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날씨는 초여름처럼 더워지고 밤은 더욱 짧아져 있다. 6월과 7월은 장마와 습기로 밤하늘을 관찰할 수 있는 날이 드물기 때문에 5월은 밤하늘이 더욱 아쉬워지는 시기다.
동양에선 청룡의 뿔
처녀자리는 하늘에서 바다뱀자리 다음으로 2번째로 크고, 황도대에 자리잡아 태양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별자리다. 하지만 스피카를 제외하고는 밝은 별이 없어 처녀의 모습을 그려내기는 쉽지 않다. 태양은 9월 하순에서 11월초까지 수확의 계절에 처녀자리를 지나는데, 이 때문에 왼손에 밀 이삭을 들고 있는 처녀의 모습은 고대부터 아테나, 아르테미스, 이시스 등 농업과 수확의 여신으로 그려져 왔다.
동양에서는 28개의 황도대 별자리 중 동쪽의 첫째 별자리인 각(角)자리가 처녀자리에 해당한다. 동양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28수(宿)는 동서남북 각각 7개의 별자리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형상을 만드는데 각자리는 청룡의 뿔에 해당한다.
처녀의 모습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밤 10시 경 남쪽 지평선과 천정의 중간 지점에서 빛나는 1등성 스피카부터 찾아야 한다. 라틴어로 ‘밀의 이삭’을 뜻하는 스피카는 정확히 1등성으로 밤하늘에서 16번째로 밝은 별이다. 북두칠성 손잡이와 목동자리 아크투르스를 연결하는 원호의 연장선으로도 스피카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 곡선이 ‘봄철의 대곡선’으로 불리며 봄철 별자리를 찾아보는 기준이 된다.
우주 저편에서 온 빛
처녀자리 스피카는 황도에 매우 가까워 이를 사자자리의 레굴루스와 연결하면 이 선이 황도와 거의 일치한다. 때문에 행성이나 소행성, 혜성 등을 처녀자리 근처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새로운 소행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아마추어 천문가라면 처녀자리 주변을 탐색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2.7등급인 감마(γ)별 포리마는 봄철 밤하늘에서 가장 찾아 볼만한 이중성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색깔과 밝기가 비슷한 3.5 등성의 하얀 두 별이 나란히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처녀자리와 머리털자리 부근은 우주의 깊은 곳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머리털-처녀자리 지역은 우리은하의 은하면(은하수)과 수직으로 놓인 위치여서 우리은하의 바깥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별자리에는 밝은 별이 드물고 성단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대신 수많은 은하들을 볼 수 있다.
머리털-처녀자리의 경계지역에는 처녀자리 은하단으로 불리는 3천개 이상의 은하들이 흩어져 있는데, 메시에 목록에 있는 은하만도 18개나 된다. 이 은하단까지의 거리는 약 5-6천만 광년이나 된다. 이 은하들의 빛은 하늘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먼 우주의 저편에서 온 빛이다.
더욱 먼 우주의 빛을 보고자 한다면 감마별 5도 북서쪽에 3C273로 알려진 가장 밝은 퀘이사를 찾아보자. 12.8등급의 희미한 별처럼 보이는 이 천체는 놀랍게도 30억 광년 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왕비의 금발 머리털 자리
처녀자리의 북쪽과 사자자리의 꽁무니에 접한 머리털 자리는 실재했던 인물의 이름이 붙은 유일한 별자리다. 고대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 3세(재위기간 B.C. 246-221년)의 아내인 베레니케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남편이 전쟁에서 안전하게 살아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만일 남편이 살아 돌아온다면 그녀의 긴 금발 머리칼을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남편은 살아 돌아오고 그녀는 약속을 지켜 머리카락을 잘라 바쳤다. 하지만 왕은 긴 머리카락이 사라진 아내에게 크게 화를 냈다. 이때 왕궁 수학자 코논은 신들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하늘로 올려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왕을 설득했고, 왕은 다시 아내를 사랑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별자리는 지도 제작자로 유명한 메르카토르가 1551년 천구의에 처음 그려 넣었다. 후에 티코 브라헤는 이 별자리를 독립된 별자리로 등록했는데 이를 계기로 1602년 이래 공인된 별자리로 사용되고 있다. 머리털 가운데에 모여있는 별무리는 Mel. 111로 불리는 약 2백20광년 떨어진 가까운 산개성단이다. 맨눈에는 사자의 꼬리 뒤에서 옅은 구름이 걸려있는 것처럼 뿌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