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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구조분석학 미시 세계 영화처럼 보여주는 투시 기술

재료의 구조를 통해 성질을 밝히는 X선 구조분석학은 재료공학의 가장 기본 분야다. 그런데 최근 이 분야에서 물질 내부의 현상을 보여주는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이 등장했다. 생명공학과 나노과학 발달에 공헌하리라 전망되는 첨단 재료공학분야를 만나보자.


최근 지금까지 상상만 가능했던 세계를 직접 보여주는 새로운 첨단 공학기술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제정호 교수팀이 물질의 내부구조를 마치 영화처럼 직접 보여주는‘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투시현미경 기술로 금속의 도금 표면을 관찰해 과학전문지‘네이처’5월 9일자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백년 전 인류가 받은 선물 X선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은 불과 4-5년 전에 연구가 시작된 재료공학분야의 최첨단 연구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현대 산업의 밑거름이 된 재료공학에서는 재료를 가장 효과적으로 응용하기 위해 재료의 원리를 이해하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재료 고유의 성질은 재료의 미시적인 구조와 깊게 관련된다. 이 때문에 재료의 구조를 통해 성질을 밝히는‘구조분석학’은 재료공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분야 중 하나다. 특히 21세기의 학문으로 요즘 한창 각광받는 생명공학과 나노분야에서 활약할 미래의 재료를 발굴하기 위해서 구조분석학은 최근 더욱 각광받고 있다.

구조분석학에서 이용되는 X선은 이미 1백년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X선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뢴트겐이 1895년 발견한 빛의 한 종류다. 정확히 정의하면 대전입자가 감속하거나 원자 내전자가 이동하면서 생성되는 극히 짧은 파장의 전자기 복사선을 말한다.

X선의 존재가 19세기말 인류에게 알려진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검은 종이로 완전히 싼 음극선관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실험을 하던 뢴트겐은 우연히 근처에 놓여 있던 시안화백금바륨을 칠한 널빤지에서 흘러나온 빛을 주목했다. 이 빛은 음극선관에서 나온 X선이 시안화백금 바륨에 도달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뢴트겐은 자신이 발견한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종이, 나무, 알루미늄 등을 쉽게 통과해 사진 건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와 같은 기묘한 성질 때문에 그는 이 빛에 정체 불명이라는 뜻을 가진‘X’라는 이름을 붙였다.

X선의 발견은 뢴트겐에게 첫번째 노벨물리학상 수상 이라는 영광을 안겨줬으며, 방사선 동위원소의 존재를 알려줘 20세기 물리학 혁명을 연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와 함께 X선의 혜택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분야는 구조분석학이었다. X선을 통해 물질 내부를 들여다보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병원에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X선 촬영도 똑같은 원리다. X선은 물체와 부닥치면 뚫고 지나가는 성질을 갖고 있다. 투과력이 우수하기 때문인데, 물체를 통과하는 중에 흡수도 일어난다. 흡수되는 양은 물질의 종류와 밀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뼈는 밀도가 높기 때문에 흡수가 많이 되고, 살에서는 대부분 그냥 지나간다. 결국 이 차이 때문에 빠져나온 X선의 양이 다르다. 그래서 이를 감지할 수 있는 필름을 사용하면 내부를 보여주는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또한 X선은 물질 속을 통과하면서 그 물질에 존재하는 전자들과 충돌해 산란된다. 여기서 산란이란 장애물 주위에서의 파동이 퍼지는 현상이다. 탄소, 질소, 산소 등 전자를 많이 갖고 있는 원자들은 전자가 적은 원자보다 더 많이 산란시킨다. 산란에 의한 회절 양상을 필름에 감광시킨 후 나타난 점들의 관계를 분석하면 재료의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 X선 회절 사진이 바로 이 원리로 가능 했던 것이다. 이 방법은 원자 수준의 미세한 구조까지 알 수 있지만, 물체의 내부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수학적 해석을 통해 구조를 추정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재료공학을 바 탕으로 발전했다. 첨단 재료 개 발은 재료의 구조와 성질을 밝 히는 일에서 시작된다.



3백nm 해상도로 보는 동영상

구조분석학에서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되는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역시 X선의 투과력을 이용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자세히 본적이 있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X선 촬영 사진은 선명하지 않다. 해상도가 떨어져서 최소한 1mm 이상의 크기는 돼야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뼈나 조직을 관찰하는 정도에만 사용되는 실정이다.

미세한 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유용한 도구는 현미경이다. 현미경은 생물체뿐만 아니라 재료를 들여다보는 구조분석학에서도 흔히 사용되고 있다. 광학현미경뿐 아니라 투과전자현미경(TEM), 주사전자현미경(SEM), 주사탐침현미경(SPM)과 같은 전자현미경까지 현미경 기술은 오늘날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겉표면에 한정된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투과전자현미경이라는 종류도 1㎛ 이하로 아주 얇게 자른 시료만 엄청난 배율로 확대해 보여줄 뿐이다. 현미경과 같은 배율로 물질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

구조분석학에서 원하던 X선 분석과 현미경 기술의 한계를 포항공대 제교수팀은 새로운 개념으로 돌파했다. X선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파동을 갖고 있는 전자파에 속한다. 따라서 어떤 시각 또는 어떤 장소에서 파동이 변화하는 국면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위상(phase)이라 한다.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에서는 위상이같은 X선을 관찰하려는 대상에 쬐어 위상의 변화를 측정한다. 기존의 X선 흡수 차이에 위상 차이를 더해 해상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다.

현재 위상 차이를 함께 이용하는 X선 투시현미경은 3백nm(1nm는 ${10}^{-9}$m)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해상도가높다. 나노기술이 활약하는 극미의 세계를 관찰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수준이지만, 대단한 해상도라 하지 않을 수없다.

위상 차이를 이용한 투시현미경 기술에 사용되는 X선은 보통 X선이 아니다. 우선 위상이 똑같아야 나중에 달라진 위상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X선이 똑같은 간격으로 짜여져 있고(coherence), 평행하게 똑바로 줄서 있어야(collimation) 한다. 이와 같은 고품질 X선은 방사광가속기로 만든다.

그런데 가속기로 만드는 방사광 X선은 파장의 범위가 넓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X선이 모여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방사광 X선의 위상 차이를 이용한 현미경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한 에너지의 X선을 골라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제교수팀은 다양한 에너지의 X선이 섞여 있어도 위상차 효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손쉽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파장의 범위가 넓은 X선은 또다른 장점도 갖고 있다. X선 촬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X선에 쬐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양한 파장을 함께 쓰면 X선의 양(광자)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촬영에 필요한 시간을 상당히줄일 수 있다. 제교수팀이 개발한 기술로는 현재 5ms (1ms는 ${10}^{-3}$초) 마다 영상 하나를 촬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즉 1초에 무려 2백장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의 경우 32프레임, 즉 1초에 32장의 사진을 보는데도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인식한다. 인간의 눈에서 영상이 망막에 맺힐 때, 시각세포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X선 투시현미경으로 촬영한 영상은 영화보다 훨씬 우수한, 거의 완벽한 동영상인 셈이다.


고고학 연구에서 암 진단까지 적용가능

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은 획기적인 활용이 예상된다. 제교수팀이 올해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는 전기도금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전기도금은 반도체 제작의 바탕이 되며,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Electro Mechanical System) 개발에까지 적용되는 중요한 산업 기반기술이다.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로 구리 위에 아연을 전기도금하는 과정을 관찰해 본결과 중간 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됐다. 즉 전극 계면에서 수소 기포가 형성되고, 이 수소 기포 위로 아연 조직이 성장해 가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수소 기포는 점점 커지다가 부력에 의해 사라지는데, 그러면 기포 위에 성장해 있던 아연층이 이미 성장하고 있는 아연층과 섞이게 된다. 전기도금할 때 발생하는 결함의 원인이 바로 이 수소 기포 때문이었던 것이다.

제교수팀 기술 개발 소식이 알려지자 화석연구자들이 도움을 청했다. 화석이나 유물처럼 희귀한 자료를 연구 하는 고고학 등의 분야에서 대상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3차원 모습을 보여주는 기술은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재료나 제품, 구조에 손상을 주지 않고 성질이나 상태를 내부구조를 통해 알아내는 비파괴검사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재료공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활약이 예상된다. 연구팀은 파리와 같은 작은 곤충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관찰했다. 그 결과 겹눈의 움직임을 비롯해 미세한 생명현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볼 수 있었다. 즉 지금까지 어떤 장비로도 확인할 수 없었던 정확한 해부학적 구조에서 미세한 생명현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3백60도 3D로 관찰하면서 밝혀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의학 분야에서도 큰 활약을 펼치리라 예상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의 불치병인 암은 초기에 1cm, 중기는 5-6cm, 말기는 7-8cm 정도 크기다. 그런데 암을 초기에 발견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은 극초기의 암까지 확인할 수 있어, 암 진단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뿐 아니라 암을 치료하는 약물이 실제 생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까지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다. 효과적인 항암제를 찾는 신약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제교수팀은 연대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X선 투시 현미경을 의학에 적용하는 연구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왼) 전자현미경으로 본 머리카 락. 상당히 높은 배율이지만 겉 표면에 한정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가운데.오른족) X선 투시현미경 기술로 관찰한 파리. 겹눈의 움직임을 비롯해 미세한 생명현상을 직 접 보여준다.



경쟁보다는 협동의 시대

흔히 재료공학 분야에서는 신소재 개발만 연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신소재 개발이라는 신천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는 구조분석학과 같은 밑거름이 되는 연구가 중요하다.

X선 구조분석학에서 초고해상 실시간 X선 투시현미경 기술이라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기까지 난관이 적지 않았다. 제교수는 포항공대 김경태 교수와 연세대 이규호, 유형식, 김희중, 성제경 교수를 비롯해 스위스 EPFL공대 마가리톤도 교수와 대만 중앙연구원 호우광 박사 등 국내외 연구진의 도움을 받았다. 첨단과학기술 분야의 어려운 난제를 풀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연구가 효율적이며, 앞으로 더욱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학분야에서는 경쟁만 앞세우기보다 인터넷과 같은 정보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통로를 잘 이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초고해상도와 실시간이라는 두가지 문제를 해결한 고품질 X선은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 덕분에 해결됐다. 2000년 포항 방사광가속기에 건설된 전용 빔라인이 연구의 밑바탕 역할을 한 것이다. 첨단과학기술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방사광가속기와 같은 연구 기반시설이 밑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인적 자원이다. 그러나 이공계의 처우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아 과학인력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양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교수는 미래의 과학도들에게“단기적인 안목을 버리고, 좀더 멀리 내다보면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 줬다. 특히 X선 구조 분석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 외국과 직접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는 선구자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중요 하다는 설명이었다.

제교수는“X선 투시현미경 기술과 같은 구조분석학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나노 소재 개발에 커다란 기여를 한다”며“첨단 나노소재 개발의 성패가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밝혀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구조분석학의 새로운 첨단기술이 개발 됐다는 사실은 과학도들에게 자부심과 함께 일종의 의무감을 안겨준다. 앞으로 미시 세계를 보여주는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 일이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포항공대의 방사광가속기. 재 료공학을 비롯한 첨단과학기술 의 발전에는 연구 기반시설이 밑 바탕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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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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