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심장질환을 앓아온 여성 직장인 A씨는 몇달전 담당의사로부터 이색적인 제안을 받았다. 로봇을 이용한 수술을 받아보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외과전문의가 직접 수술하는 것보다 상처 회복속도도 빠르고 흉터도 더 작다는 것이었다. A씨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일단 한번 의사의 말을 믿고 맡겨보기로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보통 15cm 정도 남는 수술흔적은 5cm에 불과했고 수술 후 불과 나흘 뒤 퇴원할 수 있었다. 평소 비키니를 즐겨 입는 그녀는 지금도 당당하게 수영장에 들어선다.
최근 로봇을 이용한 외과 수술이 의사와 환자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수술 성공률도 높고 수술 후 통증과 흉터가 작아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팀이 지난해 4월 국내 최초로 로봇 심장수술을 시작한 이래 10월까지 수술받은 64명의 심장병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 성공률을 보였다고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런 추세로 미뤄보면 앞으로 로봇수술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로봇은 인간 외과의를 대신할 미래 의료기술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로봇이 수술 분야에서 어떻게 이용되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한번 살펴봤다.
고통과 흉터로부터 해방이 목적
수술을 받아본 환자들은 수술 전에 이런저런 걱정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걱정의 대부분은 수술 결과뿐 아니라 수술 후 겪을 고통과 합병증에 대한 두려움이다. 만일 이런 두려움이 없다면 누구나 망설임 없이 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수술 부위는 몸 안에 있다. 이를 수술하려면 피부를 절개한 뒤 근육과 피하지방을 차근차근 뚫고 목표물까지 접근해야 한다. 또 이 모든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수술 전에 자세히 진단하고 수술 계획을 정교하게 세워 환자가 최소한의 피해를 입도록 노력해왔다. 특히 수술 후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합병증을 없애며 최상의 수술 결과를 얻는 것은 외과의들의 주요 관심사다. 이같은 환자의 요구와 의사의 기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수술법은 최근 외과학 전체에 급속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미세침습수술, 미세접근수술 내지 비침습수술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들 수술법은 모두 수술시 피부 절개 부위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피부를 2~3cm 정도만 가르고 그 안에 수술기구를 넣어 환부를 수술한다.
복강 내의 담낭을 절제한다고 가정하자. 담낭은 간 밑에 붙어 있으며 이곳에 병이 생기면 잘라내야 한다. 과거에는 상복부를 약 20cm 이상 길게 절개한 뒤 복벽과 간을 차례로 당기고 손을 넣어 담낭을 잘라냈다. 그러나 현재는 복부 4곳에 구멍을 뚫어 시술하는 내시경 수술이 보편화됐다. 의사는 구멍 한 곳에 내시경카메라를 넣고 모니터를 통해 복부 안을 촬영하면서 환부를 살핀다. 다른 곳으로는 수술기구를 넣어 환부를 절개하거나 분리한 뒤 소작하고, 꿰매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담낭 절제 수술은 손쉽게 끝난다. 과거 수술법에 비해 내시경 수술법은 통증이 거의 없으며 2~3일 안에 퇴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점은 남아있다. 보통 내시경 수술시 2명의 보조의사가 필요하다. 한명은 내시경을 비추며 집도의의 요구대로 여기저기 움직여 수술 부위를 잘 보이게 하며, 다른 한명은 수술 부위가 잘 보이도록 다른 장기를 당겨주는 역할을 한다. 수술대 주변에 의사들이 많으면 집도의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시경을 잡고 움직여주는 간단한 시스템이 필요하게 됐으며 이를 제품화한 ‘AESOP’라는 내시경 보조 로봇이 등장했다. 이 로봇은 의사가 말로 한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미국 식품의약청(FDA)를 받아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많이 보급돼 있다. 국내 몇몇 병원에서도 이 로봇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내시경 수술이 점차 많이 보급되면서 성능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의사들은 수술장치의 동작부분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긴 권총모양이라서 장시간 사용시 불편하고 숙련도가 높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좀더 자유롭게 움직이며 여러 방향으로 휘거나 도는 동작장치와 이를 조작하는 조정장치가 개발되기에 이른다. 이 장치를 이용해 의사가 주(主)로봇의 조정장치를 움직이면 환자에 부착된 종(從)로봇이 시술하는 수술용 로봇이 개발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일반에도 익히 알려진 ‘다빈치’라는 로봇이다. 현재 이 로봇은 흉부외과와 일반외과, 비뇨기과 등 외과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다.
매우 정교한 시술이 필요한 신경외과에서 수술로봇의 활약은 더욱 빛난다. 뇌수술은 복강 내 수술과 판이하게 다르다. 뇌는 두개골 안에 담겨 있는 고형체로 복강과 같은 공간이 없다. 그런 뇌 안의 종양은 두개골을 떼어내고 뇌막을 잘라 열어도 바로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의사들은 뇌를 가장 작게 절개하고 주변 조직에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종양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최단 경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과거에는 뇌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의 2차원 단층 영상을 참고하면서 집도의의 직관에 따라 수술했다. 하지만 디지털 영상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2차원 영상을 입체로 재구성해 종양의 위치를 정확히 예측하게 됐다. 또한 3차원 영상을 실제 환자 두부와 일치시킨 뒤 모니터로 환부 위치를 의사가 찾아내는 뇌 항법장치까지 개발됐다. 이 새로운 장비 덕에 요즘은 좀더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졌으며 지금은 여러 병원에서 도입해 사용 중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정밀한 척추 수술에도 이용하고 있다.
한편 뇌 항법장치는 수술 전에 찍은 영상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술 중 뇌의 변형에 따라 바뀌는 종양 위치를 정확히 찾는데 한계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과의들은 수술 중에 뇌 MRI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율츠 교수와 캐나다 캘거리대 서드랜드 교수 연구팀은 현재 수술실 안에 MRI장비를 설치하고 수술 중 환자의 뇌 부위를 촬영하면서 뇌 속 종양을 최대한 제거하는 수술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수술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의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의사의 손까지 대신하는 로봇이 등장하게 됐다.
의료 영상 발전이 한몫
로봇은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고 언제나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공학적 개념에서 로봇은 다양한 기술이 융합된 현대 문명의 산물이며 산업과 문화 전반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로봇이 의학 분야까지 진출한 배경은 무엇일까. 의학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큰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았다. 컴퓨터 기술과 함께 발전한 의료 영상 기술은 방사선 촬영에 의존했던 기존 기술을 크게 뛰어넘는 디지털 의학 영상 시대를 열었다.
신체 단면을 촬영할 수 있는 컴퓨터단층촬영(CT)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가공된 정보를 눈으로 보여주는 CT장치는 몸 속 장기를 들여다보면서 진단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수술에까지 이용하는 단계로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방사선 촬영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연조직을 관찰하기 힘들며 장기나 조직 내 생리학적 변화를 살펴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연조직 촬영 성능이 뛰어난 MRI와 장기 내 생화학적 변화를 관찰 할 수 있는 양자방출단층촬영(PET), 뇌의 전기 생리적 반응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자기초음파검사법(MEG)은 그런 CT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새 기술이 소개되면서 임상적으로 환자의 증상을 좀더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생리적 변화까지 보여주는 질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또 컴퓨터 성능이 향상되면서 수집한 영상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2차원 영상에 입체감을 줘 평면화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진단법이 출현한 것이다.
이제 많은 의사들은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 의지하지 않고 다양한 영상정보와 처리기법을 이용해 더욱 치밀한 수술 계획을 내놓는다. 최근 많은 외과의들 사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상유도수술 시스템도 그런 추세를 반영한다.
한편 1990년대 의사들은 수술시 환자에게 가능한 적은 손상을 가하며, 단시간 내에 최대 치료 효과를 얻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술 후 합병증을 최소화하는 미세침습수술이 전 외과 분야에 경쟁적으로 도입됐으며 좀더 정교하게 움직이는 수술 로봇이 필요하게 됐다.
본격적인 의료 로봇 시대를 연 것은 1980년대 후반 고관절 수술에 이용되는 ‘로보닥’(ROBODOC)이다. 그 뒤를 이어 수술시 내시경을 자동으로 조작하는 ‘AESOP’시스템과 ZEUS, 다빈치 외과수술 시스템이 봇물 터지듯 차례로 등장했다. 지금도 미국 내 약 200개 병원에서 로봇 외과 수술이 시행되고 있다.
같은 의료용 로봇이라도 이용방법에 따라 두 종류로 분류된다. 그 중 하나는 다빈치 시스템처럼 흉곽이나 복강 내에 내시경을 삽입한 뒤 집도의가 수술 환부를 직접 보면서 주로봇을 통해 종로봇을 움직이는 내시경유도로봇 방식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 수술 전과 수술 중 환부를 CT나 MRI, 방사선 투시 영상으로 본 집도의가 수술 계획과 명령을 컴퓨터에 내리면 로봇이 예정된 수술을 수행하는 영상유도로봇이 있다. 영상유도로봇은 신경외과에서 사용하면서 크게 발전하게 된다. 대표적인 로봇으로 ‘뉴로매이트’(Neuromate)가 꼽힌다. 정형외과 분야에서 인공관절 수술시 이용하는 ‘로보닥’도 같은 방식이다. 이들 로봇은 대개 의사의 명령에 따라 수술의 일부 과정을 돕는 수술 보조 로봇에 해당된다. 비교적 잘 알려진 영상유도로봇으로 방사선 수술에 쓰이는 ‘사이버나이프’(CyberKnife)도 있다. 수술 전 환부를 촬영한 영상을 보고 의사가 방사선 조사 부위를 정하면 정확히 그 부분에만 방사선을 쏴주기 때문에 임상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이처럼 의료용 로봇은 일반 지능형 로봇과 분명 차이가 있다. 지금의 의료용 로봇은 자체 판단능력이 제한돼 있으며 의사를 도와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수술을 보조하는 역할에 국한된다.
인간 한계 뛰어넘는 로봇 의사들
수술 로봇이 가져온 변화는 상당하다. 로봇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에 따르면 로봇수술의 장점으로 수술로 인한 신체 손상을 최소화하고 수술시간을 줄여 마취 부작용을 줄이며, 수술 중 출혈과 수혈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또 수술 후 환자의 통증이나 불편함을 크게 줄이고 상처가 감염될 소지를 없애 입원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로봇을 사용할 경우 현재 외과의들이 직접 시술하는 상당수의 큰 수술들은 작은 수술로 대체될 수 있다. 이는 환자의 두려움을 줄이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효과적이다.
의사 역시 환부를 정확히 제거할 수 있고 아주 작고 정교한 수술까지 도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부위도 수술할 수 있게 됐으며 피로감도 훨씬 줄일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의사도 로봇 시스템을 이용해 경험 많은 의사의 수술 방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의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도 있다. 이처럼 수술 로봇의 발전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수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현재 기술력을 비춰봤을 때 로봇과 소프트웨어에 대한 의사들의 신뢰는 아직까지 낮은 편이다. 수술 중 환자 환부의 변화를 빨리 알아채 의사에게 원활하게 알려주는 정보 교환 방식도 좀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 또한 오작동을 일으킨 로봇의 센 힘이 환자와 주변 의사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안정성을 확보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로봇 단가도 아직 상당히 비싸며 수요 시장을 예측하기 어려워 대기업들이 연구와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향후 수술 로봇을 비롯한 의료 로봇에 대한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 지금까지 로봇은 정교한 수술과 반복적인 수공 작업을 대체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술하는 집도의가 로봇의 말단 장치에 전달되는 감각을 직접 느끼면서 수술하는 ‘햅틱 기술’(과학동아 2003년 10월호 참조)과 결합한 첨단 수술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이다. 실시간으로 환부의 변화를 민첩하게 감지해내는 영상장치와 차세대 로봇 기술도 조만간 선보일 전망이다. 또한 의사가 신체 부위를 절개하지 않고 원격 조종되는 초소형 로봇을 몸 안에 주입해 수술하는 시스템도 한창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