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바다 위 떠다니는 8층 건물

 

사다리를 밟고 올라 이사부호 내부에 들어서자 압도적인 규모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흔히 배를 타면 좁은 내부 공간을 비집고 이동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사부호 내부는 일반 연구실 건물에 들어선 것처럼 좁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복도는 서너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김동성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이 회의실에서 초대형 모니터로 이사부호의 내부 구조와 연구 성과를 설명해 줄 때는 ‘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이사부호에서는 층을 ‘1층’ ‘2층’ 등으로 부르지 않고 ‘데크’라고 표현한다. 이사부호는 메인 데크(Main deck) 위로 A부터 E까지 5개의 데크가 더 있고, 아래로는 2개의 데크가 있다. 쉽게 말해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의 대형 빌딩 한 채가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메인 데크는 이사부호의 핵심 공간이다. 바다에서 끌어 올린 시료는 즉시 연구 공간으로 끌고 들어와 보관 및 후속 처리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메인 데크에는 다양한 연구 시설이 설치돼 있다.
메인 데크 바로 위에 있는 A와 B 데크에는 식당, 식품 창고 등 생활 및 업무 공간이, C 데크에는 선장 및 최고연구원(Chief Scientist)의 숙소와 라운지, 사무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D 데크는 에어컨, 공조기 등이 설치돼 있다. E 데크는 배 전체를 지휘하는 조타실이다.


메인 데크 바로 아래에 자리한 세컨드 데크는 선원실, 헬스클럽, 각종 케이블을 끌어 올리는 윈치 시설, 로프 보관실 등 중장비와 선원 및 연구원들의 거주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사부호의 가장 아래는 플랫폼 데크(Platform deck)로 추진기와 발전실이 있다.


이만한 시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사부호만의 독특한 지휘 체계도 필요하다. 배에서 가장 큰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은 선장이다. 선장 아래 항해사, 갑판장, 기관장 등이 자신의 분야에서 책임을 갖고 배를 운영한다.


다만 이사부호는 바다 위의 연구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탑승한 모든 연구자들을 일괄 지휘하는 최고연구원이 별도로 탑승한다. 최고연구원은 연구 활동에 관해서는 선장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연구자들을 지휘한다.


이사부호의 총 승선 인원은 60명이다. 이 중 배를 운영하는 승무원이 22명이어서 연구원은 최대 38명까지 탈 수 있다. 이사부호의 주요 목적은 해저 탐사 임무다. 깊은 바닷속에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수천 m 길이의 강철 케이블을 넣고 여기저기 끊임없이 옮겨 다니려면 연구 목적에 맞게 배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승무원과 연구자들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내에서 부장급 선임 과학자다. 이사부호를 타고 수시로 바다를 나가고 있으며, 이사부호의 전체 연구를 총괄 지휘하는 최고연구원 역시 몇 차례 담당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최고연구원은 선장과 나란히 배에서 가장 높은 함교 바로 아래층에 개인실을 제공 받는다”며 “선장과 긴밀하게 논의하며 배 전체의 연구 활동을 책임지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초호화 해양 탐사장비, 보험료만 연간 1억 원

 

이사부호의 핵심 시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메인 데크를 찾았다. 강철 케이블을 걸 수 있는 철교 형태의 구조물과, 굵고 큰 강철 크레인이 설치돼 있었다. 이사부호 연구진은 이 두 개의 구조물을 이용해 각종 연구 장비를 바닷속에 집어넣고 해양 자원을 조사한다.


이사부호에서 쓸 수 있는 연구 장비는 40여 개에 이른다. 음파를 이용해 바닷속을 살펴보기 위한 여러 종류의 음향측심기, 해상중력계, 초음파 유속계, 음파를 이용한 해저지층탐사기, 과학어군탐지기, 표층 수온 및 염분측정기, 수심수온측정기 등이 설치돼 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시료를 건져올 수 있는 해저퇴적물시료채취기, 날씨 변화를 즉시 알 수 있는 자동 기상정보 시스템도 꼭 필요한 장비다. 연구용 장비를 바닷속에 던져 넣거나 이를 다시 끌어 올릴 때 쓰는 윈치는 연구 목적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시스템에 8개나 설치돼 있다.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윈치 운용실도 별로도 두고 있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해저탐사용 심해잠수정과 로봇도 운영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수층별 수온 및 염분측정기(CTD)’는 이사부호의 핵심 장비 중 하나로 꼽힌다. 마치 권총의 회전형 탄창처럼 생긴 이 장비는 검고 큰 원통형 측정 장치 여러 개를 연속해서 바닷속으로 던져 넣을 수 있다. 크레인과 윈치를 사용해 수심별로 수온, 염분 등 해양의 기본적인 상태를 측정한다. 측정된 데이터를 즉시 컴퓨터 데이터로 변환한 뒤 메인 연구실의 컴퓨터로 보낸다.


육지의 연구 시설에 준하는 완벽한 컴퓨터 시스템도 이사부호 연구 시설의 ‘꽃’으로 불린다. 육지의 IDC(Internet Data Center)에 필적하는 별도의 전용 서버실과 컴퓨터 장비를 이용한 자료 조사 및 가상현실 실험 시설(연구진은 이를 ‘드라이 랩’이라고 불렀다)까지 설치돼 있었다. 


여기에 ‘이사부넷(ISABU-Net)’이라고 이름 붙인 탐사정보 관리 시스템은 항해 및 탐사 활동에 필요한 선체 움직임, 선박 운항 관련 정보, 탐사장비 운용 정보, 선내 네트워크 등을 이사부호에 탑승한 모든 연구원과 승무원들에게 공유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이사부호 선박과 연구 장비 손실에 대비하기 위해 매년 보험료만 1억 원 이상 내고 있다.

 

 

 

인도양 2000m 심해서 세계 4번째 열수공 발견

 

이사부호는 취항이 2년이 채 안 된 조사선이지만 벌써부터 세계 해양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자랑할 만한 학술적 성과도 얻었다. 인도양 2000m 심해에서 300도 열수가 치솟는 ‘심해 열수분출공(열수공)’을 새롭게 찾아낸 것이다. 


열수공은 바닷속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유황 등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주변 바다보다 수압·수온이 높아 일반 생물이 살기 어렵다. 그 지역에 적응한 생물들만 진화해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며 살고 있어 ‘바닷속 작은 우주’로도 불린다. 


태평양에는 열수공이 수십 개 이상 존재하지만, 인도양에서 발견된 열수공은 이전까지 3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최근 네 번째 열수공을 이사부호 연구진이 찾아냈다. 그간 미국-일본, 독일-일본이 공동으로 찾아낸 것이 각각 1개, 그리고 중국이 찾아낸 1개가 전부였는데, 이번에 한국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4번째 발견에 성공한 것이다.


이사부호 연구진은 이 열수공을 2018년 5월 처음 발견했으며, 이후 여러 추가 조사를 거쳐 7월 26일 공식 발표했다. 기존의 열수공 3개와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진은 새 열수공에 ‘키오스트 벤트 필드(KVF·KIOST Vent Field)’라는 이름을 붙였다. KVF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열수공’이라는 뜻으로, 발견 기관의 이름을 붙이는 국제적인 관례에 따랐다. 


열수공 주변 생물은 지렁이처럼 생긴 환형동물을 비롯해 게, 새우, 조개, 따개비 등 만각류나 패류의 아종이 많다. 우주 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참고하기 위해 열수공 주변 생물을 연구하며, 지질학자들은 열수공에서 해저 화산 활동을 관찰하고 싶어 한다. 이 때문에 심해 탐사를 할 때 첫 번째 목표로 삼는 곳이 열수공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이번 발견으로 적어도 2∼3종, 많으면 10종 이상 신종 생명체를 발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열수공 발견이 이사부호의 뛰어난 성능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사부호의 최대 특기인 ‘다이나믹 포지션(DP)’이 큰 역할을 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악천후에도 바다 위에서 인공위성 신호를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유지해 항상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사부호는 다이나믹 포지션 기능으로 바닷속을 고화질로 촬영할 수 있는 심해영상카메라를 내려 보내 KVF를 발견했다. 이후 ‘TV그랩’이라는 집게 형태의 해저 굴착 장비를 내려 보내 열수공 지역의 흙과 돌, 각종 생명체를 대량으로 퍼올리는 데도 성공했다.


다이나믹 포지션 기능이 없는 해외 연구진은 해저탐사 로봇을 보내 일일이 해저를 조금씩 더듬어 나가는 식으로 탐사 작업을 벌인다. 이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량의 시료를 채취하기 어렵다. 김 책임연구원은 “해저탐사 로봇을 이용하지 않고 열수공에서 직접 각종 시료를 퍼 올린 건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데크로 내려가 살펴본 이사부호의 기관실은 이런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대형 원룸보다 큰 초대형 발전기 4대가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이곳에서 만들어낸 전기를 모터 방식의 추진기로 보낸다. 언제든 배를 앞뒤 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1m 정확도로 제어할 수 있다.


이사부호의 최대 속도는 15노트(약 28km)지만 평상시에는 추진기가 무리하지 않도록 12노트로 이동한다. 기관실을 안내한 이동석 이사부호 1등 기관사는 “일반 선박은 내연기관 엔진으로도 충분하지만, 이사부호는 정확하게 배를 제어하기 위해 전기 추진 장치를 채택했다”며 “다이나믹 포지션 기능이 해양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진로 추천

    • 해양학
    • 기계공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