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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하늘에 풍선 띄워 우주를 보다

이화여대 대학원생의 남극 일기

한국을 떠나 남극으로 향한 것은 지난해 11월 13일이다. 절기상 여름인 뉴질랜드에서 눈부신 햇빛을 맞으며 남극으로 향하는 군용기로 갈아탔다. 6시간 내내 기내에는 소음이 떠나지 않았다.

군용기에서 내리자마자 온통 흰색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보였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지평선과 그 지평선 위로 드문드문 솟아 있는 산맥들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사진으로 붙여놓은 듯 했다.
 

뉴질랜드에서 군용기를 타고 6시간 만에 남극에 도착했다. 옷을 껴입어 뚱뚱해진 사람들이 펭귄처럼 보였다.(오른쪽이 필자).


온통 하얗던 남극의 첫 날

내가 머물렀던 남극 맥머드 기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처음 상상했던 것은 조그마한 집 몇 채였지만, 실제로 본 것은 하나의 마을이었다. 맥머드 기지는 남극 대륙 로스섬에 있다. 여름에는 1000여명이나 살 수 있다. 사람들이 일정 기간 동안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었다. 서너 개가 넘는 기숙사가 있으며, 냉장고조차 하나의 건물이었다. 석유 저장고, 발전소, 체육시설, 식당, 과학센터 등이 있었다.

과학센터의 한 구석에 사람들이 서넛 앉으면 적당할 정도의 자그마한 방이 바로 우리 팀을 위해 마련된 사무실이었다. 우리가 실제 실험을 하는 장소는 윌리엄 필드(William Field)로 불리는 곳에 있다. 그곳은 기지에서 차를 타고 약 20여분이 걸린다. 셔틀 버스로는 1시간이 걸린다.

내가 참여한 연구프로젝트의 이름은 ‘크림’(CREAM·Cosmic Ray Energetics And Mass)이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물리학과가 주도하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해 메릴랜드대와 이탈리아 피사대 등이 참가했다. 특히 메릴랜드대 서은숙 교수가 이 연구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다. 남극에 거주한 우리 팀 20여명 중 나 외에도 5명이 메릴랜드대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 과학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서 교수는 이화여대 객원교수로 계셔 만날 기회가 많았고 추진력과 연구능력이 탁월한 여성과학자로서 내가 앞으로 꼭 닮고싶은 분이다.

크림 프로젝트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아주 높은 에너지를 가진 초고에너지 우주입자를 찾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원자핵으로 이뤄진 초고에너지 입자의 에너지는 무려 1000조 전자볼트(eV)에 이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높은 에너지보다 1000배 이상 높다. 1912년 오스트리아 과학자 헤스가 초고에너지 입자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지만 기원과 성질 등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 NASA는 초고에너지 우주입자를 ‘10년 안에 밝혀야 할 10대 과제’로 선정한 바 있다.

우리는 남극 하늘 42km 높이에 지름 180m의 대형 풍선을 띄운 뒤 여기에 달린 검출기를 이용해 우주입자를 찾을 계획이다. 검출기는 모두 5개 종류인데 이 중 ‘실리콘 반도체 우주입자 성분 검출기’가 한국측 이화여대 박일흥·양종만·남신우 교수, 경북대 박환배 교수, KAIST 민경욱 교수, 한국천문연구원 한원용·김홍규 박사팀이 2003년 공동 개발한 것이다. 이 검출기는 그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테스트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검출기의 하나로 인정받았다. 과학기술부도 ‘과학기술국제화사업’으로 이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초고에너지 우주입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초신성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초신성이 폭발하는 순간 발산되는 입자들은 굉장한 에너지를 갖는다. 이 입자들은 수억, 수십 억 광년을 날아 지구에 온다. 검출기를 통해 우주입자의 성분과 에너지를 알아낸다면 이 입자의 기원과 이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극 하늘 맴도는 풍선 띄운다

우리가 남극까지 온 것은 풍선을 최대한 하늘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찾는 우주입자는 지구 위 1m2의 넓이 위에 1년에 한 개 정도 떨어질 정도로 매우 적다. 따라서 풍선이 일정한 위치의 하늘에서 오랫동안 떠 있을수록 우리가 원하는 우주입자를 검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점에서 남극 하늘은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하늘에 띄운 풍선이 멀리 날아가 버리지만 남극 상공에서는 공기 덩어리들이 크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어 풍선이 달아나지 않는다.

풍선은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10분의 1에 불과하고 개발 기간도 매우 짧다. 풍선은 X선, 감마선, 우주선이나 고층 기상상태 관측 등 다양한 연구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NASA는 화성 탐사에 풍선을 활용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보통 연구용 풍선은 2~3일 정도 하늘에 떠 있지만 우리가 사용한 풍선은 열흘 정도 띄울 수 있는 롱 듀레이션(Long Duration) 풍선이다. 폴리에틸렌으로 된 특수 재질로 만든 데다 위성으로 제어하기 때문이다. 현재 석 달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울트라(Ultra) 롱 듀레이션 풍선이 시험중에 있으며 올해 말에는 우리 프로젝트에 이 풍선을 이용할 계획이다.

크림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윌리엄 필드 입구에는 ‘프리 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Free Willy)라는 장난스러운 팻말이 박혀 있다. 그 건물은 ‘PIG bran’(Payload Integration Garage barn)이었는데 우리는 발음을 빗대 ‘돼지 우리’라고 농담하곤 했다.

남극의 하루는 아침 7시에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7시 30분에 실험장소로 가는 버스를 타서 1시간을 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곳의 일이란 주로 검출기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과 실제로 풍선을 띄어올려 실험이 시작된 후의 작동계획에 대한 테스트들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온 사람들은 검출기와 안테나의 통신 상태 점검, 전체적인 조립 등에 관련된 일을 한다.

가까운 배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일을 한 다음 다시 맥머도 기지로 돌아가 저녁을 먹는다. 다음날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일상적인 하루는 끝이 난다. 맥머드 기지의 여름은 24시간이 대낮이다. 기숙사 창문에는 빛을 막을 수 있도록 굵은 부직포로 된 커튼이 있었지만 밝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그 건조함이란. 자다가 물을 마시러 몇 번 일어나다 보면 어느새 하룻밤이 지나간다.

14일에 하루 정도는 휴일이 있었다.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까지 산책을 했다. 내가 머물렀을 때는 대부분의 경우가 맑은 날이었지만, 언제 기후가 사납게 변할지 몰라 사람들이 기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었다. 소방서의 사전 허락도 받아야 한다.

남극에 머물면서 딱 한 번 ‘스콧헛’이라는 곳에 가 본 적이 있다. 남극점 도전에서 아문센에게 한 발 늦고 이곳에서 눈을 감은 영국 탐험가 스콧이 머문 전진기지다. 그러나 남극에서 펭귄 한 마리 보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팀은 12월중에 풍선을 띄울 계획이었다. 12월 중순 이후에 남극 대륙을 감싸는 둥근 기류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11월의 대부분을 장치가 정상적인지 검사하는 데 보냈다. 나도 혹시나 한국에서 가져간 반도체 검출기에 문제가 생길까 봐 늘 긴장했다.

이러한 일을 마치면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일이 남는다. 바람이 잔잔한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풍선을 띄우기로 결정한 날은 거의 6시간 이상 검출기를 갖고 밖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 동안 계속 바람이 잠잠해야 해 의외로 조건이 까다롭다. 우리 앞에 벌어진 다른 실험의 경우 실험이 준비된 후 거의 3~4일 동안 바람이 잠잠한 날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조금 나아서 예정된 시간보다 하루 늦게 풍선을 띄어 올릴 수 있었다.

12월 15일. 풍선을 띄어 올린 날이다. 그날을 생각하면 영화를 찍는 곳에 온 느낌이 든다.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윌리 필드에 왔다. 두어 시간 전부터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며 캠코더를 들고 있었다. “쉭쉭” 소리와 함께 헬륨 가스가 들어가기 시작해 풍선이 완전히 부풀어 오르기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실험에 사용한 지름 180m의 대형 풍선. 고도 42km까지 올라가 초고에너지 우주입자를 찾는다.


32일 세계 기록을 깨다

1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지금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풍선이 자리에서 일어나듯이 ‘휘리릭’ 올라간다. 다른 팀의 발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이 돼서 캠코더를 쥔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떨어지면 어쩌나’라는 내 생각을 기우로 돌리며, 풍선은 사람들의 환호성 아래 2~3년 동안 준비한 검출기를 매달고 손이 닿지 않는 상공으로 두둥실 날아올랐다. 나는 데이터를 보기 위해 ‘돼지 우리’로 돌아가면서 힐끔 힐끔 하늘을 봤다.

풍선 조정은 예상보다 여유로왔다. 몇 시간 뒤, 풍선이 우리가 원하는 고도인 42km까지 올라갔다. 풍선이 기지 상공을 날고 있는 동안은 기지에서 조정을 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미국 텍사스의 팔레스타인 기지와 메릴랜드대 조정기지가 맡는다. 우리는 1월 13일 오후 1시 무렵까지 남극에서 조정을 할 수 있었다.

우리 풍선은 기존 기록인 32일을 깨며 40여일이나 하늘에 머물렀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헬륨와 산소 원자핵으로 구성된 우주 입자가 검출됐다. 이들이 우리가 찾는 초고에너지 입자인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지도교수인 박일흥 교수는 늘 “우리 연구가 성공하면 우주의 구조와 신비를 아는데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초고에너지 우주입자는 매우 위험해 이에 대한 연구는 태양계를 벗어난 우주여행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 혹은 2년 후에는 크림의 이름 아래 또 다른 검출기가 남극 하늘에 떠오를 것이다. 한국에서는 현재 이화여대의 주도로 성능이 더 좋은 검출기 2호가 만들어지고 있다.

남극과 NASA, 풍선, 실험의 화려함 아래에는 좋은 검출기를 제작하기 위해 늘 전력투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은 연구비, 순수과학 지망생의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는 언제나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사람들이 가기 힘들다고 하는 남극에서 검출기를 하늘에 띄우며 한껏 들떠 있던 마음이 지금에 와서 가라앉은 것은 그러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기면 색종이를 붙여놓은 것 같은 파란 하늘에 흰색 작은 별처럼 보이던 풍선이 떠오른다. 그러면 딱히 뚜렷한 이유 없이 또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초고에너지 우주입자의 비밀을 파헤칠 검출기. 태양전지가 달려 있어 필요한 에너지를 하늘에서 만든다.


남극대륙 맥머드 기지ㅣ내가 머문 맥머드 기지는 남극 대륙에서 뉴질랜드 방향의 로스 섬에 있다. 이곳 과학센터에는 남극 하늘의 오존구멍을 처음 관측한 연구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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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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