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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박자 맞추는 박수의 비밀

여자끼리 방 같이쓰면 생리주기 비슷해진다

유명한 음악회가 끝났을 때 감동에 겨워 박수를 친다.그런데 이따금씩 청중들의 박수가 박자를 맞추는 일이 생긴다.의식적이지 않은 이 행동은 같은 방을 쓰는 여자들이 생리주기가 비슷해진다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말레이시아의 깊은 원시림 속에는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자연현상이 있다. 굽이도는 강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맹그로브 숲속 나뭇가지에 황혼이 깃들면,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이는 불빛 마냥 반딧불들이 하나둘씩 깜빡이기 시작한다. 어둠이 짙어지고 밤이 되면, 어느새 강가의 나무숲은 반짝이는 반딧불들로 장관을 이룬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밤이 깊어지면 제각기 반짝이던 반딧불들이 일순간 같은 박자로 깜빡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수컷 반딧불이들이 벌이는 한밤의 불빛 콘서트는 무려 3시간 이상 계속되기도 한다.

1970년대 생물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한 실험이 있다. 시카고대학의 생물학자 마사 맥클린톡과 캐서린 스턴 박사는 우연히 ‘여자들끼리 방을 같이 쓰면 생리주기가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들의 생리주기를 일치하게 만든 매개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여성들로부터 풍겨지는 무언가가 매개체로 작용했으리라 믿고,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한 여성의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채취해 냄새를 없앤 후, 다른 여성들의 윗입술에 살짝 발랐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생리주기를 비교해보았다. 한달 후 ‘호르몬이 포함된 땀 분비물’을 바른 여성들끼리 생리주기가 모두 같아졌음을 확인했다.

반딧불의 반짝거림과 여성의 생리주기.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가지 현상에는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각각의 개체들이 주기적인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어느 순간 같은 박자로 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 끝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반드시 존재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반딧불의 반짝거림이나 여성의 생리주기는 일정한 주기를 가진 주기운동이며, 다른 반딧불이에서 발생하는 빛 신호나 여성들의 겨드랑이 분비물은 이들의 주기운동을 연결하는 매개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주기적인 운동을 하는 개체를 물리학자들은 ‘진동자’(oscillator)라고 부른다. 그리고 매개체에 의해 ‘연결된 진동자들’이 동시에 같은 박자로 운동하는 현상을 ‘동기화’(synchronization)라고 한다.

반딧불의 반짝거림이나 여성의 생리주기 외에도, 동기화 현상은 자연계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만여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심장의 페이스메이커(pacemaker)는 늘 똑같은 박자로 전기신호를 발산해 규칙적인 심장박동을 유도하며, 호흡을 관장하는 척수와 소뇌의 세포들도 늘 같은 주기와 위상으로 신호를 내보낸다. 북아메리카 매미들은 17년마다 한번씩 일제히 땅속에서 올라와 번성하고, 가을밤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 역시 지휘자에 맞춰 노래하듯 아름다운 화음으로 울어댄다.

그들은 왜 같은 박자로 울어대고 발산하고 진동하는 것일까. 누구의 지휘도 없이 그들은 어떻게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박자로 운동할 수 있는 것일까.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동기화 현상을 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물리학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최근 들어 비선형 동역학의 발전과 컴퓨터 속도의 비약적인 증가로 인해 지금까지 신비의 영역에 묻혀 있던 동기화 현상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반딧불이의 불빛 콘서트에 대해 얻은 해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럿이 박수를 칠 때 가끔 자신의 박수가 옆사람과 박자를 맞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는가.또 그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은?


추시계들의 박자 맞추기

동기화 현상을 제일 먼저 관찰한 과학자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앙 호이겐스였다. 추의 진동으로 작동하는 시계를 처음으로 발명했던 그는 1965년 2월 가벼운 질병으로 집안에 누워있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무 할 일이 없던 그는 우연히 벽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발명한 추시계에서 신기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한쪽 벽에 나란히 걸어놓은 두 추시계의 추들이 같은 위상(박자)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몇시간 동안 추시계를 관찰해보았지만, 추의 운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추 하나를 꺼내 위상을 반대로 바꿔보았지만, 두 추시계는 30분도 채 안돼 다시 같은 위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추시계 하나를 다른 쪽 벽으로 옮겨보았다. 그랬더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들은 각기 다른 위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기마저 하루에 5초씩 달라졌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추 사이의 공기 진동이나 벽의 작은 떨림으로 두 추의 운동이 동기화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는 ‘연결된 진동자에 관한 연구’라는 학문이 생겼고, 진동자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됐다. 하나의 진동자 운동을 기술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스프링에 매달린 추를 떠올려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추는 중력과 스프링 탄성에 의해 위아래로 흔들리며 주기적인 운동을 반복한다. 이때 추의 속도와 위치는 간단한 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러나 몇개의 추를 스프링으로 연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각각의 추들이 가질 수 있는 운동상태(모드) 또한 늘어나며, 추들의 개별적인 운동은 훨씬 복잡해진다. 추들 사이의 스프링 연결상수가 비선형적이라면(스프링 탄성이 ‘늘어난 길이’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고 좀더 복잡한 형태로 증가한다면), 방정식으로 풀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과학자들은 심장의 페이스메이커나 여성의 생리주기,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연결된 진동자’로 모델링한다. 주기적인 운동을 하는 심장세포와 여성의 생리, 귀뚜라미를 ‘추’로 본다면, 심장세포들 사이의 연결강도나 겨드랑이 분비물, 청각신호는 ‘스프링 상수’로 표현할 수 있다. 컴퓨터 속도의 빠른 증가 덕분에 비선형방정식을 계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연결된 진동자에 대한 풍부한 운동을 기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등장은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운동을 좀더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보여주게 됐다.

1975년 뉴욕대학교 찰스 페스킨 박사의 연구는 동기화 현상에 대한 좋은 연구방법을 제공하는 선례가 됐다. 그는 축전기를 저항으로 병렬 연결해 심장의 페이스메이커 세포를 모델링했다. 입력전류가 흐르면 축전기의 전위는 증가한다. 축전기의 전위가 증가함에 따라 전류는 더욱 증가하지만 증가율은 줄어든다.

그러다가 역치값(threshold)을 넘어가면 축전기는 방전되고, 전위는 다시 0으로 떨어진다. 입력전류에 의해 전위는 다시 증가하고 축전기는 방전과 충전을 되풀이하게 된다. 두개의 축전기를 저항으로 연결해놓은 페스킨의 전기회로는 심장세포의 동작원리를 그대로 본뜬 모델이었다. 간단한 초기조건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전기회로의 축전기들은 어느 순간 일제히 같은 박자로 방전과 충전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일순간 동기화된 것이다.

페스킨의 모델은 비록 간단했지만, 동기화 현상이 ‘연결된 진동자 시스템’의 풍부한 운동상태 중 하나이며, 동역학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1989년, 당시 MIT대학 교수였던 스티븐 스트로가츠 박사는 페스킨의 모델이 수십개의 진동자를 연결한 상태에서도 동기화 현상을 보이는지 컴퓨터로 확인해보았다. 그는 축전기들 사이의 저항값을 모두 다르게 해,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동기화 현상이 가능한지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한결같았다. 충전기의 개수에 상관없이 모든 충전기는 결국 같은 박자로 방전과 충전을 되풀이했다. 동기화 현상이 연결된 진동자의 내재적인 특성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네덜란드의 호이겐스는 한쪽 벽에 나란히 걸린 두 추시계의 추들이 같은 박자로 흔들리는 사실을 발견했다.사진에서처럼 많은 추시계들도 마찬가지일까.


캥거루와 원주민의 걸음걸이 차이

‘동기화’된 상태는 진동자들의 가장 간단한 운동상태지만, 진동자들이 항상 동기화되는 것은 아니다. 연결된 진동자들 사이엔 다양한 패턴들이 존재한다. 이안 스튜어트를 비롯한 많은 수학자들은 연결된 진동자의 풍부한 패턴들을 하나씩 밝혀냈다.

우선 위상이 반대가 되는 경우가 있다. 호주 평원을 달리는 캥거루와 이를 뒤쫓는 원주민의 걸음걸이를 비교해 보자. 캥거루는 뛸 때 두발의 위상이 일치한 상태로 움직이다. 그러나 원주민은 뒤쫓을 때 왼발과 오른발의 위상이 정반대다. 캥거루의 걸음걸이를 동기됐다고 표현한다면, 원주민의 걸음걸이는 ‘반대 위상으로 동기’됐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때 원주민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왼발이 아픈 원주민이라면 지팡이는 왼발과 같이 움직일 것이다. 오른발, 지팡이와 왼발, 오른발, 지팡이와 왼발. 만약 나이가 들어 지팡이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발을 옮길 때마다 지팡이에 의지할 것이다. 왼발, 지팡이, 오른발, 지팡이, 왼발, 지팡이, 오른발, 지팡이. 이처럼 세개의 진동자인 경우 좀더 복잡한 모드가 가능하다.

네발 동물들의 걸음걸이는 더욱 재미있다. 토끼는 뛸 때 두 앞발끼리는 같은 위상으로 움직이고 뒷발과는 반대 위상이 된다. 반면 기린은 한쪽 앞발과 같은 쪽 뒷발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인다. 왼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같이 움직이며, 오른쪽 발들은 이와 반대 위상으로 움직이다. 말은 좀더 특이하다. 대각선 발들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인다. 왼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이며, 오른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같이 움직인다. 코끼리는 더욱 특이하다. 네발이 모두 제각각 90° 위상 차를 갖고 다르게 움직인다. 같은 위상으로 움직이는 발이 하나도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네발로 걷는 동물들의 걸음걸이가 ‘네개의 진동자를 연결한 시스템’과 유사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네개의 진동자 시스템의 기본 모드는 위에서 보여준 네경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왜 연결된 진동자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없지만, 근육과 뼈의 정교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동물들의 발을 단순한 진동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생물학자들은 운동을 관장하는 대뇌신경망이 ‘시냅스로 연결된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어, 연결된 진동자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대뇌신경망의 동역학적 특징이 동물들의 걸음걸이를 진동자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연결된 진동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다양한 조건에서 시스템이 보이는 특성을 수학적으로, 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실제 시스템을 간단한 ‘연결된 진동자 시스템’으로 모델링해, 현상을 설명하는 논문들이 물리학 저널에 종종 발표된다.

1초에 2회 일정한 박수속도
 

아름다운 음악회가 끝난 뒤 이어지는 청중들의 박수세례 속에는 일정한 속도로 동기화된 박수가 숨어있다.


​1998년 헝가리의 물리학자 타마스 비섹은 부다페스트 음악 아카데미의 아름다운 음악회에서 동기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연주가 끝나고 3분간 이어진 청중들의 열광적인 박수세례 속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박수소리는 미친 듯이 무작위적으로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르자 청중들은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청중들의 박수에 답하기 위해 연주가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자, 박수소리는 순식간에 박자를 맞출 수 없을 만큼 열광적으로 바뀌었다. 박수세례가 3분 가량 이어지는 동안, 열광적인 박수와 동기화된 박수가 여러차례 되풀이됐다.

그는 그후 콘서트 홀 천장에 마이크로폰을 설치해 음악회 때마다 박수소리를 녹음해 분석했다.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지는 박수세례에는 열광적인 박수와 동기화된 박수가 대체로 6-7회 정도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것이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순식간에 다른 모드의 박수로 전환된다는 사실이다. 물리학자는 이것을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좀더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73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별적인 실험을 했다. 한사람씩 실험실로 불러 마치 방금 위대한 연주가의 공연이 끝난 것처럼 박수를 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마치 옆에 다른 청중들이 있어서 호흡을 맞춰야 하듯 박수를 치도록 했다. 비섹 박사는 두경우 학생들의 박수속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열광적인 박수는 1초에 3회에서 5회로 학생들마다 그 속도가 제각기 달랐다. 반면 다른 청중과 호흡을 맞추려는 박수는 1초에 2회 정도로 사람들마다 속도가 일정했다.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호흡을 맞추는데 적당한 박수의 속도를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듯이 쳐대는 박수에는 자신의 열정적인 감정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박자를 맞춰 치는 박수에는 다른 청중들과 하나됨을 느끼게 하는 편안함이 있다. 비섹 박사는 음악회에 자리한 청중들이 이 두감정들 사이에서 두종류의 박수치기를 되풀이한다고 해석했다.

귀뚜라미들은 왜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일까. 반딧불이들은 왜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박자로 깜빡거리는 것일까.혹시 그들도 약육강식의 살벌한 자연에서 하나됨을 느끼기 위해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아닐까.자연의 리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의 명쾌한 해답을 기다려본다.

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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