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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 이용해 의약품 만든다

생체분자공학연구실

세포내에서 일어나는 반응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촉매의 이름은?

답은 효소다. 세포에는 수천가지의 효소가 존재하며 역시 수천가지의 반응을 촉진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포내 반응은 ‘올스톱’이다. 불과 30∼40℃의 온도에서는 대부분의 반응이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효소는 크기가 불과 수십nm이지만 그 구조가 대단히 복잡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미노산 분자 수백개가 실처럼 일렬로 연결된 채 서로 엉켜있어 실뭉치처럼 보인다. 이런 생체고분자를 단백질이라고 부른다. 즉 효소는 단백질 촉매인 셈이다.

단백질이 다양한 것은 구성분자인 아미노산이 20가지나 되기 때문. 수백개나 되는 자리 각각에 20종이 올 수 있으므로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이다. 예를 들어 아미노산 3개로만 이뤄진 사슬의 종류도 8000(20×20×20)가지나 되며 10개로 이뤄진 사슬은 10조가지가 넘는다. 따라서 수백개로 이뤄진 사슬의 종류는 사실상 무한정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효소는 생명체가 수십억년의 진화를 통해 이런 엄청난 경우의 수에서 최적 조합을 찾아낸 결과다. 한편 동일한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도 생물의 종류에 따라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시베리아 동토에 사는 미생물과 100℃에 가까운 온천에 사는 미생물은 각각의 서식 환경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는 효소를 진화시켰다.

그런데 자연이 영겁의 세월을 거쳐 이뤄낸 진화를 실험실에서 단기간에 해치우겠다는 과학자가 있다. KAIST 생물과학과 생체분자공학연구실 김학성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 교수의 꿈은 언젠가는 화학공장의 굴뚝을 모두 없애겠다는 것. 효소를 연구하는 그가 난데없이 화학공장을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몸에 해로운 유기용매를 쓸뿐더러 고온고압에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 에너지 소모가 엄청납니다. 우리는 효소를 써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즉 생체에서 일어나는 각종 반응을 적용해서 화학반응기와 파이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장치를 간단한 효소반응기로 대신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량의 반응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효소를 확보해야한다. 이때 기존 생물체의 효소를 추출해 쓸 수도 있겠지만 이럴 경우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효소의 구조는 그 생물체의 세포내 조건에서 가장 잘 작동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와는 조건이 다른 환경에서는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반응 조건을 효소를 얻은 생물체의 세포내 환경과 똑같이 만들어줄 수는 없는 일.
 

효소의 3차원 구조를 밝혀 생체반응 촉매 메커니즘을 규명하면 더뛰어난 성능의 효소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된다.


원하는 방향으로 효소 진화시켜

“저희는 효소의 구조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반응기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방향성을 가진 인위적 분자진화’라고 부르죠.”

연구팀은 먼저 효소의 3차원 구조를 밝혀 어떻게 생체반응을 촉매하는지를 규명했다. 그 뒤 효소에서 반응에 관여하는 부분의 아미노산을 바꿔가며 촉매활성이 다른 돌연변이체 효소를 얻어냈다. 효소 유전자를 얻어내 염기서열을 조작하면 원하는 아미노산 서열을 갖는 효소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런 방법을 통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설계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머지않아 화학공장이 사라질 것입니다.”

온화한 상태에서 정밀하게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통해 각종 의약품과 원료가 생산되는 것이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선진국은 연구가 활발합니다. 온실가스감축협약 등 지구적인 환경규제가 강화될게 뻔하므로 우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한편 김 교수팀은 개별 단백질뿐만 아니라 단백질의 상호작용이나 세포내에 존재하는 전체 단백질, 즉 단백체(proteome)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단백질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만일 세포내 단백질의 조성이 급격히 바뀌거나 활성이 바뀐다면 몸이 균형이 깨지고 그 정도가 심하면 질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단백체 연구는 질병을 이해하고 진단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단백체 연구의 중요한 수단이 바로 ‘단백질 칩’입니다. 소량의 시료만 있어도 세포내 각종 단백질의 발현양상이나 상호작용의 변화를 단시간에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김 교수팀은 먼저 비교적 단순한 생명체인 대장균을 모델로 해서 단백질 칩을 만들었다. 대장균의 유전자를 조작함에 따라 발현되는 단백질의 패턴을 조사함으로써 단백질 칩을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정상세포와 암세포는 단백질의 발현양상이 다르다”며 “차이가 두드러지는 단백질을 찾아 그 항체로 칩을 만들면 소량의 시료로도 암을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생체분자공학연구실에는 박사후과정 1명, 박사과정 8명, 석사과정 6명 등 15명의 연구원들이 김 교수와 함께 단백질의 신비를 파헤치고 있다.
 

생체분자공학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한 김학성 교수(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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