이러스로서는 낯설고 불편해요. 이것이 강한 저항을 부른 겁니다.”바이러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필사적으로 변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무서운 병원성 바이러스가 탄생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래도 조류 인플루엔자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미지의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대상이다.

“치사율만 보면 에볼라 바이러스가 가장 무섭죠. 80~90%는 죽으니까요. 그러나 에볼라는 바이러스 처지에서는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니까요. 두고두고 끈질기게 괴롭히는 바이러스가 최고의 독종이죠.”

바이러스는 생태계의 조절자

그래도 바이러스를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일부 시각은 옳지 않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실 바이러스 앞에 툭하면 ‘병원성’이라는 말이 붙고 심지어 ‘악성’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붙는다. 이 교수는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조절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누군가가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힘이 바이러스에 있다.

69학번인 이 교수는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농대에 진학했다. ‘살아 있는 것을 무지하게 좋아 한’ 그는 특히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곤충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누에를 제외하면 농대에서 배우는 곤충은 대부분 해충이었다. 병을 옮기는 해충을 살펴봤더니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독일로 유학가서 DNA를 다루는 분자생물학까지 전공하게 됐다. 이 교수는 “하다 보니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예전만 해도 한국에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이러스를 키우기 위해서는 숙주를 키워야 한다. 돈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든다. 어떻게 키우는지 노하우도 잘 몰랐다. 그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려면 자식처럼 친구처럼 이야기하듯 실험해야 한다”며 “이만큼 먹이를 줬으니 이만큼 자라야 된다는 생각 바이러스를 지배하려는 마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책에서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생을 강조했다. 바이러스를 친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도 아니다, 천연두 바이러스를 몰아낸 것은 두창 바이러스였다, 바이러스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생은 필연적인 미래”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가 1990년 지도교수로 신입생을 만났을 때였다. 30분 가량 미생물에 대해 이것저것 들려줬다. 강의가 끝나고 그에게 문득 ‘과연 학생들의 머리 속에 뭐가 남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4학년 학생들을 만나 ‘미생물’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말하게 했다. 큰 칠판에 두 번에 걸쳐 받아 적은 것을 비슷한 것끼리 모았다. 5년 동안 틈틈이 각 주제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출판사 편집장을 만나 보여 줬더니 “내용이 좋다”며 좀더 쉽게 쓰라는 말을 들었다. 쉽게 쓰는데 2년이 걸렸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1997년)라는 첫 책이다.

앞으로 생활 속의 미생물에 대해 책을 쓸 계획인 이 교수는 과학도들에게 인문, 예술 분야의 소양을 갖춰달라고 당부했다.

“독일에 유학을 갔을 때 지도교수가 고려청자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나는 공부하러 왔다’라는 궁색한 변명 밖엔 못하고 나선 정말 부끄러웠어요. 과학에 예술과 문학이 더해져야 합니다.”
 

이재열^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기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 생화학 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경북대 미생물학과 교수로 있다. '우리 몸 미생물 이야기' '자연의 지배자들' '보이지 않는 권력자' '바이러스학'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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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박창민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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