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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무슨 죄? 청소년 게임 중독 질병일까, 아닐까

※편집자 주.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항목을 질병으로 등재한다는 내용의 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게임이용장애는 ‘6C51’이라는 코드로 정신적, 행동적, 신경발달장애 영역에서 하위 항목으로 포함됐으며, 2022년부터 적용될 예정입니다. 국내에서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국내 질병코드 등재 등 후속 조치를 놓고 논쟁이 일 전망입니다. 보건복지부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 할 방침입니다.

 

“게임을 안 하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수조차 없어요. 지금 세상은 게임이 가장 ‘핫’한 놀이고 대화의 주제인걸요. 이걸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난센스에요. 물론 적당히 해야겠지만요.” 

또박또박 게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문정원 군(서울 보성중 2학년)에게 게임의 유해성을 설명할 논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지금 청소년 세대에는 문화로 인식되고 있는 듯 했다. 적당히 즐기고 멈출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의 필요성도 이해하고 있었다. 게임은 청소년에게 유익한가, 유해한가. 

 

▲5월 11~1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2019 넥슨콘텐츠축제(네코제)’가 개최됐다. 사진은 게임 캐릭터 코스튬 플레이 참여자들의 모습.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개성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다. 
 

 

게임은 질병인가, 아닌가

 

“한국은 게임 중독과 싸우기 위해 시스템적으로 시간제한을 두는 셧다운제를 실시한다.”

(CNN, 2011년 11월 22일) 


“한국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게임 중독자의 나라다.”

(미 ABC방송, 2015년 9월 15일)


한국의 청소년 게임 중독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당시 미국 언론은 게임에 빠진 한국 청소년을 다루며 게임 중독(addic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게임에 빠진 청소년과 성인의 뇌를 다양한 자기공명영상(MRI) 기법으로 측정한 결과 도박이나 마약 중독 환자에서 보이는 쾌락 부위의 활성이 두드러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이를 뒷받침했다. 게임 중독은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일종의 질병이라는 인식은 급속히 퍼졌다.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2017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표준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통해 과도한 게임 몰입을 도박이나 마약 등의 정신 장애와 동일한 질병코드로 분류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보도하며 게임 중독에 쐐기를 박았다. WHO는 올해 5월 20~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 몰입에 대한 질병코드 등재 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WHO가 이 계획을 1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학계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검증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존스홉킨스대,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등 소속 전문가 37명은 게임을 중독을 유발하는 정신 장애로 봐야한다는 WHO의 분류개정안에 대해 과학적,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증상의 형태나 치료 방법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내용은 지난해 3월 임상심리학 분야 오픈액세스 학술지인 ‘행동 중독 저널(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s)’에 발표됐다. doi:10.1556/2006.7.2018.19 


게임에 대한 상반된 시각은 용어에서부터 드러난다. 게임을 다른 중독처럼 하나의 질환으로 취급하는 전문가들은 ‘게임 중독자’라는 용어가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게임에 빠져 있는 상태라는 뜻에서 ‘게임 과몰입군’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기사에서는 ‘과도하게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으로 통일했다. 

 

게임 과몰입, 전두엽 두께 얇아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과도하게 게임을 즐기는 13~21세 755명을 조사했다. doi:10.1556/2006.7.2018.102


연구팀은 게임을 하지 않고 쉴 때 뇌의 활성 상태를 촬영하는 ‘휴지기 기능성자기공명영상(rest-state functional MRI)’ ‘대뇌피질두께분석법(CTA)’ 등으로 이들의 뇌영상 자료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게임을 과도하게 즐기는 청소년은 뇌의 뒤쪽에 비해 전두엽 주변부에 위치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강화돼, 다소 두꺼워진 양상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전두엽은 뇌에서 기억력과 사고력을 담당하는 부위다. 한 교수는 “보통 전두엽은 두께가 2~5mm인데, 우리의 활동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며 “주변부와의 연결성이 늘어났다는 것은 게임에 의해 나타난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 뇌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할 때 복잡주의력이 향상되고 고도의 창의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때 뇌에서는 전두엽에서 멀리 떨어진 후두엽 부위간의 연결이 강화된다. 반면 게임처럼 단순한 사고를 반복하면 전두엽 주변의 단편적인 연결성만 증가한다.


대뇌의 보상회로는 다소 취약해져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 교수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하면 재미를 느끼는 보상회로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보상회로의 역치가 높아져 웬만한 자극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며 “게임을 못 하게 한다고 해서 보상회로가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게임을 하는 행동이 청소년이 처한 복잡한 환경이 낳은 정신적 상태의 결과물로 보고, 그 기저에 다른 문제가 존재할 것으로 가정한 뒤 과도하게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 255명을 대상으로 MRI 분석과 대면 상담 등을 심도 있게 진행했다. 


이를 통해 ‘단순 게임군(단순히 게임이 좋고 즐거워서 빠져있는 그룹)’ 128명과 ‘후천적주의력결핍증후군(ADHD) 동반 게임군(정신질환을 동반한 상태에서 게임을 즐기는 그룹)’ 127명 등 두 그룹으로 구분한 뒤 최근 3년간 행동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ADHD 동반 게임군은 자체 회복률이 0.17로 단순 게임군(0.49)에 비해 2배 이상 낮았다. 자체 회복률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도 게임 이용 시간이 정상 범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ADHD 동반 게임군은 게임 이용 시간이 줄었다가 금세 늘어날 확률도 단순 게임군보다 5배 이상 높았다. 


한 교수는 “자녀가 과도하게 게임을 할 경우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지 다른 문제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다른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행동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강도와 빈도가 다를 뿐 전 연령대의 사람들이 게임을 즐긴다. 인터넷 게임이나 스마트폰 게임, TV에 연결해 즐기는 콘솔 게임 등 게임의 종류가 많고, 게임에 빠지는 유형도 다양하다. 한 교수는 “청소년의 경우 접근성이 좋은 인터넷 게임에 빠지기 쉽지만, 간섭이나 경제력 등에서 자유로운 성인은 다른 형태의 게임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한 교수는 “게임에 몰입하는 다양한 경우를 고려해 세분화된 추적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게임이 다른 질병처럼 증상부터 치료법까지 명확히 정의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임 자기 통제력, 자연스럽게 생겨 

 


최근에는 게임을 과도하게 즐기는 것이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팀은 2014년부터 4년간 과도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판단된 청소년 2000명에 대해 설문조사와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며 게임 사용 패턴을 추적했고, 그 결과를 ‘게임이용자 패널 코호트 조사 1~4차년도 연구’ 보고서로 정리해 최근 공개했다. 보고서는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을 중시하고 청소년들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아시아 국가의 사회문화적인 풍토가 게임 과몰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정 교수는 “성적과 교육을 중시하는 부모들은 청소년의 능력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더 높은 성적만 요구한다”며 “부모의 과잉 기대가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청소년들은 가장 접하기 쉬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게임으로 이를 해소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팀은 해마다 과도하게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 가운데 50~60%는 자연스럽게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는 현상도 확인했다. 게임에 빠진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의학적인 조치를 하거나 게임을 하지 못하게 제약을 두지 않았는데도, 청소년 절반 이상은 게임 이용에 대한 자기 통제력이 생겼다.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학생에게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은 셈이다. 


정 교수팀은 통계수학적 모델링 기법을 도입해 부모의 간섭과 게임 과몰입 간의 상관관계를 재확인했다. 부모의 기대와 간섭이 크고, 부모의 불안과 우울 상태가 높을수록 게임에 대한 청소년들의 자기 통제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게임을 무작정 못하게 하면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거나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조성하고, 청소년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도록 부모와 자녀가 서로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과도한 게임 이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201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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