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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얼굴은 어느형인가

남방형ㆍ북방형ㆍ서남형

한반도에는 세 방향에서 도래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눈동자에 흐린 눈썹은 황해바다 건너에서, 세로로 높고 가로로 좁은 이마와 큰 턱은 북방으로부터, 합죽이형의 꺼진 코허리, 넓은 코 유전자는 남방 해로를 통해 유입된 것 같다.

에덴동산이 한국의 어디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한국인이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라고 우기기는 어렵다. 음식물을 나라 이동하며 사는 채취 경제였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인류 조상이 20만년 전 중부아프리카의 흑인 여자라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설, 타이 남쪽 순다열도라는 부삽이빨설, 중앙아시아의 고원설 등이 있는 데다 단일 기원설이 널리 지지받고 있는 이 시절에 도저히 오늘날 한국인의 조상은 한반도 어디에서 갑자기 생겨난 '아반'의 후손으로만 돼 있다고 우길 배짱은 서지 않는다.

조상들을 역추적해보면

그러면 오늘날 한국인 얼굴의 특징을 갖게 하는 유전자는 언제 어디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의 한반도에 들어오게 됐을까?

빨간색 잉크를 대야에 떨어 뜨리면 붉은 색이 점점 퍼져나가 나중에는 대야 전체에 그 영향이 미친다. 이처럼 한반도 전역에 일시에 동일한 농도로 이주해 와서 사람이 살게 됐다면 또 현재가 우리가 그들의 자손이라면 한국인은 대개 한가지 형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의 얼굴 형태를 보면 서로 생긴 모양이 다르고 또한 유형이 다른 것으로 보아 한가지 색깔만으로 돼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가지 색깔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문화적으로는 선사시대 이 땅에 살았던 선조들이 남겨 놓은 암각화나 고대 무덤 속의 부장품 등에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와 함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도 증거를 볼 수 있고, 체질인류학적인 증거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인 1930년대에 지금의 서울대학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의 해부학연구실이 주축이 돼 한국인에 대해 도합 2만명 정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조사결과는 한국인(조선민족)은 남쪽으로부터 이주해온 종족과 북쪽으로부터 이주해온 기마민족이 섞이거나 혼혈돼 형성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증거로서 북쪽지방, 북한 사람마들의 체형과 남한인의 체형이 서로 다른 점을 증거로 들고 있다.

해방 후 국내 해부학자들 중에는 이것도 일제 식민사관의 하나로 파악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인은 서로 다른 2개의 종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단합하지 못하고 분열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한국인에 대한 혈액항원감법의 증거로도 한국인의 유전형이 사회인문학적인 증거만큼 그렇게 단순하게 돼 있지는 않다고 보게 됐다.
 

한국인 조상의 한반도 유입경로 추정도
 

고구마형 합죽이형 동안형
 

좌우로 넓고 위아래가 낮은 이마, 굵고 짧은 눈썹, 거진 코허리, 콧망울이 큰 코, 합죽한 입은 주로 경남지역에 분포한다. 탤런트 박규채
 

얼굴 모양이 얼굴 형태를 결정하는 유전자와 그 유전자끼리의 조합에 의해 기본이 제시되는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한국인의 서로 다르게 생긴 모습은 서로 다른 유전자와 그 조합에 의해 생겼다는 말이다. 현대 한국인의 얼굴 모습이 다르게 생긴 이유가 유전자와 그 조합에 의한 것이라면 그 유전자를 물려준 조상을 계속 거꾸로 찾아 올라가면 조상들이 이주해온 경로, 적어도 이주(移住)와 관계있는 증거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민족의 형성과정을 생각하는 일반적인 도식은 이주, 또는 도래 변형 혼혈 치환 등이 있다. 한반도라는 유전자풀에 최초의 유전자를 뿌린이들은 어떤 형질의 누구이며(도래), 이들이 한반도라는 풍토와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어떠한 양태로 변했고(변형), 여기에 다른 색깔의 유전자를 뿌린이들은 어떤 형질의 누구 누구이며(혼혈), 이렇게 해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 혼합돼 균일화됨으로써, 처음의 도래자나 혼혈자와는 다른 새로운 형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치환)으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평소 맨처음 한국땅에 와서 살던이들을 -한민족을 지칭하는 개념과 명칭이 부족하다- 원주한국인(原住韓國人), 후에 이 땅에 이주해 와서 먼저 자리잡고 살던이들을 일부 밀어내고 일부와는 혼혈을 이룬, 체질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족속을 체질한국인(體質韓國人), 중국으로부터 받은 문화적 영향을 많이 끼친 족속을 문화한국인(文化韓國人)으로 분류해 보고 있다.

현대 한국인의 얼굴 모습에는 이 도래형 이주형 혼혈형의 특징이 남아 있어서 그들이 처음 들어와 살던 지역에 따라 지역별로 서로 다른 얼굴형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본다. 현재는 한반도 내의 인구이동으로 인해 동일 지역에도 여러 타입의 얼굴형이 공존하고 있다.

마치 삼원색을 섞으면 칙칙한 무채색으로 보이지만, 이를 자세히 보면 무채색점으로 돼 있어서가 아니고 빨강 파랑 노랑색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지도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 각 출신지별로 사진을 올려놓다 보면 얼굴의 전체형뿐만 아니라 이목구비의 모양까지도 지역에 따라 분포상에 어떤 차이, 혹은 유사성이 있음을 보게 된다.

우선 정면에서 본 머리의 윤곽을 보자. 한국사람중에는 머리의 정수리가 뾰족하게 위로 돌출하고 코와 턱도 길어서 전체적인 모양이 고구마같은 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정수리가 낮고 이마도 낮으며 얼굴이 합죽하고 턱과 얼굴 전체가 네모진 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얼굴과 눈 코 입이 작고 동그란 형도 있다. 나는 이들을 각각 고구마형 합죽이형 그리고 동안형으로 이름 붙여 놓고 있는데, 결혼해 자식을 둔 경우 대개는 자기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들 얼굴 타입의 분포상에 지역차가 있다면 이들 각 얼굴형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그 유입의 방향이나 경로와 관련지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눈썹이 흐리고 쌍꺼풀이 없는 눈, 요철이 적은 평평한 얼굴은 한반도의 서반부에 분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배우 오정해
 

얼굴형 따라다니는 이목구비

얼굴형의 한반도내 분포상을 우선 직관적으로 훑어 보자. 고구마형은 대개 평안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에서 충북 내륙으로부터 김해에 이르기까지 분포하고 있되 남쪽으로 갈수록 출현빈도가 적어짐을 볼 수 있다. 합죽이형은 반대로 남쪽지역에 많이 분포하되 북상해 충남 평남 함남의 주로 해안 인접지역에 밀집돼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동안형은 주로 전북 충남의 대륙지방, 황해도 등 한반도의 서반부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썹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역시 출신지역에 따라 분포상이 다르게 느껴진다. 진한 눈썹은 경남 전남 충남 평남 함남의 해안가에 주로 분포하고, 흐린 눈썹은 전북 충남의 내륙,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평북출신 등 한반도의 서반부에 많다. 쌍꺼풀 있는 눈은 충남의 해안지방 일부, 전남 경남에 많다. 평안도 경기도 강원도 출신중에는 코가 길으나 콧망울이 작은 형의 사람이, 경남 전남 충남 해안지역에는 코의 길이는 짧으나 넓은 형이, 코가 짧고 좁아서 코가 작아 보이는 사람은 황해도 경기도 내륙, 충남 내륙, 전북 등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이런 이목구비형의 분포상은 입술의 두께에도 지역차가 있다. 두꺼운 입술형은 한반도의 남쪽지방 특히, 해안 지역에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또 귀를 보아도 귓불이 있는 큰 귀는 남쪽지방, 그중에서도 해안 인접지역과 관계있고, 귓불이 없는 칼귀는 중부 이북의 내륙지방과 관계있다. 귓불이 중간이 형은 충남 전북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이렇게 단순히 얼굴과 이목구비의 모양만으로 무엇을 찾아내려 하는 방법은 그다지 타당하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런 어설픈 방법으로도 어떤 유의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본격적인 연구 가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되는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 배부른 선택은 금물이다.

그런데 얼굴을 유심히 보면 얼굴형과 이목구비의 형이 서로 같이 붙어다니는 현상을 찾을 수 있다. 즉 긴 고구마형은 대개 이마의 가로가 좁은 대신 높이가 높다. 모발은 가는 편이며 흰머리가 적제 나고 삿갓이마라 하여 뒤로 넘어간 형이 많다. 눈썹색깔은 흐리며 쌍꺼풀이 없다. 코는 긴 편이지만 넓지 않다. 입술이 얇고 귓불은 작은 칼귀형이다. 출신 지역으로는 평북 경기 충남북지방 출신에게서 보기 쉽다.

합죽이형은 얼굴이 짧고 네모지며 이마의 가로폭이 넓은 대신 높이가 낮다. 머리카락이 굵고 흰머리가 잘 나며 눈이 크고 쌍꺼풀이 있다. 귓불도 큰 것이 보통이다. 출신지로 보면 한반도의 서부, 남부 해안지역 출신자에게 많다.

한편 얼굴이 둥글고 눈 코 입이 작은 동안형은 귀모양도 동그라며 작다. 눈썹이 흐리고 미간이 넓으며 수염이 많이 나지 않는다. 대개 모발도 가늘어 숱이 적어 보이고 흰머리가 특히 적다.

이런 현상을 보면, 한국인의 얼굴은 이 세가지 형을 기본으로 결혼에 의해 서로의 중간형이 나오게 됨으로써 다양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세 방향에서 들어온 조상들

우리 조상들의 역사와 풍속으로 미루어 동네결혼을 해왔을 것이기 때문에 그 지방 사람들의 얼굴특징은 환경에의 적응과 유전자 상승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이주해온 방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의 얼굴 특징을 이루는 유전자형은 밖에서 흘러 들어온 것일까 아니며 한국인이 한반도 안에서 변형 또는 치환되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긴 것일까?

안면형의 분포상 지도를 얼른 보아 생각하기로는 작은 눈동자에 흐린 눈썹은 서쪽 황해의 건너편으로부터, 세로로 높고 가로로 좁은 이마와 큰 턱은 북방으로부터, 합죽이형의 꺼진 코허리, 넓은 코 유전자는 남쪽의 해로를 통해 이 땅에 들어온 것 같다.

199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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