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독일, 그 다음이 한국. 세계 4번째다. 과연 무슨 순위일까.
주인공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홀로스피릿’. 이곳은 상업용 홀로그램 사진을 촬영하는 스튜디오로 지난 2월 세계에서 4번째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문을 열었다. 스튜디오 내부로 들어서니 마치 금방이라도 말하고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한 3차원 입체사진들이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3차원 영상을 재현하는 홀로그램은 국내에 많이 보급됐지만 인체 홀로그램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외국에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 팝스타 마이클 잭슨 같은 유명인사나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홀로그램 사진이 낯설지 않다고 한다. 이제 누구나 3차원 입체사진을 찍을 수 있다. 과연 인체 홀로그램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순식간에 발생하는 펄스 레이저
일반 사진은 태양광 또는 형광등 같은 빛이 물체에 반사되면 카메라 렌즈로 모아 필름에 기록하는 방식이다. 빛의 밝기 분포만을 기록하기 때문에 평면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홀로그램은 빛을 물체파와 기준파의 두 경로로 분리한다. 물체에 반사돼 나온 물체파와 물체에 닿지 않은 기준파가 만나면 서로 중첩돼 수많은 선으로 이뤄진 간섭무늬가 생긴다. 바로 이 무늬가 필름에 기록된다. 간섭무늬에는 빛의 밝기뿐 아니라 물체 각 부분까지의 거리 정보도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필름에 기록된 영상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간섭무늬는 태양광이나 형광등처럼 여러 가지 색이 포함된 백색광원으로는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홀로그램은 단색광원인 레이저를 사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인 레이저가 인체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매우 민감하다는 것. 숨만 쉬어도 초점이 맞지 않거나 아예 홀로그램이 찍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인체 홀로그램에서는 극히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특수 레이저를 사용한다.
“10억분의 25~35초 동안 발생하는 펄스 레이저입니다. 아무리 미세한 움직임이 있어도 10억분의 25초 동안에는 정지해 있게 되죠. 사람을 찍으려면 수백MW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그만한 에너지가 일정하게 나오도록 정교하게 조절된 첨단 레이저에요.”
홀로스피릿 김종우 대표이사의 설명이다. 사실 펄스 레이저는 옛 소련에서 레이저 무기를 만들다 개발됐다. 옛 소련 붕괴 후 이 기술은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1990년대부터 민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체 홀로그램에 이용된지 십수년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펄스 레이저의 간섭무늬가 기록된 원판필름을 현상해 인화한 다음 화학약품을 이용해 녹색, 금색, 붉은색 등 색깔을 입히면 입체사진이 완성된다. 현재 기술로는 모든 천연색상을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장보고와 이순신 홀로그램 촬영
“김명민씨 일정이 변경됐답니다. 지금 빨리 서둘러 촬영 준비해야겠어요.”
홀로그램 기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매체과 이주용 교수는 요즘 연예인을 모델로 홀로그램 작품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해신’의 최수종, 채시라, 송일국, 수애와 ‘불멸의 이순신’의 최재성, 이재룡은 이미 촬영을 마쳤다. 이 교수 연구실을 방문한 날 마침 이순신 역할을 맡고 있는 탤런트 김명민씨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연예인들의 홀로그램은 현재 KBS 본관 시청자광장에 전시돼 있다.
이번 연예인 홀로그램은 스테레오그램 방식으로 제작됐다. 일반 카메라로 다양한 각도에서 180~300장의 사진을 찍은 다음 이를 홀로그램용 필름에 합성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스테레오그램은 단 한번 촬영하는 펄스 레이저 홀로그램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스테레오그램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다른 포즈를 취하면 각도에 따라 여러 포즈가 나타난다. 기울기에 따라 달리 보이는 신용카드 앞면 홀로그램처럼 말이다.
영원불변의 사진
“인체 홀로그램은 제작하는 사람에 따라 입체감, 밝기, 거리감 같은 특성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체계적으로 홀로그램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작하는 사람이 거의 독학하다시피 해서 각자의 노하우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실제로 김 사장과 이 교수 모두 리투아니아, 호주, 독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 홀로그램 전문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술을 익혔다고.
홀로그램은 한번 찍어두면 시간이 지나도 ‘빛바랜 사진’이 되지 않는다. 반영구적 보존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일반 사진은 필름이 조금만 손상되면 다시 복원하기가 어려운데 반해, 홀로그램은 원판필름이 작은 조각만이라도 남아있으면 전체 사진을 다시 복원해낼 수 있다. 일반 사진이 빛의 강약을 필름 각 부분에 기록하는 것과 달리 홀로그램은 물체파와 기준파의 간섭무늬를 필름 전체에 기록하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간섭무늬를 홀로그램 필름에 다른 각도로 기록하면 한 필름에 여러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즉 왼쪽과 오른쪽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체 홀로그램이 널리 보급되기까지는 난관이 많다. 무엇보다 일반 사진에 비해 가격이 매우 비싸다. 한번 촬영하는데 최소 60만원 정도다. 김 사장은 “리투아니아에서 수입한 펄스 레이저 장비만도 3억을 호가하고, 필름과 약품 모두 수입하기 때문”이라며 “홀로그램 사진이 좀더 대중화되면 가격이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홀로그램 사진은 실제 눈으로 보면 입체감이 확연히 느껴지지만 종이나 모니터 같은 2차원 매체에서는 평면사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홍보하려면 전시회 같은 방법으로 실제 작품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일반 사진처럼 상용화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교한 입체영상 정보를 기록하는 펄스 레이저 홀로그램은 인체 사진뿐만 아니라 정밀한 측정이 필요한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다. 어떤 물체를 홀로그램으로 찍어 원판필름에 입체 정보를 기록해둔 다음 물체가 변형된 후 다시 홀로그램을 찍어 입체 정보를 비교해 변형된 정도나 원인 등을 알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타이어의 결함이나 신소재의 특성 변화 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또한 펄스 레이저 홀로그램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체나 유체의 흐름 같은 순간적인 현상을 규명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반도체의 저장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으로 펄스 레이저 홀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필름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한번에 기록할 뿐만 아니라 일부가 손상돼도 전체 정보를 복원할 수 있는 특성 덕분이다. 펄스 레이저 홀로그램은 역사적 유물, 의학표본, 건축물 등 장기적으로 기록이 필요한 분야뿐만 아니라 컴퓨터디스크, 개인용 병원기록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