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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동과 수동을 이용한 실험은 유동제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플라스틱 풍동안을 살피는 연구원들


미국 뉴욕을 향해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3시간째. 갑자기 기체가 흔들리며 안전벨트 착용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들린다. 급작스런 난류를 만난 것뿐이니 걱정말라는 기장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평온하던 기내는 이내 불안으로 술렁인다.

이런 상황은 장시간 비행기 여행에서는 흔히 겪는 경험이다. 비행기가 ‘공기주머니’라고 불리는 난기류 지역을 지날 때면 불규칙한 바람이 기체를 크게 뒤흔들어 놓는다. 대개 제트기류 부근을 지나거나 뭉게구름을 지날 때 발생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비슷한 현상은 계곡의 급류에서도 나타난다. 물의 속도가 빠른 물 속 돌부리 부분에서 일어나는 거친 ‘소용돌이’도 하늘에서 나타나는 난기류와 같은 현상이다. 물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난류’라고 표현한다. 영어로 ‘터뷸런스’(turbulence)라고 불리는 난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물과 공기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재미있는 점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난류 현상을 보면서 ‘원인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과연 난류는 단순히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현상일 뿐일까.

KAIST 기계공학과 성형진 교수가 이끄는 유동제어연구실은 지난 1984년부터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성 교수는 “자연계의 거의 모든 유체 흐름은 난류의 성질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태풍이나 토네이도, 해류 등 다양한 기상현상도 사실은 난류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비행을 방해하는 훼방꾼’처럼 비쳐지는 난류가 전혀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특성을 잘 분석하면 오히려 연료를 획기적으로 절약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난류에 대한 성 교수의 설명이 이어진다. “난류는 특정 지역에 편중된 태양에너지를 지구 전역에 최대한 빠르고 고르게 전달하는 성질이 있어요. 기체 주변에서 발생하는 바람의 복잡한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해 기체를 설계한다면 공기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은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난류의 성질을 실생활에 적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신수영복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전신수영복을 입은 남자선수가 자유형 200m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신수영복의 표면은 미세한 돌기가 있는 상어비늘 모양으로 물 속에서 몸 주변에 생기는 작은 소용돌이를 없애 마찰을 최대한 줄여준다.
이같은 기술은 항공기와 선박 제작에도 적용된다. 비행기의 경우 난류를 만나면 엔진의 열전달율과 효율이 오히려 올라가기도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연료비 절감은 곧 원유의 수입 대체 효과로 이어진다. 이쯤 되면 응석받이 난류가 그리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도의 분석 과정 거쳐야

그렇다면 과연 난류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을까. KAIST 유동제어연구실은 풍동과 수동실험,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 한계를 찾고 있다.

난류의 성질을 숫자로 나타내려면 엄청난 연산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난류의 움직임은 그만큼 복잡한 계산으로 표현된다. 보기에도 복잡한 난류의 움직임을 수식 단 몇 개로 꼬집어 설명한다는 시도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얘기일지 모른다. 요즘은 연구실의 워크스테이션과 슈퍼컴퓨터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컴퓨터 분석도 중요하지만 결코 실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성 교수는 난류를 분석하는 실험 과정에서 요긴한 발명품 몇 가지를 고안해냈다. 압력을 측정하는 특수 페인트가 그 중 하나다.


자신이 개발한소음 측정용 다중배열마이크로 압전센서를 들고 있는 성 교수.


이 페인트는 불규칙한 난류를 보기 쉬운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던 성 교수 연구팀이 오랜 고심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다. 물체에 압력을 가하면 표면에 발라놓은 페인트에서 형광물질이 나오는데 이를 특수 카메라로 촬영하면 물체 표면에 흐르는 유체의 움직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성 교수의 연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음 문제는 유동제어 분야에서 주요 연구대상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소음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성 교수는 자동차 소음을 우선 연구하기로 했다. 오래 전부터 사이드미러는 자동차 소음의 주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아무리 매끈한 차체를 자랑하는 차량이라도 사이드미러가 일으키는 소음은 언제나 골칫거리다. 소리에 반응하는 압전센서를 여러 줄로 배치한 다중배열마이크로폰 (PDVF)도 이런 가운데 나온 개발품이다.

성 교수의 연구는 산업과 직결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현대자동차와의 공동 연구 외에도 유동제어연구실이 그 동안 이뤄낸 성과는 꽤 많다. 선박 표면 마찰저항을 줄여 연료비를 절감하는 기술이나 자동변속기의 핵심부품인 토크컨버터는 그 중 수작으로 꼽힌다.

성 교수는 “유동제어연구실의 연구들은 하나같이 여러 면에서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내실있는 연구”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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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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