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 밤 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한 뒤 무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됐다. 밝혀진 범행동기는 8백만원의 카드빚.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간다. 하지만 범죄심리학적으로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밝힐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엽기적 살인사건의 내막을 범죄심리학으로 풀어보자
최근 발생한 ‘용인 연쇄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줬다. 20대 남성 2명이 택시로 위장한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 밤늦게 귀가하는 20대 미혼여성 5명에게 접근한 뒤 금품을 갈취하고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또한 이들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30대 여성 한명도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지난 4월 30일 검거된 범인 허모씨(25)와 5월 1일 자살한 공범 김모씨(29)가 이들에게서 빼앗은 금품은 불과 5백20여만원. 신용카드 인출금을 뺀 현금은 22만원이 고작이다. 과연 무엇이 이 잔혹극을 부른 것일까. 경찰이 밝힌 범행 동기는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카드빚 8백만원 때문. 하지만 과연 카드빚 8백만원 때문에 6명이나 죽였을까.
우리 주변에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범죄들이 간혹 발생한다. 명문대 휴학생의 부모 살해사건, 지존파 연쇄살인사건, 중학생의 여동생 살해사건 등은 모두 상식을 뛰어넘는, 그래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다. 왜 그들은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그들은 선량한 보통사람과 뭐가 다른가. 혹시 우리의 의식 속에도 그런 ‘잔인함’이 잠재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은 심리학자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잔혹한 범죄자들이 모두 같은 유형은 아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그야말로 정신적으로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과 심리상태를 갖지만, 어떤 사람은 극히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상황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범죄 행위, 그 중에서도 특히 폭력적이고 잔인한 범죄행위는과연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하는 것일까.
▶ 잔인함은 같지만 범죄동기 다르다
범죄자의 심리와 범죄현상에 대한 이해는 구체적 사례를 분석하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다음 두개의 사례를 살펴보자.
| 사례 1 | 학교 생활은 늘 모범적이었고 성적도 우수했던 L군은 군장교 출신인 엄한 아버지와 사회적 출세의 꿈을 접은 히스테릭한 성격의 어머니 밑에서 2남 중 막내로 자랐다. 명문대 휴학생인 L군은 어느 날 새벽, 베개 밑에 숨겨뒀던 망치를 꺼내들고 아버지의 머리통을 내리쳐 죽게 한 뒤, 어머니마저 망치로 살해했다. 그런 뒤 톱으로 사체의 사지를 절단하고 심장을 꺼내 냉장고에 넣었다. 절단한 사체는 몇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아 집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 사례 2 | 김씨는 서울 명문대를 나와 교직에 몸담은 바 있는 아버지와 피아노학원을 경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김씨는 어릴 때부터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지난 1995년 군복무 당시 특수강도 등 5-6가지 범죄혐의로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김씨는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만난 내성적인 성격의 허씨에게 호감을 샀고 같이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급속히 친해졌다. 김씨는 동거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혼녀인 이모씨와 정을 통했으며 돈이 필요하자 허씨와 함께 이모씨를 고속도로 휴게소로 끌고가 돈을 뺏고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그 뒤 3일에 걸쳐 김씨는 허씨와 함께 6명의 젊은 여성을 상대로 돈을 뺏고 성폭행한 뒤 살해해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위의 두 사례는 일반인을 경악케한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이다. 첫번째 사건은 모범생이 저지른 존속살해의 잔인성 때문에 세상의 주목을 끌었고, 두번째 사건은 ‘플라스틱 머니’로 불리는 신용카드 빚 때문에 무고한 여성 6명의 목숨을 플라스틱 깨듯 산산조각 내버렸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두 사건 모두 타인을 잔인하게 해쳤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범죄심리학 관점에서 본다면 이 두 사건의 성격이나 범인이 갖고 있는 특성은 매우 다르다.
L군 사건은 피해자에 대해 억압되고 누적돼온 감정과 갈등이 격정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경우이고, 김씨는 재물 탈취와 욕구 충족이라는 목적을 갖고 필요에 의해서 타인에게 심각한 손상을 가한 경우다.
▶ 순간적 감정폭발이 범행으로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를 가하려는 의도를 가진 행동을 ‘공격행동’이라고 부른다. 공격행동의 유형에는 ‘수단적 공격’(instrumental aggression)과 ‘감정적 공격’(emotional aggression)이 있다. 수단적 공격은 공격 행위의 궁극적 목적이 대상을 해침으로써 얻는 희생이나 파괴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행동 결과로 얻어지는 다른 것에 있다. 재물을 얻기 위한 강도나 살상 행위,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강간 행위,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폭력 행위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수단적 공격행위는 비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목적을 성취할 수 있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폭력을 가하지 않고도 금전을 얻을 수 있으면 구태여 강도짓을 하지 않는다. 또한 폭력행위가 원하는 목적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도 수단적 공격행동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즉 폭력을 행사했을 때 감수해야 할 위협의 정도가 클수록 그 행동에 대한 억제력이 커진다.
한편 감정적 공격은 차후의 이해득실보다 행동하는 순간에 상대를 해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다. 흔히 말하는 격정범이 이 유형에 포함된다. 대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말다툼이나 시비를 가릴 때 이런 유형의 공격행동이 많이 나타난다. 폭행, 살인, 강간 등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그 원인이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감정적 공격행동의 경우 대개는 공격자가 화가 난 상태에서 상대에게 해를 입히고 구속이나 처벌 등 자기 행동이 가져올 결과나 다른 목표의 성취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버코위츠가 65명의 영국 폭력범을 면담한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폭력범은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든지 또는 상대가 자기를 모욕했을 때 이성을 잃고 말았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일차적 의도는 감정을 자극시킨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피하려는 것이었다.
▶ 격정범 초범인 경우 많다
충동적인 공격행동을 유발시키는 요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인차 변인으로서 개인의 공격적인 성향이다. 여기에는 유전적 요인과 성격 특질이 포함된다. 성격 특질로서의 충동성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보다 심사숙고를 덜하는 경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충동성은 정신 집중이 흐트러지는 정도, 과도한 활동, 욕구 불만족, 지속적이지 못한 대인 관계, 반사회적 행동 등으로 표출된다. 충동성의 나머지 요인은 상황적인 요인이다. 격정범 중에는 평상시에는 자기통제 기능에 별 이상이 없지만 상황의 어떤 특성(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든가, 화가 났을 때 주변에 흉기가 있을 때) 때문에 순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 사람이 많다. 이들은 대개 초범인 경우가 많고 다시 그런 성격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유형의 대인범죄자들은 대물범죄자들보다 가석방에 따른 재범율이 낮다.
한편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격정범과 유사하지만 기질적으로 좌절이나 분노에 민감하고 행동 억제력이 약한 사람들은 성격적으로 충동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성격적으로 충동적 성향이 높은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내고 재범율도 높다. 따라서 행동의 결과가 비슷하다고 이들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난폭한 범죄자들 중에서도 기질적인 충동성이 높은 사람과 기질적 충동성이 낮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앞의 사례에서 김씨는 어릴 때부터 절도와 폭력을 일삼아온 것으로 미뤄보아 L군보다 기질적인 충동성이 더 높은 사람으로 보인다.
▶ 적대감과 분노 더이상 억제 못해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의 범죄심리학자 머가기 교수는 폭력성 범죄자들을 ‘과소통제형’과 ‘과잉통제형’으로 구분했다. 과소통제형은 자기 행동을 억제하는 힘이 약하고 충동성이 강한 성격인데, 이런 성격이 반사회적 경향성과 결부되면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될 수 있다. 과잉통제형은 평소에 자기통제력이 지나친 사람이다. 이들은 약간의 도발적인 상황에서는 자신의 분노나 공격적 행동을 잘 억제하지만 강한 도발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제력을 잃고 극단적인 공격행동을 할 수 있다. 살인범 중에는 과잉통제형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피해자는 대개 가족이나 배우자 등 잘 아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과잉통제형 성격은 앞에서 언급한 충동적 성격의 정반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공격행동을 할 소지가 많다.
L군은 과잉통제형에 속한다. 화가 날 때 그것을 적절하게 표출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다른 감정도 마찬가지다). L군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대우와 체벌을 받는다고 느껴왔고 그것에 대해 매우 화가 났지만, 한번도 본인이 화가 났음을 부모에게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지 못했다. 화가 났을 때는 남의 눈을 피해 혼자서 욕을 하거나 사소한 물건을 부수거나 하는 등의 파괴적 행동을 했지만, 그런 행동이 화를 가라앉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L군은 화가 날 때마다 자신이 못나고 무능해서 그렇게 됐다고 자신을 탓했고 결국 우울증 증상도 나타냈다.
L군은 다소 강박적인 성격과 더불어 화났던 일들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되씹는 ‘반추적인 사고’(ruminative thinking)를 했다. 분노에 대한 반추적인 사고는 자신을 화나게 만든 상황에 더욱 민감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따라서 L군에게는 우울증적인 특징과 더불어 분노에 매우 민감한 심리상태가 어린 시절부터 있었고, 표출되지 않은 분노가 계속 쌓여왔음을 알 수 있다. 순응, 회피, 그리고 억제 이외의 다른 식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강화시킨 것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가했던 체벌과 가정의 분위기였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환경이 사고와 행동을 얼마나 강력하게 지배하는지는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명한 사실이다.
L군은 평소에 매우 유순하고 모범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L군이 분노와는 거리가 멀고 공격적인 면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L군을 직접 면담한 결과, L군은 중학교 때부터 막대기, 식칼, 야구방망이 등의 흉기 사용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가끔씩 해봤다고 한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L군은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공격적인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인지구조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L군의 머리 속에서 부모에 대한 기억은 분노, 적대감, 원망 등으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한번도 적절하게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반복되는 분노 감정과 공격행동의 억압은 일종의 화약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건이 발생하기 약 열흘 전에 L군은 부모와 두번 크게 다퉜는데, 이것이 사건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L군은 부모에 대한 분노가 다시 끓어오름을 참을 수 없었으며 드디어 최초로 부모에 대해 쌓였던 불만을 터뜨리고 맞대응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부모의 무시와 경멸적 반응으로 되돌아왔고 기대하던 효과는 커녕 오히려 부모와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L군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L군은 부모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더이상 억제할 수 없는 내적 상태에 이르렀을 때, 부모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격적인 행동반응(살인행동)을 나타냈다.
친족 살인범 중에는 오랫동안 누적되고 억제돼온 분노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경우가 많다. 과잉통제형의 범죄자들은 극악무도한 난폭한 반사회성을 지니지 않으며, 오히려 평소에는 매우 유순하고 자기통제를 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범행의 순간에는 흥분된 감정 상태에서 오직 피해자를 해치고자 하는 일념에서 행동하므로 자신이 평소에 상상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범행 당시에는 평소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범행 당사자 자신에게도 놀라운 행동이며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평상시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와 적대감의 감정이 과거로부터 누적돼온 상태라면 그 사람의 인지구조 속에는 상당히 정교화된 분노 및 분노반응과 그에 대한 통제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억제메커니즘을 완화시키는 어떤 계기나 단서가 주어지면 그 동안 쌓여왔던 적대감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계기를 ‘점화’(priming)자극이라고 한다. 즉 반드시 심각한 정신장애가 아니더라도 이런 잔혹한 범죄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성직자도 사이코패스일 수 있어
김씨는 L군과는 달리 성격적으로 충동성이 높은 과소통제형에 속한다.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무단 결석, 절도, 가출 등을 일삼았고 4년의 실형을 살았던 전과 등으로 미뤄 보아 기질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범인 허씨는 자술서에서 ‘피해자들이 별로 신고할 것 같지 않아 살려주고 싶었는데 형(김씨)이 불안하다고 해 살해했다’고 적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테리 모핏은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청년기에 일시적으로 반사회적 행동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 범죄 행각을 그만두게 되지만, 기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소수의 남성들(약 5%)은 어릴 때부터 일관성 있게 다양한 반사회적 행동을 나타내며 일생동안 계속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신경심리학적 기능의 결함을 갖고 태어난다. 그 결과 일시적 비행자보다 어릴 때 언어 능력이 뒤떨어지고 자기통제력과 주의집중력이 낮다. 또한 과다한 활동성을 보이며 충동성이 높다. 아이의 기질적 특징은 어느 정도 부모로부터 유전된다. 이런 아이들은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성장할 때, 환경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적게 받고 아이는 다시 반항적 행동을 하게 되는 역행적 상호작용이 계속된다. 이런 상호작용이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지속되기 때문에 원래 약간의 기질적 결함을 타고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가 점점 커진다.
일생동안 반사회적 행동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예가 ‘사이코패스’(psychopath)이다. 엽기적인 살인사건 또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들 상당수는 사이코패스다. 1970년 중반 미국에서 수십명의 여성을 살해한 테드 번디, 1970년 후반에 수십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뒤 자신은 다중인격장애자라고 주장한 케네스 비앙키, 1990년 초반에 십여명의 소년을 살해한 뒤 인육을 먹고 냉장고에 저장했던 제프리 다머 등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대표적 예다.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성격장애로서 그 특징은 피상적인 혀에 발린 말들을 그럴 듯하게 늘어놓고, 자기중심적이며 과대망상적이고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 안되며 남을 속이는데 능수능란하다. 또한 두려움이나 죄책감 등의 감정을 전혀 못느끼며 사실성 없는 계획을 세우고 욕구에 대해서는 충동적이며 자극적이고 스릴있는 위험한 행동을 즐긴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이들은 격정범과는 달리 범행 당시 냉철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을 사로잡는 교묘한 매력을 지녀 손쉽게 사람들에게 접근하지만, 끊임없이 남들을 이용하고 괴롭히며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히며 살아간다. 그들의 무자비함과 지능적인 교묘함은 무수한 소설과 영화의 재료가 돼왔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이 되는 사이코패스는 극소수고 실제로 훨씬 많은 사이코패스가 폭행, 강간, 강도, 사기, 절도, 횡령, 노름 등 여러가지 범법행위자들 속에 섞여 있다. 어떤 경우에는 법망을 피해 범죄자가 되지 않고 사업가, 의사, 변호사, 교사, 경찰관, 종교지도자, 작가, 예술가 등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비윤리적이고 허위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있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오히려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진정으로 교화시키고 변화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심리치료나 교육을 받으면 오히려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마저 있다.
필자가 김씨를 직접 면담해보지 않아 확실히 주장할 수는 없지만, 김씨에 관한 여러가지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김씨는 같은 골프장에 근무하는 허씨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고 범행에 끌어들였으며, 동거녀가 있으면서도 다른 여인을 만나다가 돈이 필요하자 그 여인을 무참히 살해했다. 돈을 뺏은 뒤 죽일 필요까지 있느냐는 허씨의 말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을 무참히 살해한 김씨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범죄 사건에 대해서 언론이나 일반인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이 잉태한 비극적 범죄라고 분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욕구 충족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며 근본적으로 그 행동의 원인은 개인 내부에 있다. 카드사의 횡포와 무분별한 카드 남발, 금전만능주의 등 사회적 모순을 비난함으로써 마치 그런 범죄자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것처럼 자책하는 일은 그들의 범행을 결코 막아주지 못하며 오히려 사이코패스에 대한 경계심을 낮춰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 과학으로 인간 이해 역부족
심리학에서는 범죄자의 성격, 특성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과 발달적 요인들도 함께 고려해 범죄자를 이해하려 한다. 범죄자의 성격과 위험성을 측정하는 심리측정 도구들이 많이 개발돼 있으며 범법행동을 설명하는 개념과 이론들도 등장했다. 그리고 범죄자를 교화시키고 변화시키는 치료 프로그램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행동을 100% 설명하고 예측하기는 아직 역부족이다. 범죄행동과 범죄자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예측하기 위해 심리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