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漢灘)바이러스, 서울바이러스. 미생물 이름에 우리에게 낯익은 한탄강의 한탄, 수도 서울의 이름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불리는 명칭이 아니라 세계의 학계에서 인정하는 학술용어이다.
한탄바이러스 또는 서울바이러스는 세계 3대 전염병 중의 하나인 신증후출혈열(유행성출혈열)의 병원균이다. 이제까지 밝혀진 이 병의 병원균은 3종류. 이중 2개가 모두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발견의 주인공이 바로 고려대 미생물학과 이호왕(李鎬汪·58)교수. 올해 처음으로 제정, 최근에 발표한 인촌(仁村)상(각 부문 상금 2천만원) 학술부문 수상자이다. 50~60년대의 뇌염연구와 60년대말부터 시작 76년 한탄바이러스, 80년 서울바이러스 발견, 현재에 이르기 까지 유행성출혈열 치료제와 백신개발의 지속적 연구를 공로로 인정받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매년 8백명 이상 발병
-이번에 인촌상을 수상하게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 호왕'하면 '유행성출혈열'이 연상되는데 이병이 의학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읍니까?
"병을 수자화하여 표현하는게 조금은 이상하지만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설명해보죠. 열대성전염병인 말라리아가 세계적으로 1년에 5백만명이 발생해서 그중 1백만명이 죽습니다. 또한 간염의 경우 1백만명이 발생해서 10만명 이상이 사망합니다. 그 다음이 출혈열인데 매년 50만명 이상이 발병해서 5~6만명이 죽는 걸로 나타나고 있읍니다. 이 수자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증가추세에 있고 전세계에 걸쳐 이 병이 발생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읍니다. 특히 중국 소련 같은데서는 환자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읍니다."
우리나라도 공식 입원환자수가 연 8백~1천명 가량되고 이중 10% 정도가 사망한다는 것. 이는 기록 집계가 가능한 입원환자수만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까지 합치면 2~3천명 가량의 유행성 출혈열 발병자가 생긴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이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방주사약 치료제 등은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보통 병원체가 발견되면 치료법이나 백신의 개발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10~20년이 지나야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이 완료됩니다. 우리가 처음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이 1976년이니까 이제야 비로소 치료제 개발을 완료할 시점에 들어섰다고 봐야 되겠지요.
현재 우리 연구팀은 백신개발 연구에 전력하고 있읍니다. 머지않아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출혈열은 들쥐의 한종류인 등줄쥐와 집쥐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가 타액이나 소변을 통해 배설되었다가 공기를 통해 사람의 호흡기에 전염되는 무서운 병. 이 병에 감염되면 고열과 저혈압뿐 아니라 신장에도 이상을 일으키게 된다.
출혈열이 처음 발병된 시기는 정확치는 않으나,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3년 소련에서이다. 1915년경 영국에서 집단적으로 8천명이 발병했고 그 이후 중일 전쟁 당시 만주에서 일본군인 1백만명중 1만2천명이 이 병에 걸려 4천명이 죽었다. 2차대전 때에는 독일군 1만 8천명이 거의 동시에 발병한적도 있다. 야영을 많이하는 군인들과 들일을 주로 하는 농부들이 이 병에 주로 걸리는 것은 등줄쥐의 타액이나 배설물이 먼지를 통해 공기전염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25동란때 이른바 '철의 삼각지'에 주둔한 유엔군(주로 미국군)중 3천2백여명의 환자가 2년간에 걸쳐 발생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킨바 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 만주 독일에서 발생한 이 원인모를 괴병이 같은 병이라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1976년 이교수가 처음으로 이 원인모를 괴병의 병원균을 발견할 때까지 미국 소련 유럽국가 등에서는 과학자 수백명을 동원, 연구하였으나 병원체분리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출혈열연구의 메카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연구원과 막대한 연구비를 동원해 이 병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했는데, 유독 이교수만이 좋은 결과를 얻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만이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지요. 핀란드에서도 출혈열바이러스의 한종류인 푸말라바이러스를 발견했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노력과 결실을 얻고 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가 유행성출혈열에 관해서는 메카라 할 수 있읍니다. 이 병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와서 한탄강지역을 한번 둘러보고 우리 연구팀을 한번 만나보아야 한다는 관례가 있지요. 이른바 성지순례라 할까요. 현재까지 다녀간 사람이 1백명이 넘습니다.
우리가 처음 병원체를 분리하는데 성공한 것은 집단 발병지역에 뚜렷하고 그당시 새로 개발된 검사법인 형광항체법의 적용, 혈액속의 항체변화, 다른 사람들은 조사하지 않은 폐조직검사 등을 했다는데 있읍니다. 더구나 같이 연구하던 7~8명의 연구원들이 이병에 감염돼,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겠지요. 나머지 이유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요."
마지막 표현대로 운이 좋아 세계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게 된 것만은 아닌것같다. 이교수의 연구소는 현재 세계보건기구(WHO) 출혈열연구중심센터로 지정받고 있다. 여기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분리되는 출혈열바이러스를 분튜하기도 하고 치료약과 백신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연구비가 모자라 애를 먹은 적은 없읍니까?
"연구자에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시설과 연구비인데, 저는 그부문에 대해서 별로 어려움이 없었읍니다. 미국정부에서 출혈열 연구로 갖다 쓴 연구비만 만 18년 동안 1백50만달러나 되니까요. 오히려 연구시설을 설치할 공간이 모자랄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연구비가 모자라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한가지 충고를 한다면 연구는 연구실 안에 틀어 박혀서 책만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연구목표와 실적을 적극적으로 외부로 알려 연구비를 따내고 연구시설을 갖추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보통 외국의 연구비를 한번 따내려면 10번이상의 서류를 접수시키는 노력은 해야하지요. 요새 젊은 사람들은 앉아서, 누가 찾아와 자신의 연구를 알아주고 돈을 대주기를 바라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읍니다."
이교수는 유행성출혈열 연구업적으로 79년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최고시민공로훈장을 받았고 80년 대한민국 학술원저작상, 83년 미국육군 연구업적상을 받은바 있다.
요즘 매스컴의 AIDS에 대한 관심에 대해 "왜 그렇게 떠드는지 모르겠다. AIDS는 우리나라와 아무래도 거리가 멀고 세계적으로도 지난 7년간 6만여명이 발병해 반수 정도가 사망한 것에 불과 하지 않는냐. 물론 새로운 병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것,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여론에 너무 놀아 나는 것 아니냐"며 매스컴의 비현실적 외국의존적 경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도 한번 노벨상에 도전해야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을 낸 사람, 그런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주위에서 도와주는 수밖에 없지않겠냐"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이교수는 86년 노벨의학상 후보에 올랐었다. 아마도 치료제와 백신개발이 완료돼 출혈열연구가 마무리되면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앞으로의 연구계획도 치밀하게 세워놓고 있다. '노인성질환'이 바로 이교수의 앞으로 연구테마.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들에게 어쩔수 없이 닥치는 문제가 바로 뇌에 오는 신경성질환이다. 옛날에는 노망(老妄)이라고 치부해버렸지만 사실은 이것도 병의 하나인 셈이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신조를 갖고 지칠줄 모르는 연구의욕을 불태우는 이교수는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는 격언을 아직도 자신의 마음속에 품으면서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를 연상케 하는 패기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