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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닭이 머리 숙여 모이 쪼다

은하가 충돌하면서 아기 별 탄생하는 곳

닭이 새벽을 깨우며 목청껏 우는 소리도 인상적이지만 햇볕이 따뜻한 한낮에 마당 한쪽에서 병아리들과 함께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도 정겹다. 2005년은 을유년(乙酉年)으로 닭의 해다. 우주에도 닭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2000년 11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한 허블우주망원경 사진을 보자. 마치 새 한마리가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인 채 맛있는 모이를 먹고 있는 모양처럼 보인다. 새의 정체는 잘 알 수 없으니 닭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사실 사진의 주인공은 거문고자리에 있는 NGC6745다. 지구에서 2억 광년 이상 떨어져 있는 은하다. 수많은 별, 가스와 먼지가 어우러진 은하가 어쩌다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의 모습이 됐을까.

한국에서 닭은 시조의 탄생을 상징한다. 신라의 신화에 따르면 박혁거세 왕의 아내인 알영부인과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이 모두 닭과 관련된다.

먼저 알영부인의 이야기다. 알영이라는 이름의 우물가에 용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고 갔다. 아이의 자태와 얼굴은 아름다우나 신기하게도 입술은 닭의 부리를 닳았다. 아이를 월성에 있는 북천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이 아이는 우물의 이름을 따 알영이라 했고 훗날 박혁거세 왕의 아내가 됐다.

김알지의 신화에는 닭이 등장한다. 서기 65년 어느날 밤 탈해왕이 금성 서쪽의 시림 수풀 속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신하 호공을 불러 가보게 하였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은 왕에게 이를 보고하고 왕은 직접 찾아와 함을 열었다. 그랬더니 용모가 수려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던 왕은 이 아이를 후계자로 삼았다. 아이는 금(金)함에서 나왔다 해 성을 김씨라 했고 이때부터 시림은 닭을 뜻하는 계(鷄)자를 써 계림이라 불렸다.

사실 NGC6745도 알영부인이나 김알지의 신화처럼 탄생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탄생은 어머니의 산고처럼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놀랍게도 NGC6745는 두 은하가 충돌하고 난 후의 모습이다. 닭의 몸통처럼 보이는 부분이 커다란 나선은하이고, 닭의 머리 앞쪽에 약간 떨어져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작은 은하다.

보통 두 은하가 충돌할 때 물리적 접촉이 없더라도 가까이 지나가면서 서로에게 중력적으로 영향을 미쳐 모양이 뒤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닭을 닮은 NGC6745는 작은 은하가 큰 나선은하에 진짜 충돌한 경우다.

충돌의 흔적은 닭 몸통의 맨위쪽에 있는 파란빛 깃털에 남아 있다. 깃털뿐 아니라 머리도 파란빛이다. 작은 은하가 큰 은하에서 파란빛을 내는 부분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파란빛을 내는 천체들은 모두 충돌의 결과로 잉태돼 갓 태어난 별들이다. 닭의 깃과 머리에서 파랗게 빛나는 별들은 충돌의 아픔을 딛고 알영부인이나 김알지처럼 새로 태어난 셈이다.
 

닭이 머리를 숙이고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을 하고 있는 NGC6745. 사실 작은 은하(오른쪽 아래)가 커다란 은하에 충돌하고 지나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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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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