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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으로 신약을 개발한다

분자의약유전체학연구실

신약 개발은 ‘짚더미에서 바늘 찾기’나 매한가지다. 자연계에 널린 수많은 물질 가운데 약품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한줌에 불과하고, 그 중에서도 실제로 약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극소수기 때문이다.

KAIST 생명과학과 분자의약유전체학연구실은 신약 개발에서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최근 김태국 교수가 신약 후보 물질 등 분자들 간의 결합을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을 만든 것이 그 이유다.
 

연구원들이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MAGIC을 이용해 생체 분자 간의 결합을 연구하고 있다.


분자 결합을 실시간으로 본다

화학유전체학(chemical genomics)은 신약 후보 집단(pool)을 검색해 가장 우수한 물질을 추려내는 학문이다. 화학유전체학의 중요성이 커지자 수많은 후보 물질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검색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신약개발의 관건이 됐다.

‘마법’(MAGIC)이란 ‘자성기반 상호 작용 검출 기술’(MAGnetism-based Interaction Capture technology)의 약자다. 자성을 이용해 세포 내의 분자들끼리 서로 결합하는지 확인하는 기술이다.

세포 내의 표적 분자와 결합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신약 후보 물질에 자성을 띤 나노입자를 붙여 세포에 넣어준다. 자성 나노입자가 붙은 신약 후보 물질과 형광을 띤 표적 분자가 결합할 경우 세포에 자석을 대면 두 분자가 함께 끌려온다. 표적분자에 부착된 형광을 통해 결합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마치 마술(magic) 같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이 기술의 약자를 ‘MAGIC’으로 명명했다.

“MAGIC을 이용하면 세포 내의 특정 분자에 어떤 신약 후보 물질이 결합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1일 ‘사이언스’에 발표되자마자 주목받았다. 분자 간의 결합 여부를 확인하는데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세포를 일일이 깨야하기 때문에 느리고 복잡한 생화학적 방법이나 DNA 또는 단백질 칩에 의존해야만 했다.

MAGIC은 신약 후보 물질의 작용 기작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신약의 작용 기작이 상세히 규명될수록 부작용은 줄어들고, 약효의 신뢰도가 높아져 가치도 더 높아진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정말 세포 안에서 분자들이 결합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998년부터 미국 하버드대에서 화학유전체학을 가르치던 그는 생체 회로가 어떻게 조절되는지 알면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체 회로는 호흡, 순환 등 대사활동을 수행하는 효소 같은 분자들의 상호결합으로 이뤄진 네트워크를 말한다.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을 때 마침 KAIST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김 교수는 2002년 한국에 돌아와 연구실을 열고 먼저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기로 했다. 세포 내에서 신약의 후보물질이 되는 분자들을 검색하기 위한 장치들을 개발했다. 여건이 갖춰지자 2004년 연구에 착수해 1년 만에 MAGIC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신약 개발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이었다면 MAGIC은 항해의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이미 항암제를 포함한 2개의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았다. 내년까지 동물실험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엑스맨이 아이디어의 원천

어떻게 자석을 사용할 생각을 했을까. 김 교수는 “미국 영화 ‘엑스맨’(X-MEN)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영화에 등장하는 ‘매그니토’는 쇠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석인간이다. 자력을 이용해 사람의 몸에서 철분을 뽑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얼핏 황당하기까지 한 상상을 선뜻 현실로 옮긴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세포 안은 젤처럼 점성이 강하고 세포골격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과연 분자들이 자석에 끌려올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하지만 일단 시작했더니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연구실에는 10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김 교수와 함께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연구실이지만 연구 의욕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들은 앞으로 MAGIC을 이용해 분자 단위가 아닌 생체 회로 전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 이 기술을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나는 천연물질들을 신약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팀은 현재 MAGIC과 관련해 3개의 국제특허를 신청한 상태다. 연구팀은 “이제부터가 본게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꿈은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직접 들여다보는 ‘살아있는 생물학’의 완결판을 만드는 것이다.
 

연구실 사람들이 한 자릴에 모였다.

 

200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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