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내에서 마라톤을 즐기는 인구만 10만명에 달한다. 간편한 옷차림에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어디서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만만하게 보다가는 부상을 당할 수 있다. 달리기는 물리적으로 보면 ‘충돌’의 연속이다. 지면에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몸무게의 2~3배 가량의 충격이 그대로 몸에 전달된다. 몸무게 70kg인 사람이 42.195km를 뛰면 350kg의 펀치로 2만8125번을 두드려 맞는 것과 같은 격. 따라서 달리기를 할 때 자신의 몸에 맞는 운동화를 고르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운동화가 내 몸에 꼭 맞는 것일까? 달리기 마니아들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줄 ‘똑똑한’ 운동화가 등장했다. 최근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 ‘아디다스 1’이 그 주인공이다.
극비 프로젝트 꿈의 운동화
2001년 미국 포틀랜드의 한 연구소. 책상 위에는 각양각색의 장난감과 전선 등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퍼비’(Furby)도 눈에 띈다. 퍼비는 사람의 말을 따라하고 상황에 따라 ‘추워’,‘무서워’ 등 감정까지 표현하는 ‘인공지능’ 인형. 퍼비는 1990년대 말 미국에서 그야말로 인기가‘짱’이었다.
크리스찬 디베네데또 박사가 퍼비를 해체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다. 그는 5명으로 구성된 ‘이노베이션 팀’의 리더다. 디베네데또 박사팀은 전 세계에서 아디다스의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7개 팀 중 하나.
‘조깅을 하든 마라톤을 하든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운동화는 없을까?’디베네데또 박사팀의 이번 임무는 바로 이런 ‘꿈의 운동화’를 만드는 것. 몸무게에 따라, 도로의 지면 상황에 따라, 달리는 유형에 따라 달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쿠셔닝은 모두 다르다. 쿠션은 발꿈치가 지면에 닫을 때 속도를 줄여 발과 지면 사이의 충격량을 줄여준다. 쿠션이 너무 많이 압축되거나 너무 조금 압축돼도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커져 무릎에 부담을 준다. 그간 발 모양이나 길이, 달리는 장소와 뛰는 자세 등을 각각 고려한 ‘맞춤형 운동화’가 개발됐다. 만약 꿈의 운동화가 개발된다면 맞춤형 운동화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그런데 퍼비는 운동화와 무슨 관계인가. “아디다스 1은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신발입니다.” 디베네데또 박사의 설명이다. 퍼비와 아디다스 1의 공통점은 바로 인공지능. 디베네데또 박사팀은 꿈의 운동화의 해답을 인공지능에서 찾았다. 운동화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달아 시시각각 쿠셔닝을 판단하고 조절해 신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신발로 변신하도록 한 것. 운동화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장착하려면 우선 시스템의 크기가 작아야 한다. 개발팀은 작은 인형 퍼비에 내장된 모터와 스위치에서 힌트를 얻었다.
퍼비에서 시작해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채 연구에만 매달리기를 4년. 극비로 제작됐기 때문에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등 개발팀의 7명을 제외하고는 운동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디베네데토 박사팀의 올슨 연구원이 운동화를 신고 복도와 인근 숲을 뛰어다니며 테스트까지 직접 했다. 드디어 2만가지의 상황을 포착하는 센서와 1만가지의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 두뇌를 가진 아디다스 1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셔닝 조절하는 컴퓨터 두뇌
아디다스 1을 신으면 우선 옆에 달린 (+)(-) 버튼부터 눌러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발광다이오드에 불이 들어오고 그 때부터 인공지능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한다. 수은 전지 하나면 인공지능 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며 100시간은 거뜬히 편안하게 달릴 수 있다.
아디다스 1을 신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발뒤꿈치 위쪽과 아래쪽에 장착된 2개의 마그네틱 센서는 신발과 지면에 가해지는 압력을 측정한다. 센서는 압력에 따라 자기력선의 간격을 0.1mm 단위로 측정해 자기장의 변화를 감지한다. 센서가 측정한 데이터는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전달돼 신발의 압력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 가장 적합한 쿠션의 상태를 결정한다.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계산이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연결된 모터가 돌아가면서 케이블의 길이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케이블이 늘어나면 플라스틱 쿠션이 느슨해지고, 반대로 짧아지면 그만큼 딱딱해진다. 예를 들어 잔디밭을 달릴 때보다 아스팔트 도로를 달릴 때 플라스틱 쿠션은 더 부드러워진다.
그렇다면 아디다스 1이 쿠션의 상태를 결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마그네틱 센서는 1초에 1000번씩 자기장의 변화를 측정한다.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20MHz 컴퓨터로 센서의 데이터를 1초에 500만번씩 읽고 계산한다. 케이블의 길이를 조절하는 모터는 헬리콥터 날개보다 더 빨리 돌아가며 케이블을 줄였다 늘였다 한다. 이 과정이 연속으로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댔을 때 조건반사가 일어나는 정도다. 인간의 무릎 반사 운동보다는 무려 2000배나 빨리 일어난다. 이 때문에 아디다스 1에서는 끊임없이 쿠셔닝이 변하고 있지만 정작 운동화를 신은 사람은 발에 가해지는 압력이 항상 똑같다고 느낀다. 달리는 사람이 미처 깨달을 틈이 없을 정도로 빨리 바뀌는 것이다. 덕분에 아디다스 1을 신은 발은 그만큼 호강한다.
혁신 거듭할 디지털 아디다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베컴의 축구화와 축구공 피버노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보통 축구화는 발 모양과 비슷하게 앞등이 매끈하기 마련인데 베컴의 축구화에는 앞부분에 오돌토돌한 고무 돌기가 달려 있었다. 축구공 피버노바에는 볼 컨트롤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되던 공기방울이 오히려 더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공의 회전력이 더욱 커져 그 해 월드컵에서는 여느 해보다 많은 골이 터졌다.
고정관념을 철저히 깬 축구화와 축구공은 모두 아디다스의 작품이었다. 1년에 하나 이상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아디다스의 의지를 그대로 실천한 것. 아디다스 1은 그런 아디다스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곧 아디다스 1을 만나볼 수 있다. 전국을 통틀어 200켤레 밖에 없다고 하니 아디다스 1을 ‘찍은’사람이라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 단 지금 출시된 아디다스 1은 모두 남성용이고, 여성용은 가을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가격은 30만원대로 다소 비싸지만 장난감이 아닌 제대로 된 ‘디지털 운동화’를 기다렸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만족할 것이다.
아디다스의 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아디다스 1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접목한 인공지능 농구화가 개발되고 있다. 조만간 센서가 내장된 축구공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단하는 경기를 관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불가능을 모르는 아디다스의 끝없는 도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