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기류는 겨울철에만 한파를 부른다고? 땡! 제트기류는 여름철 집중호우를 내리게 할뿐 아니라 지상 3km 위에도 나타나 수증기와 에너지를 빠르게 수송하는 고속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 제트기류의 숨겨진 기능을 찾아 올 장마가 슈퍼장마로 변신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
올 여름 장마는 제법 장마다웠다.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 십여 일 계속됐다. 시원하게 비가 내리는 모습은 흡사 아열대 지방의 풍경을 연상시켰다. 덕분에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사람들의 손에서 우산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 요 몇 년간 8월보다 비가 더 적게 내려 ‘마른장마’라고 불렸던 7월 장마는 올해는 ‘강한장마’로 환골탈태했다.
얼음장 바닷물과 계절풍이 만나면 일반적으로 장마를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만드는 정체전선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장마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발생한다. 장마는 동아시아 몬순 시스템의 일부로 여름마다 우리나라에 다량의 비를 뿌린다.
몬순은 대륙과 해양 지역의 비열차 때문에 생기는 계절풍이다. 비열이 작은 티벳고원을 비롯한 중국대륙은 여름이 되면 해양보다 더 빨리 가열된다. 지면 위의 공기가 함께 가열돼 위로 상승하고 지상에는 저기압이 형성된다. 반면 온도가 낮은 해양에는 공기가 가라앉아 밀도가 높아지고 고기압이 형성된다. 이런 기압 배치에서는 주로 해양의 고기압에서 대륙의 저기압으로 바람이 불어 나간다. 북태평양에는 여름철 내내 고기압이 자리 잡는데, 많은 양의 따뜻한 수증기를 동아시아 대륙 쪽으로 불어 보낸다.
한편 겨우내 얼어붙었던 오호츠크해는 늦은 봄(5월)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주변 지역보다 온도가 낮기 때문에 이곳에도 고기압이 형성된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공기가 불어 나가는 오호츠크해는 점차 남하하다가 따뜻한 공기를 가지고 북상하는 북태평양 기단과 만난다. 성질이 다른 두 기단은 서로 섞이지 못하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경계면을 만든다. 이것이 6월부터 7월까지 우리나라에 비를 몰고 오는 장마전선이다.
이때 장마의 세기와 형태를 결정짓는 것이 북태평양 기단이다. 따뜻한 수증기와 에너지를 내보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아시아 대륙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 장마전선은 더 잘 유지가 된다. 전선이 한반도 상공 위에 걸치면 우리나라는 직접적으로 장마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 반면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화되면 장마 전선이 일시적으로 소멸한다. 또는 한반도 아래쪽으로 전선이 내려가 장마의 영향권에서 한반도가 벗어나기도 한다.
수증기가 ‘바람의 고속도로’ 타고 한반도로 북상
올해는 유난히 장마 전선의 영향력이 강했다. 보통 제주도는 장마가 6월 19일쯤 시작하는데, 올해는 평년보다 10일 정도 빨랐다. 중부지방도 평년보다 2~3일 빠른 22일에 시작했다. 이는 북태평양 기단이 평소보다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6월 한 달 동안 서울에 내린 강수량은 404.5mm로 1991년 이후 가장 많았다. 평년 기록이 133.2mm이니까 3배가 넘었다.
특히, 장마전선이 약화될 시점에는 태풍 ‘메아리’가 서해상에 북상하면서 열과 수증기를 장마전선으로 공급했다. 이 때문에 9일 동안 연속적으로 비가 내리고 중부지방에는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단순히 평년보다 북태평양 기단이 잘 발달했다고 해서 장맛비가 며칠씩 지속되진 않는다. 일반적으로 장마전선은 한 번에 많은 비를 내리면 수분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빗줄기가 약해진다. 다시 많은 비를 뿌리려면 남해로 물러나 수증기를 머금은 뒤 북상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린다(과학동아 2009년 8월호 참조). 하지만 올해는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뿌리고서도 하루나 이틀 뒤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또 많은 비를 폭탄처럼 투하하는 일을 반복했다. 전문가들은 장맛비가 계속해서 내리기 위해서는 남쪽의 따뜻한 수증기와 열을 계속해서 북쪽으로 옮겨다 주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특별한 장치는 ‘바람계의 고속도로’라 불리는 제트기류다. 한상은 기상청 예보기술팀 주무관은 “요즘처럼 지속적으로 많은 비는 제트기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제트기류는 우리나라 집중호우 발생 원인의 56%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제트기류라고 하면 고도 9~ 12km를 지나가는 상층제트를 떠올린다. 하지만 여름철에 티베트고원과 북태평양에 각각 저기압과 고기압이 크고 높게 발달하면 이 사이를 흐르는 좁고 빠른 바람이 생긴다. 이 기류는 지상으로부터 1~3km 높이에 생기는데, 상층제트와 구분하기 위해 하층제트라고 부른다(68~69쪽 참조).
남쪽에서 올라오는 습하고 따뜻한 공기는 하층제트를 타고 초속 10~12.5m의 속도로 한반도로 올라온다. 이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는 대기는 북태평양 고기압에서 불어나오는 남동 기류뿐이 아니다. 멀리 벵골만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 동해안을 거쳐 불어오는 해양성 남서기류도 하층제트에 합류하고 때로는 인도양 쪽에서 불어오는 남서기류도 함께 딸려 온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하고 습기 많은 기류들은 고위도로 올라오면서 도중에 비를 뿌리기도 하고 장마 전선이 있으면 장마 전선을 더욱 강화시킨다. 티벳 저기압의 상공에서 내려오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만나면 급격하게 대류가 일어나 게릴라성 소나기를 만들기도 한다. 하층제트 기류 속에서 작은 변화(예를 들어 저기압의 생성)가 일어나고 불과 한두 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이다. 한 주무관은 “비가 내리면 잠열이 방출되고 기압계의 형태도 항상 변하기 때문에 하층제트 기류가 지속하는 시간은 대부분 길지 않지만 간혹 정체될 수가 있는데, 그럴 때는 수일 씩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제트기류의 새로운 발견
하층제트 이론을 사용하면 집중호우가 유독 새벽에 많이 일어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하층제트는 밤낮으로 다르다. 즉 낮에는 지면가열로 생긴 난류에 마찰돼 풍속이 느려진다. 하지만 밤에는 지표부근이 안정해 마찰력이 줄어들면서 하층제트의 풍속이 증가한다. 바람이 빨라지면 고위도로 수송되는 수증기와 에너지도 늘어나기 때문에 호우의 빈도와 강수량도 증가한다. 한 주무관은 “하층제트가 동반된 집중 호우 연구에서 늦은 밤에서 이른 아침 사이에 발생한 호우가 낮에 발생한 호우보다 25% 이상 많았다”며 “비슷한 시스템으로 발생한 호우에서도 야간에 강수량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하층제트가 상층제트 아래로 통과하면 더 큰 호우 메커니즘이 만들어진다. 초속 25m의 속력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상층제트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상하는 하층제트를 상공으로 빨아들인다. 그러면 하층제트를 타고 북상하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차고 건조한 상공으로 올라가 강한 대류를 일으킨다. 한 주무관은 “상하층제트가 만나면 어떤 메커니즘보다도 빠르게 하층의 공기를 상층으로 올릴 수 있다”며 “직접적인 열순환으로 강한 대류가 일어나기 때문에 한두 시간 안에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게릴라성 집중호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제트기류 연구는 북위 30~50°에 흐르는 한대 제트(상층제트)에 집중됐다. 이 상층제트는 겨울철에 강해져 한반도 이북까지 남하하면 폭설과 한파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상청 예보기술팀에서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70개 호우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하층제트의 중요성이 새로 보인다. 기상청은 6개의 호우모델을 도출했는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모델이 하층제트, 또는 상층제트가 동반된 호우유형이었다. 임은하 기상청 수치모델개발과 연구관은 “최근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트기류의 새로운 영향력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면서 “이를 예보에 적용하기 위해 일기도와 기압계에서 상하층 제트를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