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박승재 교수. 자신이 뿌려놓은 과학교육이라는 씨앗이 거친 토양을 뚫고 세상밖으로 고개 내미는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람. 모든 이들의 삶 속에서 호흡하는 과학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과학문화교육의 시대가 왔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 그를 지상에서 만나본다.
흰눈을 보면 스키 탈 생각에 가슴이 설레고, 국가 프로젝트는 애국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믿으며, 늘 달리듯 걸어다니므로 마주쳐도 인사하기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끊임없이 처음 이야기 하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과학교육계의 대부로 불리는 박승재 교수(서울대 물리교육과)가 그 주인공이다.
1976년 과학교육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때에 과학교육학회를 만들며 한국과학교육의 토양을 일궈낸 박승재 교수가 요즘은 과학문화교육의 전도사가 됐다는 말을 듣고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죠!
“1957년 미국의 고등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PSSC (Physical Science Study Committee) 물리 교과서, 읽기자료, 영상, 연구 논문, 교사용 지도서를 보면서 물리학과 물리교육에 대해 눈뜨고 신념을 갖게 됐어요. 우리나라 물리교육과에서도 PSSC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박승재 교수가 평생 물리교육과 살아오게 된 계기다. 그는 영재교육을 시발시킨 정연태 교수가 과학교육 1세대라면 본인은 2세대라면서 “학문은 대개 3세대가 지나야 확실한 토대가 갖춰지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현재 3세대인 자신의 제자들이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한다.
1970년대 말 학위를 마치고 미국에서 귀국할 때 지도교수가 한국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유일한 희망은 서울대에 박사과정을 만들어 고급인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PSSC 같은 프로그램은 물론 과학교육과 관련된 전문적인 일과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돈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으로 그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1984년 서울대 물리교육과에 박사과정을 만들면서 그는 과학교육에 대한 열정이란 한쪽 날개에 전문인력 양성이란 든든한 다른쪽 날개를 얻게 됐다. 그러면서 신들린 화가처럼 과학교육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학회조직, 국제 교류, 학교 과학교육 실태분석, 실험 조교제 도입, 실험 기자재 전시, 수학능력시험에서 과학탐구 영역 만들기 등 교과서는 물론이고 국가 정책과제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박승재 교수는 이런 많은 활동들을 늘 좋아서 한 것은 아니였다고 토로한다. “책 한권 더 읽고 논문 한편 더 쓰면 더 좋다는 것을 나도 알지요.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능력의 3분의 1은 공부하고, 3분의 1은 제자들 가르치고, 3분의 1은 국가에서 부르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라며 학문의 토대를 갖춰야 했던 본인의 역할 때문에 연구에만 전념할 수 없었음을 아쉬움으로 남겼다.
이에 대해 제자인 김영민 교수(부산대 물리교육과)는 “과학교육에서 ‘박승재 이론’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선생님께서 과학교육의 이론적 토대와 학문적 토양을 만드셨기 때문에 이제는 과학교육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길이 보이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과학교육 3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박교수를 ‘열혈청년’으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 좀 느슨해지기 마련인데 제자들이 기억하는 박교수는 지난 30여년 간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에 대한 열정과 아이디어는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삶의 동반자 과학
박승재 교수는 이제 서울대 물리교육과와의 47년 인연을 정리한다. 그러면서 남몰래 작은 꿈을 가슴 속에 짓는다.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과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가설이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초·중등 과학교육은 이제 과학문화교육이라고 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과학 공부를 왜 하는지 알아야 하고, 과학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해요”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과학이 사람들의 삶속에 깊이 녹아들어야 함은 물론이고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과학은 합리적인 잣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일은 과학자들도 노력해야 하지만 과학교육자들의 역할이 클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그동안 개발해왔던 과학문 화탐방 프로그램과 장난감으로 즐기는 과학 프로그램이 한 예가 될 수 있다며“지금까지는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과학활동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과학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과학을 문화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힘닫는데 까지 노력해보고 싶다”며 웃는다. 박교수의 꿈대로 사람들이 과학을 과학자들의 놀이쯤으로 여기지 않고 숨쉬는 공기처럼 삶의 동반자로 여길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