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농림부는 조류독감 예보를 발령했다. 동남아시아에 이어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 주변국에서 조류독감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조류독감을 전파시키는 요인인 가창오리, 청둥오리, 기러기 같은 철새들이 10월 말부터 우리나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조류독감은 철새가 갖고 있는 바이러스가 닭, 칠면조, 오리, 거위, 메추리 같은 가금류에 감염돼 나타난다. 감염되면 사료를 잘 먹지 못하며 몸이 붓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한다. 또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급기야 집단폐사에 이른다. 호흡기 분비물이나 배설물을 통해 다른 조류에게 전염된다.
최근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는 H5N1. 인체가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변종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없어 치명적이다. H5N1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 인체에 감염된 이래 지금까지 캄보디아,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에서 117명에게 감염됐고, 60명이 사망했다. 얼마전 루마니아와 터키의 가금류에서도 H5N1이 발견됐다.
농림부는 축산농가에 축사, 사료창고, 분뇨처리장으로 철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물망이나 비닐을 설치하라고 강조했다. 농장에 출입하는 사람과 차량을 철저히 소독시키고, 축산 종사자는 조류독감이 발생한 나라나 철새도래지 여행을 자제하도록 권유했다.
인체감염을 우려한 나머지 세계 곳곳에서 조류독감 발생 국가의 가금류 수입을 금지하거나 항바이러스제를 구입해 미리 복용하려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75℃의 온도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바이러스의 독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충분히 익혀 먹으면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 H5N1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타미플루와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리렌자는 먹어도 항체가 생기지 않아 예방 효과는 없다. 감염됐을 때 주변으로 급속히 전파되는 것을 일시적으로 막을 뿐이다.
지금까지 감염된 사례는 가금류와 직접 접촉하는 사육업자들이 많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조류의 배설물이나 분비물이 사람의 발이나 옷, 곤충, 사료, 운송수단, 장비 등에 묻어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닭이나 오리를 마당에서 직접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도 비슷한 경로로 감염된다. 결국 철새, 가금류, 사람이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할 경로가 차단된다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는 “조류독감 인체감염을 막연히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만약을 대비해 “70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하고 있으며, 금년 중 2만명분을 추가 비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철저한 대비는 필수지만 과열된 불안은 금물이다.
올해는 철새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 유달리 곱지 않다. 철새도래지를 보호하자는 주장은 온데간데없다. 철새 때문에 인간이 신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 것처럼.
동물의 질병이 인간으로 넘어온 사례는 여럿 있다. 최근 미국과 호주 연구팀은 2003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원인인 코로나바이러스를 야생박쥐에서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야생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이를 식용이나 약재로 쓰는 과정에서 인체로 들어와 다시 여러 사람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니파바이러스 뇌염도 마찬가지. 199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에서 농지를 확장하기 위해 삼림을 개발하다가 과일박쥐에 서식하던 니파바이러스가 돼지에게 들어온 다음 인간도 감염시켰다. 에이즈도 비슷한 경우다. 아프리카 원숭이의 바이러스에 탐험가가 감염돼 인간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밀림에 있는 야생동물은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며 “산업화가 진행되고 밀림을 개발하는 동안 바이러스가 사람과 접촉하면서 점점 적응해 신종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가만히 있는 벌집을 일부러 건드린 격.
철새들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로로 여느 해처럼 이동하고 있을 뿐이다. 조류독감에 대비하되 철새를 원망하지는 말라. 자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