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이전만 해도 파리라고 하면 예술과 문화, 패션을 생각했어. 그런데 이번에 파리를 다녀오면서 생각이 달라졌지. 파리에서 과학의 향기에 듬뿍 빠졌던 거야. 이번에 만난 한국 아이들, 프랑스 아이들과도 모두 친한 친구가 됐지.
즐거운 첨단 과학 라빌레트
이번에 방문한 곳 중 가장 근사했던 곳은 ‘라빌레트 과학관’이야.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어. 전체 넓이가 3만m²이라고 하니까 축구장의 4배쯤 해.
이곳은 1986년에 문을 열었대. 서울이나 대전에 있는 과학관은 낡기도 했고 실내가 단조롭고 썰렁했거든. 이곳은 높은 천정에 커다란 풍선이 십여 개나 매달려 있었어. 마치 커다란 쇼핑센터처럼 환하고 흥겨워 분위기 만점이었지.
우리들이 제일 신났던 곳은 ‘소리관’이었어. 온갖 장치들이 있었지. 소리를 내면 위에 달린 커다란 관을 타고 빙빙 돌아 다시 내 귀에 들리는 장치도 있고 꽉 닫힌 투명 상자에 자명종을 넣고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있었어.
중앙에는 내 키보다 큰 파라볼라 안테나 두 개가 서로 떨어져 있었는데 효민이와 마주 보고 선 뒤 안테나에 대고 말을 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는 줄 아니? 속삭이듯 말을 했는데도 효민이의 말이 들린 거야. 같이 간 기자 오빠는 “소리가 안테나에 반사돼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정민이와 연준이는 자신이 말한 소리가 2초 뒤에 다시 들리는 신기한 헤드폰을 끼고 서로 깔깔댔어. 지윤이는 착시 현상을 다룬 전시물을 보며 “거짓을 보는 것이 이렇게 신기한줄 몰랐다”고 하더라.
지난번에 인도네시아에서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거 알고 있지? 지구의 가장 바깥 부분인 지각은 몇 개의 커다란 판으로 이뤄져 있대. 수업시간에 ‘판 구조론’이란 것을 배웠는데 라빌레트 과학관에서 뭘 본 줄 알아? 손으로 여러 판을 움직이는 장치야. 둥근 운전대를 돌리면 지구의 역사에 맞춰 판이 움직이는데 마지막에는 인도판이 아시아판과 부딪혀. 그래서 히말라야 산맥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것까지 만들어지지는 않더라. 하하.
‘찡그린 모나리자’ 봤니? 남이 만든 것 말고 네가 직접 만들어 봤냐구. 난 이번에 해 봤어. 라빌레트 과학관에서는 여러 가지 컴퓨터 그래픽 장치가 있었어. ‘신비한 미소’를 띤 모나리자 원본을 20여 가지의 다른 표정으로 바꿀 수 있었어. 화난 모나리자, 크게 웃는 모나리자에 첫사랑에 상처받고 우는 모나리자까지 모두 내 손에 있소이다.
한쪽에는 유럽이 자랑하는 아리안 로켓과 소유즈 우주정거장의 모델이 있고 그 앞에는 커다란 잠수정이 있었어. 2층에는 식물을 키우는 온실과 첨단 자동차를 전시하는 코너가 있었지. 모두 직접 만져볼 수 있어 과학이 친숙해졌어.
화석과 박제의 천국 자연사박물관
넌 나중에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며. 그래서 한국에 자연사박물관이 몇 개 없다고 아쉬워 했잖아. 파리가 박물관의 천국인 것은 알았지만 이곳에 커다란 자연사박물관이 있을 줄은 기대도 못했어.
자연사박물관은 건물이 2개였어. 처음 간 곳에는 동물의 뼈가 마치 전자제품을 쌓아놓듯 진열돼 있더라. 마치 동물 뼈가 군인들이 행진을 하듯 넓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어.
커다란 흰수염고래의 뼈부터 물소, 말, 코뿔소, 코끼리 등 수많은 동물들이었지. 뼈만으로 이뤄진 아프리카의 초원이랄까.
2층에 올라가니까 육식공룡 알로사우르스의 전신 화석부터 시작해 티라노사우르스의 머리 화석, 맘모스의 화석, 여러 포유류 조상의 화석이 즐비했어. 벽에는 암모나이트와 삼엽충의 화석이 더 이상 놓을 곳이 없을 만큼 쌓여 있었어. 왜 두 화석이 각 시대를 상징하는 표준화석으로 불리는지 알겠더라고. 정완이는 한 층 더 올라가 아래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르더라.
프랑스에서 우리를 안내해준 파스퇴르연구소의 폴 브레이 박사는 그곳이 100년도 더 됐는데 2차 세계 대전 이후 문을 닫았다가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지원해 다시 문을 열었대. 과학문화를 아끼는 대통령, 멋있지 않니?
가장 근사했던 곳은 다른 건물에 있는 진화관이었어.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진짜 짐승들의 박제가 마치 무리를 지어 가듯 행진하고 있었어. 박물관에서 나온 가이드 아저씨는 같은 종류의 얼룩말이나 기린도 사는 곳에 따라 조금씩 무늬나 색깔이 다르대. 각각 다른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좀 어렵더라.
넙치와 가오리의 차이가 뭔지 아니? 두 바다물고기 모두 납작하지만 넙치는 눈이 한쪽으로 쏠렸고 가오리는 두 눈이 양쪽에 있잖아. 가이드 아저씨는 두 물고기 모두 해저 바닥에 살면서 환경에 적응한 거래. 그런데 넙치는 눈의 원근감이 떨어진대. 즉 가오리가 더 발달한 해저 물고기라는 거야. 너 이거 처음 알았지?
나가는 문 옆에 방이 하나 있더라.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야. 하얀 사자와 고릴라, 온갖 색깔의 새들이 있었어. 인류가 잡아먹어 멸종한 새 도도의 모형도 있더라. 더 이상 동물들이 멸종하지 않도록 환경을 아껴야 겠어. 그런데 그 방 한가운데에 자동차 만한 시계가 있더라. 뭔지 모르겠는데 오상이 “멸종한 시계”라고 말해서 모두 웃었어.
프랑스에서 우리를 초청한 곳은 파스퇴르연구소야. 광견병 백신을 개발한 프랑스의 과학자 파스퇴르가 1887년 세운 곳이지.
연구소가 아주 옛날 건물들로 이뤄져 있는데 너무 예뻐. 모두 2500명의 연구원이 이곳에서 일하는데 세계 29개국에 분소를 두고 있대. 한국에는 2003년 생겼지.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세계의 주요 전염병을 퇴치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 에이즈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낸 곳도 이곳이지. 대단하군.
그러고 보니까 프랑스에서 나온 유명한 과학자도 꽤 많아. 산소를 발견한 라부아지에, 첫 디지털 계산기를 만들고 확률 이론에 공헌한 파스칼,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인과 결혼해 노벨상을 2개나 받은 퀴리 부인….
하루는 혼자서 퀴리 부인이 졸업한 소르본대를 가봤어. 소르본대는 지금은 파리대로 통합됐대. 학교 주위에는 헌 책방과 서점이 정말 많았어.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빨리 퀴리 부인처럼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나와야 할 텐데. 내가 될 수도 있지. 하하.
모기의 침 뒤지는 파스퇴르연구소
파스퇴르 연구소 이야기하다 이야기가 샜네. 그 연구소 안에 박물관이 있어. 파스퇴르가 말년을 보낸 집인데 그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거지. 집이 큰 걸 보니까 파스퇴르도 부자였나 봐.
어쨌든 그 박물관 안에는 파스퇴르가 평소에 쓰던 100년 전의 실험기구가 한 방에 가득했어. 광견병 백신을 만든 장치, 편광기, 포도주 발효 장치가 탁자 위에 있었어. 파스퇴르가 ‘생물은 생물에서만 태어난다’는 생물속생설을 주장했잖아. 이 실험에 사용된 S자 모양으로 휜 유리 플라스크도 몇 개 씩 있더라. 실험을 여러 번 했나 봐(당연하지!). 지용은 파스퇴르의 집과 무덤이 무척 화려하다면 놀라워 하더라.
파스퇴르 연구소에 있는 여러 실험실에 가봤는데 제일 흥미로웠던 곳이 누에를 기르는 곳과 모기 실험실이었어. 특히 한국에 있는 파스퇴르 코리아 연구소도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말라리아를 연구하고 있대. 한국에는 별로 없지만 매년 100만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대.
누에 실험실에서는 살아 있는 누에 벌레를 단계 별로 가져와서 보여줬어. 난 징그러운데 성중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 자란 누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더라. 지은이는 그 애의 자랑거리인 50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로 멋진 누에 사진을 찍고. 그곳에서는 아름다운 돌, 잎, 깃털 등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었어. 너무 아름답더라.
모기 실험실에서는 뭘 했는지 아니? 모기를 현미경으로 보며 해부했어. 모기의 침은 말라리아를 옮기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대. 그래서 이곳 과학자들은 모기의 침샘을 떼내서 연구하고 있어. 벼룩의 간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모기의 침샘이라니.
모기의 침샘을 떼내려면 작은 바늘로 모기의 몸통을 붙잡고 머리를 다른 바늘로 누르며 떼어내는 거야. 그러면 침샘이 머리와 함께 떨어져 나와. 지수는 모기 몸통이 물컹하다며 너무 신기하대. 주희는 “여름이 싫어진다”면서도 그곳을 좋아하더라.
199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조르주 샤르파크라는 과학자도 만났어. 퀴리 부인처럼 폴란드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프랑스에 와서 살았대. 그 분이 그러더라.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의심하고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씀에 “그거 틀렸어요”라고 할 줄 알아야 된대. 물리학자가 꿈인 다훈이는 노벨상 수상자를 만났다며 좋아했어.
파리에서 과학과 관련된 곳을 주로 갔지만 루브르박물관을 빼놓을 수는 없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그곳에 있지. 요즘 최고의 화제를 낳고 있는 소설 ‘다빈치 코드’의 첫 무대도 바로 루브르박물관이야.
밀로의 비너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등 몇 개의 유명한 작품을 봤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린 곳은 역시 모나리자야.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몰렸으면 한 줄로 들어갔다 그림을 본 뒤 바로 나와야 했다니까.
이사벨이라고 하는 박물관 가이드 언니가 그러더라고. 다 빈치가 유명한 것은 빛을 미술에 절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래. 다 빈치의 그림을 보면 사람에 빛을 비추고 그 효과를 절묘하게 사용했대. 그런 기술을 ‘스푸마토’라고 해. 다 빈치는 화가이기 전에 과학자였던 셈이지. 다 빈치가 남긴 그림보다 인체 해부도나 헬리콥터, 낙하산 설계도 등 과학과 관련된 것이 훨씬 많아.
파리 근교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지. 1965년 프랑스가 만든 최초의 인공위성 ‘아스테릭스’부터 아리안 로켓, 미사일, 콩코드 비행기를 봤어. 가장 낭만적인 곳은 글라이더 전시관이야. 최초의 열기구부터 다양한 글라이더가 천정을 수놓았어.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아쉬운 것이 너무 많았어. 우리들은 모두 파스퇴르 연구소 과학자들 집에서 지냈는데 다들 친절하게 대해줬어. 특히 문지용 박사님 정말 고마워요. 하루 빨리 한국에도 파리처럼 좋은 과학관과 박물관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