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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서 인생 배우는 뇌혈관 탐험가 - 서울대 약학과 교수 김규원

사소한 일로 다퉜던 친구나 어려운 부탁만 잔뜩 안겨주고 밥 한번 사지 않았던 선배와 떡하니 다시 만나게 됐다면? 우린 입버릇처럼 중얼거릴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돼”라고. 그러고 보면 세상만사 다 얽혀있다는 어른들 말씀이 틀리지 않다.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도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 따로 노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서울대 약학과 김규원 교수는 이렇게 생명현상을 들여다보며 인생을 배운다.

혈관과 신경은 하나의 시스템

김 교수에게 인생의 교훈을 깨닫게 해준 건 혈관과 신경이다. 언뜻 보면 혈관과 신경은 별 관련이 없을 성 싶다. 15년째 혈관을 연구해온 그는 이 둘의 관계를 차츰 눈치채기 시작했다.

세포는 혈관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한다. 특히 암세포 주위에는 혈관이 많이 생긴다. 김 교수는 혈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혈관 생성을 차단하면 암세포가 살아남지 못할 테니 말이다.

혈관에서도 가장 연구가 취약한 부분이 바로 뇌혈관. 김 교수는 뇌혈관에 있는 독특한 구조인 ‘뇌혈관 장벽’(BBB, Blood Brain Barrier)에 주목했다. 혈액 속에는 세균이나 독성물질도 들어있다. 뇌로 들어가는 혈액에서 이들이 빠져나오면 신경세포는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뇌혈관 장벽이 세균과 독성물질을 걸러내고 신경세포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만 통과시키는 보호막 구실을 한다. 결국 혈관과 신경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혈관은 혈관대로, 신경은 신경대로 따로 연구해왔어요. 하지만 혈관과 신경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에요. 둘 사이의 상호작용은 수정란이 태아로 자라는 발생과정에서부터 일어납니다.”

김 교수는 발생과정에서 ‘SSeCK’라는 단백질이 뇌혈관 장벽의 생성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성과가 2003년 생명과학 분야 세계적 권위지인 ‘네이처 메디슨’에 실리면서 그는 학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에 선정된 것. 혈관과 신경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창의적인 시각을 통해 따로 연구할 땐 몰랐던 생명현상을 밝혀내는 게 목표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새로운 항로가 동떨어져 있던 유럽대륙과 신대륙의 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과학이 평생 내 길

학창시절 김 교수는 물리나 화학보다는 살아있는 것을 공부하는 생물 과목을 좋아했다. 부모님이 약국을 운영한 덕에 생명을 구하는 약의 매력에도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공대로 진학했지만 그는 주저 없이 서울대 약대를 택했다.

“‘라이파이’라는 만화 아세요? 어렸을 땐 첨단기술로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라이파이가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어떤 문제든 척척 해결하는 ‘짱구박사’도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죠. 이 만화들을 보며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평생 과학이라는 ‘외길’을 담담히 고집해온 김 교수지만 학창시절 잠깐이나마 ‘외도’의 유혹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림을 곧잘 그리던 김 교수에게 미술선생님이 그림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한 것.

“한번은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자화상을 그렸어요. 난 나와 정말 똑같이 그렸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작품을 내놓았죠. 그런데 한 친구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면서 난 생각도 못한 독특한 자화상을 그렸더군요. 화가가 되려면 저 정도의 자질은 있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세포를 그리거나 발표용 슬라이드를 만들 때 그의 미적 감각이 지금도 진가를 발휘한다고. 그의 외길이 계속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약국도 문을 닫았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용돈, 집안 생활비까지 대면서 대학을 졸업했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과학을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진학을 결심했죠. 부모님은 회사에 다니면서 돈 벌길 바라셨지만요. KAIST 석사과정 내내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아껴뒀다 집에 보냈어요. 부모님도 결국 과학에 대한 아들의 열망에 두 손 드시고 유학을 허락하셨죠. 당시 어머닌 미국 가면 다신 못 볼 것처럼 생각하셨어요.집안일을 대신한 둘째 동생에게도 항상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가 미국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1985년 미네소타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년 뒤 귀국해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고국에서 연구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던 마음도 잠시였다.

“신설 학과라 실험실이 없어 미대 조소과의 도자기 작업실을 개조했어요. 바닥 위에 수도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겨울이면 얼어 터졌죠. 그래서 실험실이 물바다가 되는 날이 다반사였어요. 비가 오면 물이 새고 툭하면 전기도 나갔어요.”

연구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혈관 연구에 필요한 달걀을 싼 값에 사려고 김해 부화장과 실험실을 수도 없이 오갔다. 당시에 비하면 유학시절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회에 갔다 관심 분야가 비슷해 친해진 고신대 의대 고(故)박병채 교수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고충을 털어놨다. 박 교수는 환경이 열악하다고 연구를 못하는 건 아니라며 격려했다. 김 교수는 “어려울 때 아이디어도 많이 얻고 힘이 됐던 좋은 선배였는데 몇 년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며 말끝을 흐린다.
 

서울대 의학과 교수 '김규원'


혈관에서 뇌로, 눈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2000년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뒤 김 교수는 부산대에서 한 기초연구를 발판 삼아 논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근 5년간 그가 발표한 논문은 국제학술지에만 자그마치 60여편. 상복도 터졌다. 2002년에는 올해의 생명과학자상, 2003년에는 과학기술부가 수여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과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올해에는 한국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호암의학상까지 거머쥐었다.

모교로 돌아온 뒤 김 교수는 세상 일이 서로 얽혀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요즘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맡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이 동아리에서 잠깐 활동했죠. 그걸 알게 된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맡아달라고 찾아왔더군요.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이제 김 교수는 혈관과 신경 연구를 확대해 질병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뇌혈관 생성 과정을 밝히면 알츠하이머, 뇌졸중 같은 병을 정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다. 뇌뿐 아니다. 그는 눈을 ‘밖에서 보이는 뇌’라고 말한다.

“눈 안에 들어온 빛은 유리체란 액체를 통과해 망막에 물체의 상을 맺게 합니다. 그 중간에 방해물이 없어야 상이 제대로 맺히죠. 당뇨병 환자는 빛이 지나는 곳에 혈관이 마구 자라는 합병증이 나타나요.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죠. 이런 당뇨병성 망막증의 경우 혈관 생성을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지 안과의사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연구를 하다 보면 뚜렷한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생명현상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 이런 믿음으로 김 교수는 오늘도 혈관탐험에 나선다. 그가 갈 길은 여전히 과학이라는 외길이기에.
 

학창 시절 김 교수(가운데)는 과학 중에서도 살아있는 생명을 공부하는 생물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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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연정
  • 임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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