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건을 집에서 잃어버렸을 때 누가 더 잘 찾을까? 어머니일까, 아버지일까? 남학생이 기하학을, 여학생이 국어를 각기 더 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아가 남아보다 말을 더 빨리 배우는 까닭이 무엇일까? 남녀간에 공간지각, 학습, 기억, 언어이해와 같은 인지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지 여부와 그 까닭을 묻는 물음들이다.
심리학의 한 분야인 성차심리학(psy-chology of sex differences)은 바로 이런 물음들에 관한 답을 찾는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남녀 차이의 생물적, 사회심리적, 또는 발달심리적 원인을 실험, 관찰, 조사와 같은 방법을 써서 밝힌다. 남녀 아동, 학생 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거나 지능검사를 이용해서 남녀가 어떤 인지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알아낸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서로 다른 성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다. 나아가 편파적인 남성 우위의 사회 조직과 문화가 보다 새롭고 조화로우며 창의적으로 발전하게 될 계기를 만든다.
이 글에서는 남녀가 공간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인 공간지각(spatial perception)이나 물건 기억(object memory)과 같은 인지 능력에서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그 까닭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 한다. 그리고 이 차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도 함께 검토해보자.
마음으로 물건을 회전시키는 검사
우선 남녀간 공간지각력의 차이를 알아보는 간단한 검사법을 살펴보자. ‘심적 회전 검사’는 (그림 1)과 같은 문제들을 남녀 학생들에게 각기 주고 위쪽에 있는 것을 마음 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아래 네개 중 어느 두개와 같게 되는지 고르게 한다. 답을 찾으려면 위에 있는 도형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그린 다음 회전시켜야 한다. 한편 ‘공간관계검사’는 위의 도면을 접었을 때 아래 모양 중 어느 것이 되는지 있는대로 고르게 한다(그림2).
이 두 검사는 모두 각 물체에서 부분들의 공간관계를 체계적으로 잘 분석하고 종합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각 검사는 20문제씩으로 구성돼 있고, 학생들은 7분 동안 문제를 풀어야 한다. 검사 결과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두가지 모두 성적이 좋았다.
이 검사에서 발견되는 남녀 차이는 일차적으로 통계적 성질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심적 회전 검사’와 ‘공간관계검사’에서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대부분의 여학생들보다 더 성적이 좋았다. 물론 예외적으로 남학생만큼 잘한 여학생도 있었으나 그 수는 극히 적었다.
다음으로 물건 기억력 검사를 살펴보자. (그림 3-1)을 남녀 학생들에게 1분씩 보여준 다음 덮어두게 하고 (그림 3-2)를 보여준다. (그림 3-2)는 (그림 3-1)에 있던 물건과 함께 새 물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검사에서 남녀학생들은 1분 동안 (그림 3-2)에서 새롭게 제시된 물건들에 표시한다. 만일 물건의 위치를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알려면 (그림 3-1)을 보여준 다음 물체를 뒤바꾼 새 그림을 보여 주고, 그 위치를 바꾼 물체들을 찾아내게 한다. 이 두 검사에서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보였다.
이 검사로부터 “집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구가 더 잘 찾을까?”에 대해 ‘어머니’라는 답이 나오는 까닭을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머니를 포함한 여성들이 물체의 정체나 위치를 남성보다 더 잘 기억한다.
‘심적 회전 검사’와 ‘공간관계검사’는 모두 각 물체 내 부분들간의 공간관계를 재빨리, 정확하게 파악하기를 요구한다. 반면 물체기억 검사와 위치기억 검사는 이런 분석적인 공간 관계보다 더 총체적인 수준에서 물체들간의 공간관계를 파악하도록 요구한다.
1992년 키무라라는 여성 심리학자는 여러 검사 과제를 이용해 남녀 인지 능력의 차이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다. 여성은 물체의 동일성 여부를 눈으로 보고 재빨리 판단하기, L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빨리 그리고 많이 말하기, 여러개의 못들을 각기 작은 구멍에 끼우기, 산수문제 계산하기를 남성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냈다(그림 4).
이에 비해 남성은 접은 종이에 구멍을 뚫은 후 그것을 폈을 때 점들의 공간관계 파악, 과녁 맞추기, 숨은그림찾기, 수학 추론 해결을 여성보다 더 잘해냈다(그림5).
남녀간 인지 능력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일상적인 예는 길찾기다. 책상에 펼쳐진 지도를 보고 어떤 목표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면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 몇번만에 쉽게, 별로 틀리지 않고 잘 해낸다. 그러나 일단 길찾기를 배운 다음에는 여학생들이 목표 지점을 도달하는 중에 있는 주요 표지물(큰 건물, 동상 등)을 더 잘 기억한다.
길찾기에 동원되는 전략
이 결과로 미루어 남성과 여성이 어떤 목표 지점을 향해 길을 찾아나설 때 각기 다른 인지 전략(cognitive strategies)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물체의 정체에 관한 기억과 그 위치에 관한 기억이 남성보다 더 좋으므로 뚜렷한 물체 표지를 중심으로 길을 찾는다. 반면 남성은 좌표와 같이 더 추상적인 공간 관계를 중심으로 길을 찾는다.
동물도 암수에 따라 비슷한 차이를 보인다. 즉 암컷 쥐는 먹이가 있는 장소를 찾는 학습과제에서 모퉁이의 각이나 방의 모양과 같은 기하적인 단서보다 벽에 걸린 그림과 같은 표지물을 사용한다. 이에 비해 수컷 쥐는 기하적 단서만을 사용해 학습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실험 결과들은 남녀 또는 암수의 인지 능력 배후에 상당히 강력한 생물심리적 메커니즘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인지 능력의 차이는 왜 생길까? 어릴 때부터 남성과 여성이 각기 다르게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사회문화적인 압력 때문일까? 남자 아이가 수학 공부를 많이 하기를 요구하고, 여자 아이에게는 다른 공부를 더 잘 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 때문일까? 이런 환경적 요인보다 더 근본적인, 즉 생물심리적인 요인이 그 동안 여러 연구에서 검토됐다.
공간학습에서 드러나는 암수 쥐의 인지 능력 차이는 어떤 결정적 시기에 호르몬 대사를 조절하면 달라진다. 즉 수컷 새끼 쥐를 거세해 테스토스테론이 작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암컷 새끼 쥐에 에스트로겐을 주사하면 공간학습 행동이 완전히 뒤바뀐다. 암컷 쥐는 수컷처럼 행동하고, 수컷 쥐는 암컷처럼 행동하게 된다.
사람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유전적 이유 때문에 여성 태아가 남성호르몬에 지나치게 노출되면 성기가 남성화될 수 있다. 이 여아들은 출생 후 다른 여아보다 더 공격적이며, 남자 아이들이 하는 놀이 행동을 보인다. 또 정상 여아와 달리 남자 아이와 비슷한 수준의 공간 관계 파악 능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숨은그림찾기에서 남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문제를 풀어낸다.
또다른 예로 실어증을 살펴보자. 뇌출혈로 뇌세포의 일부가 손상되면 언어 사용에 장애가 나타나는 실어증에 걸린다. 흥미로운 점은 성별로 손상되는 부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즉 여성은 좌반구의 앞쪽, 남성은 좌반구의 뒷쪽 부위가 손상을 받을 경우 실어증이 나타난다. 이런 뇌 구조의 차이는 다양한 손동작을 택해야 할 때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실행증 환자에게서도 발견된다. 이 결과들은 출생 전후의 호르몬 대사에 따라 남녀 뇌의 구조가 달라지고, 그 결과 남녀간에 다양한 인지 능력의 차이가 발생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인간의 뇌는 수십만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 애초에 사람들이 수렵·채취 생활을 하면서 남녀간에 노동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남성은 사냥거리를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부족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싸웠다. 여성은 부락 주변에서 열매나 채소를 모아 식사를 준비하고, 옷을 만들며 육아를 맡았다.
적자 생존을 위한 능력 개발
많은 학자들은 이처럼 각기 다른 행동 양식이 ‘적자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길을 제대로 찾고, 사냥감을 포획하며, 다시 부락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도 길을 제대로 찾는 공간관계 파악능력이나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능력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여성은 표지물을 이용해 근거리 내에서 이동하며 환경의 조그만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또 옷을 만들어 입을 때 필요한 미세한 동작을 잘 해내는 능력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려고 남성과 여성이 행한 행동들 때문에 뇌의 신경구조가 각기 다른 특성을 띠게 되고, 이러한 절차가 수십만년을 되풀이 되면서 남녀가 독특한 인지 능력의 차이를 발전시켰다. 남녀의 성을 결정짓는 호르몬과 남녀가 환경에 대해 적응하는 행동의 차이가 서로 연합해 지금과 같은 인지 능력의 차이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