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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탄비 내리는 오렌지빛 원시지구

베일 벗은 타이탄

지구의 생명체는 어떻게 처음 탄생했을까.

여러 가설이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질소와 메탄 가스가 풍부한 원시 지구에 번개가 치면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유기물이 뭉쳐 생명체와 비슷한 형태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진화하다 마침내 첫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1953년 미국 과학자 밀러는 수소,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를 섞은 유리구에 전기를 방전해 아미노산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그러나 생명 탄생의 가설을 뒷받칠 만한 증거가 지구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여전히 생명의 탄생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호이겐스호가 타이탄 8~13km 상공에서 지표면을 360


타이탄에 생명 탄생의 비밀 숨어 있다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은 눈을 우주로 돌렸다. 광대한 우주에서는 혹시 타임머신을 타듯 원시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그들이 발견한 곳이 바로 토성의 31개 위성 중 가장 큰 타이탄(Titan)이다. 위성이라고 해도 타이탄은 수성과 명왕성보다 크며 태양계에서 2번째로 큰 위성이다.

타이탄은 여러 면에서 원시 지구와 닮은 꼴이다. 태양계의 여러 위성 중에서 유일하게 두꺼운 대기층을 갖고 있다. 더구나 지구와 타이탄에만 질소가 풍부한 대기가 존재한다. 지구와 형제인 화성이나 금성의 대기층은 이산화탄소로 이뤄져 있다.

또 타이탄에는 메탄과 에탄 같은 탄화수소 물질이 호수나 바다를 이룰 정도로 많을 것으로 추정됐다. 타이탄은 표면 온도가 영하 180℃에 달하는 얼음 세상이어서 실제로 생명체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위성이 약 40억년 전 지구에 생명체가 처음 탄생한 순간의 실마리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올해 그들의 꿈이 이뤄졌다.

타이탄에 메탄 비가 내린다

2005년 1월 14일 오후 6시 6분. 토성 주위를 돌던 우주선 카시니호에서 착륙선 호이겐스호가 떨어져 나왔다. 호이겐스호는 낙하산을 펴며 조심스럽게 타이탄 표면으로 떨어졌다. 두어 시간 뒤인 8시 27분. 호이겐스호가 타이탄의 표면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달을 제외하면 태양계의 위성 중 처음으로 인간의 손길이 닿는 순간이었다. 호이겐스호는 사진 350장을 촬영하고 각종 정보를 모아 카시니호로 보낸 뒤 수명을 다했다.

모선인 카시니호는 1997년 지구를 떠나 토성과 타이탄으로 향했다. 7년만인 지난해 7월 토성에 진입해 토성 고리를 촬영했으며 이번에 타이탄 탐사에도 성공했다. 호이겐스호는 유럽우주기구(ESA), 핵추진 우주선 카시니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했다.

호이겐스호가 보낸 타이탄의 모습은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원시 지구와 놀라우리 만큼 비슷했다. 무엇보다 타이탄에는 지구처럼 비가 내리고 기상활동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강과 바다, 호수가 있다는 유력한 증거도 제시됐다. 태양계 위성에서 액체의 증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SA 과학자들은 21일 “타이탄에서는 메탄 액체가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리는 등 지구와 비슷한 기상활동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메탄은 생명체 탄생에 꼭 필요한 유기물질이어서 이 관측은 타이탄에서 생명 탄생의 비밀을 푸는데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메탄 비는 타이탄 표면을 흘러 강을 만들고 바위를 깎고 퇴적물을 쌓는다. 미국 애리조나대 마티 토마스코 교수는 “호이겐스호가 착륙한 곳에 아마도 이틀 전에 비가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이겐스호가 보낸 사진 중에는 타이탄 표면에 강과 도랑으로 보이는 모습이 있었다. 호이겐스호가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해안선처럼 보이는 지형을 비롯해 메탄 온천에서 뿜어져 나온 퇴적물과 수로 같은 지형도 발견됐다.

메탄은 지구에서 기체 상태다. 그러나 온도가 낮고 대기압이 높은 타이탄에서는 메탄과 같은 탄화수소가 액체로 존재할 수 있다. 타이탄 전체가 마치 거대한 액화천연가스(LNG)통과 같다. 미국 애리조나대 피터 스미스 교수는 “액체가 없었다면 사진과 같은 모양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이겐스호가 보내온 타이탄 표면은 온통 오렌지빛 얼음 세상이었다. 오렌지 색깔의 메탄 안개가 타이탄을 뒤덮고 있었다. 바닥에는 오렌지빛 얼음 자갈이 가득했다. 얼음의 성분은 메탄 등 탄화수소와 물인 것으로 보인다. 대기에는 질소가 가득했다.
 

토성의 또다른 위성 피비. 운석에 부딪혀 만들어진 크레이터(운석구)가 많이 보인다.

 

타이탄에도 번개가 칠까

타이탄에서 생명탄생의 가설을 따라가면 남아 있는 것은 번개다. 번개가 쳐야 메탄과 질소, 수증기 등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복잡한 유기물을 만들 수 있다. 과연 타이탄에서 번개의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까.

호이겐스호는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며 타이탄에서 나온 온갖 소리를 녹음했다. 만일 호이겐스호가 보내온 정보에서 천둥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타이탄 대기에 번개가 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원시지구의 생명 탄생 가설’은 좀더 힘을 받을 것이다. 현재 확인된 소리는 호이겐스호가 떨어질 때 대기와 부딪치며 들린 ‘쉬이익’하는 마찰음이다.

당초 호이겐스호는 착륙한 지 몇 분 만에 운명을 마칠 것으로 생각했다. 부드러운 착륙을 위해 과학자들은 당초 착륙선을 타이탄의 어두운 부분 즉 호수나 바다로 생각돼온 부분에 착륙시키려고 했다. 실제로 타이탄은 그 지점에 착륙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밝은 곳이 호수, 어두운 곳이 땅이었다. 다행히도 타이탄이 착륙한 곳은 젖은 모래나 진흙 등 매우 부드러운 지역이었다. 호이겐스호의 탐침은 타이탄 땅밑을 약 10cm 이상 파고 들어갔다. ESA는 타이탄 표면이 ‘크렘 브륄레’(달걀, 크림, 설탕을 섞어 마든 프랑스 요리)처럼 말랑말랑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타이탄은 부드러운 땅에 착륙한 덕분에 오히려 3시간 가까이 살아남아 예상보다 더 오래 활동할 수 있었다.

과연 호이겐스호는 생명 탄생의 실마리를 보내올까. 착륙선이 보낸 정보를 해석하려면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일단 질소와 메탄으로 대기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큰 성과다. 액체 메탄도 생명 탄생의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일부에서는 오래 전 타이탄에 운석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열로 몇백년 동안 물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호이겐스호는 눈을 감았지만 모선인 카시니호는 앞으로 4년 동안 여전히 토성 주위를 70번 이상 돌며 조사를 계속한다. 도중에 타이탄에도 40번 이상 가깝게 접근한다. ESA에서는 앞으로 화성처럼 타이탄에 무인 탐사로봇을 보내 더 자세한 조사를 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생명 탄생의 베일이 지구 먼 곳에서 서서히 걷히고 있다.
 

카시니호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토성을 찍은 사진. 적외선 카메라에서 다르게 보인 부분을 다른 색깔로 처리했다.


타이탄과 호이겐스의 유래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을 가리킨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네덜란드 천문학자 호이겐스다. 호이겐스는 1655년 타이탄을 발견한 뒤 아이아페투스, 레아, 테티스, 디오니 등 토성의 다른 위성도 찾아냈다. 그는 토성에 고리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갈릴레이가 처음 발견한 이 부분은 당시 토성의 위성으로 알려져 있어 호이겐스의 주장은 반발을 많이 샀다. 토성 고리는 나중에 프랑스 천문학자 카시니가 증명했다. 이번에 토성과 타이탄에 간 우주선의 이름은 이 두 천문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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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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