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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에 세운 디자이너의 작업실

협동 및 인터랙션 연구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디자인 세계에서도 ‘보기 좋은 디자인은 곧 명기(名器)’로 통한다. 아무리 앞선 기술이나 아이디어도 소비자의 세련된 감각을 따르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게 오늘의 현실이다. 국내 기업을 비롯해 대표적인 해외 유명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디자인 분야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이처럼 기술이라는 단순한 음표의 묶음은 디자인이라는 화성법을 통해 기억에 남을 명곡으로 승화된다.

하지만 최근 디자인은 상품을 단지 예쁘게 포장하던 기존 역할을 넘어서고 있다. 기술력을 상징하는 하나의 코드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 ‘디자인=기술’이라는 등식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 됐다.

KAIST 산업디자인학과 남택진 교수는 “최근 디자인의 주요 키워드는 상호작용(인터랙션)과 협동”이라고 말한다. 초고속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좀더 좋은 디자인을 위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협동하는 것이 최근 흐름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들 첨단 기술은 디자이너나 기술자, 기업들과 소비자의 경계를 점점 더 무너뜨리고 있다. 기업도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디자인을 가장 먼저 고려하기 시작했다.

남 교수가 이끄는 협동 및 인터랙션 연구 실도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한다. 남 교수의 연구는 ‘어떻게 하면 디자인을 편리하게 잘 할 수 있을까’란 고민에서 시작했다.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과학’은 남 교수팀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협동 및 인터랙션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남택진 교수. 그는 KAIST 출신 첫 교수이기도 하다.


과학이 디자인한 디자인

남 교수 연구팀은 우선 가상공간에 작업장을 마련하는 계획을 세웠다. 가상현실과 초고속 네트워크를 이용해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가상 디자인 작업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이버공간에 들어간 디자이너는 머리에 디스플레이 장치를 쓴채 장갑형 입력장치를 끼고 움직이며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다른 디자이너와 사이버작업장에서 만나 공동 작업할 수도 있다. 이런 첨단 디자인 환경이 가능해진 것은 3차원 애니메이션과 영화특수효과에 이용되는 모션캡쳐기법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공촉감(햅틱스) 등 첨단 기술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디자인 테크놀로지는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한 중간 성격의 디자인이자, 상호작용과 협동을 강조하는 최근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이런 남 교수팀의 연구실적은 디자인 분야 보다는 다른 학제간 연구에서 더 인정을 받고 있다. 국제인간컴퓨터인터페이스학회(HCI)와 정보통신응용기술국제학회(ICAT)에서도 이미 수차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직접 모형을 제작한 뒤 사용해봄으로써 사용상 불편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소비자가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는지 찾아내는 일도 연구팀의 몫이다. 남 교수팀의 연구는 기술 개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품 개발에 곤란을 겪는 기업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것도 연구팀의 연구과제 중 하나. 순수 예술이 아닌 산업과 밀접히 관계된 분야이기 때문에 기업 사례 분석은 연구에 중요한 밑거름인 셈이다. 남 교수는 “미국 애플이나 인텔 등 외국 기업과 달리 아직까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디자인 원칙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은 매우 적은 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같은 회사 제품끼리도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표준화와 규격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만큼 제품의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남 교수는 설명한다.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적 연구도 빼놓을 수 없는 연구대상이다. 남 교수 연구팀은 2003년 삼성전자와 중국 칭화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한국과 중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선보이지 않은 전자제품을 제안받는 조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그 결과를 토대로 만능청소기, 발건조대, 표정짓는 세탁기 등 시제품을 직접 디자인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기술을 디자인에 접목하고 있는 대학은 전세계적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중국의 칭화대 등 7~8여개에 그친다.

남 교수는 “대다수 디자인학과가 조형 교육에 치우치고 있는 반면 이들 대학은 첨단 과학기술을 디자인에 전폭적으로 접목시키는 남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KAIST 산업디자인과가 그만큼 세계 톱10에 들어갈 확률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얘기다. 남 교수는 “잘된 디자인 하나는 기업에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줌은 물론 사용자의 감성까지 윤택하게 한다”고 힘줘 말한다. 냉정한 경제관으로 점철된 듯 보이는 디자인도 편리함을 강조하는 현대 과학기술과 미적 감수성, 그리고 인간적 향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2003년 삼성전자, 중국칭하대와 공동 조사후 발표한 제품 카탈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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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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