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베이 vs 타코마 다리

디자인보다 기술 검증이 먼저

1936년 11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에 베이 다리가 개통됐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만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해 무역의 중심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 60여년만의 일이었다.

‘인류가 세운 가장 훌륭한 다리’라는 극찬을 듣는 베이 다리는 설계와 준비 과정에서 남달랐다. 1926년 다리 건설에 필요한 각종 공학적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자문위원회를 꾸렸고, 이 위원회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를 건설했던 랄프 모제스키, 가장 유명한 다리들의 기초와 교각을 세운 다니엘 모란 등 뛰어난 공학자들을 비롯해 다리 진입로의 디자인을 조언해줄 유명한 건축가들도 있었다.

위원회는 다리 설계에서부터 다리가 놓일 지반의 지질, 다리와 주위 경관과의 조화, 오클랜드만의 지형 상태, 다리 건설의 경제성에 이르기까지 다리 건설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리고 오클랜드만의 중간에 위치한 에바부에나 섬을 거쳐 다리를 놓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계획에는 공학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에바부에나 섬을 가로지르게 될 다리의 서쪽 수심이 60m나 돼 다리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교각을 놓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결국 위원회는 탑 4개를 세워 비교적 길이가 긴 경간을 매단 현수교 형태로 다리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간이 여러 개인 다리를 건설해본 공학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위원회는 현수교 두 개를 만들고 이들을 나란히 연결해 베이 다리를 완성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오클랜드시는 에바부에나 섬에서 오클랜드로 이어지는 동쪽 부분에서 배가 지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다리를 설계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베이 다리의 동쪽 부분은 당시로서는 예외적으로 긴 외팔보 다리가 됐다. 삼각형 뼈대 구조의 트러스를 이용한 외팔보 공법으로 완성된 동쪽 다리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외팔보 다리로 기록되며 외팔보 공법을 한 걸음 전진시켰다.

외팔보인 베이 다리의 동쪽 부분과 현수교인 서쪽 부분은 에바부에나 섬에서 만나 하나로 이어졌으며, 이렇게 해서 12.8km의 거대한 다리가 탄생하게 됐다. 베이 다리는 공사 기간을 6개월 단축하는 기록까지 남겨 지금도 미국 토목공학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베이 다리는 설계나 건설 자체에서 뛰어나기도 했지만 다리에 미칠 자연재해의 영향까지 치밀하게 고려됐다. 다리 건설 책임자였던 퍼셀은 지진이 다리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조사한 뒤 이를 설계에 반영했다. 비록 현수교와 외팔보 다리라는 이중구조로 인해 퍼셀 안이 실현되지 못했고, 1989년 지진으로 다리가 손상되기도 했지만 이런 노력을 기울인 점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건설기술 측면에서 베이 다리와 비슷한 기록을 보유하면서도 토목공학사에서 유례없는 실패로 기록된 사례는 타코마 다리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현수교로 워싱턴주의 명물이 된 타코마 다리는 개통된 지 불과 5개월도 못돼 완전히 붕괴됐다.

다리를 설계했던 이는 레온 모이세프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교량공학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당시 교량공학자들이면 누구나 사용하고 있던 다리 설계에 필요한 하중과 풍력 계산법을 개발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설계자가 만들어 놓은 다리가 바람 때문에, 그것도 강풍도 아닌 보통 바람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타코마 다리는 개통 당시부터 유난히 흔들림이 심해 ‘날뛰는 다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다리 위를 지나는 이들은 한결같이 배 멀미가 나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는 모이세프가 1930년대 산업디자인에서 유행했던 날씬한 유선형의 디자인인 ‘스트림라인’을 다리에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날렵한 다리 구조를 만들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설계 방식을 과감히 채택했다. 타코마 다리를 얇은 강판 대들보와 케이블을 이용한 현수교로 설계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케이블과 케이블을 지탱해주는 다리판 사이에는 심한 불균형이 일어났고 타코마 다리는 구조적으로 다른 다리에 비해 진동이 3배나 심했다.

다른 공학자들은 진동을 줄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바람에 따라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기 위해 이동식카메라를 달고, 더 무거운 케이블을 추가로 설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공학자들은 특정 풍속에서는 진동이 멈추는 현상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동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결국 1940년 11월 8일 초속 19m의 바람에 다리가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다리판이 휘어지고 콘크리트 조각들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타코마 다리는 다리의 진동수와 일치하는 바람의 소용돌이를 만나 구조물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진동이 강해져 무너지게 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기역학적 공명’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타코마 다리에는 치명적이었지만 모이세프로서는 알 수 없던 것이었다.

타코마 다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동반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검증되지 않은 설계의 다리를 19개월 만에 완성한 모이세프에게는 베이 다리 자문위원회의 치밀함이 결여돼 있었던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희 선임연구원

🎓️ 진로 추천

  • 토목공학
  • 건축학·건축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