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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세상의 모든 가로등이 사라진다면?

낮에만 매미 울고 사라진 별들 나타나

 

만약에 세상의 모든 가로등이 사라진다면?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그의 사진집을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가 이렇게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새삼스레 감동하게 된다. 프랑스 보 지역에 있는 하트 모양의 숲, 케냐의 투명한 마가디 호수, 카펫을 펼쳐놓은 듯한 모로코 알 마시라 댐과 라바트 사이의 농경지 모습은 마치 피카소 같은 위대한 화가가 그려낸 작품인 듯하다.

만약 베르트랑이 깜깜한 밤에 사진을 찍었다면 지상의 모습은 어땠을까? 다양한 모습과 다채로운 색상보다는 반딧불같이 반짝이는 불빛의 밀도가 각 도시의 특색을 전해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단조롭고 특별한 게 없을 것 같지만 한번쯤 높은 타워에서 야경을 본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운 장면을 쉽게 잊을 수 없다.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고층빌딩 모서리의 빨간 등,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현란한 네온사인은 잠들지 않는 도시의 밤을 밝혀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지상의 밤을 구석구석 꼼꼼히 밝혀주는 것은 바로 가로등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아무리 달려도 유리창너머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가로등의 노르스름한 불빛. 그런데 도대체 사람들은 언제부터 가로등을 켜고 살았을까?

파장 길어 멀리 보이는 주황색

우리나라에 가로등이 들어선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1900년 4월 10일 종로 네거리에 세운 최초의 가로등 수는 고작 3개였는데 100년이 지난 지금 서울 시내의 가로등 수는 12만2444개에 이른다고 한다. 밝기 또한 1970년대에는 7~9럭스(lx)로 파리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절반 수준이었던 것이 1992년에는 30lx로 4배나 밝아졌다. 양적, 질적인 면에서 놀라운 발전이다.

가로등에는 주로 따뜻한 주황색 빛을 내는 나트륨을 사용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주황색을 사용하는 것일까? 파장이 긴 적색광일수록 멀리 도달하므로 먼 거리에서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호등이나 공사표지판의 정지신호와 위험신호에 빨간색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가로등 조명이 빨간색일 경우 파란색이 보라색으로 보이는 부작용이 있어 적록색약자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때문에 가로등에는 빨간색 대신 비슷한 계열인 주황색을 사용한다. 또 나트륨등은 사용하는 전력량에 비해 밝기가 강해 경제적이며 자연광과 가깝다는 장점도 있다.

가로등에 대한 궁금증은 비단 불빛의 색 뿐만이 아니다. 어둡다 싶으면 어느새 가로등은 환히 켜져 있다. 누가 어떻게 저 많은 가로등을 켜고 끄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는가? 가로등은 실로 다양한 방법으로 켜고 끈다. 안테나를 달아 가로등 통제소에서 무선 원격조종으로 가로등을 작동하는 전파방식에서부터 빛을 감지하는 센서를 설치해 자동으로 가로등을 켜고 끄는 썬스위치 방식, 직접 가로등을 작동하는 직접방식, 일출과 일몰 시간을 입력해 놓은 타이머방식, 그리고 이런 방법들을 섞은 통합식까지 여러가지다. 이 가운데 장소와 용도에 맞춰 적합한 것을 골라 사용한다. 서울의 가로등은 무선 원격조종 방식으로 작동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익숙했던 가로등이 이런 다양한 방법으로 작동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냥 그곳에 서 있는 게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가로등에 이런 사실들이 숨어 있었다니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그만큼 가로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과연 가로등은 밤이면 으레 다시 켜지는 당연한 존재일 뿐일까? 만약 지상의 모든 가로등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굴러갈까?

세상의 모든 가로등이 사라진다면 우선 사람들은 야간에 운전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보행자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심야영화관에도 발길이 뚝 끊어질지 모른다. 어디 심야영화 뿐이겠는가. 밤 시간이 가장 활기찬 야시장과 24시간 편의점들도 예전만큼 벌이가 좋지 않을 것이다. 어둠과 범죄 발생률 간의 상관관계는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두운 밤거리를 걸을 때 누구나 심리적으로 불안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로등을 대체할 무언가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야간 훈련시 군인들이 쓰는 적외선 야간투시경의 기능을 갖춘 고글 정도라면 꽤 멋질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가로등을 없애고 모든 사람이 고글을 쓰고 다니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무게나 가격이 만만치 않을 적외선 투시경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그냥 거리 곳곳에 밝은 빛을 뿜어내는 가로등을 그대로 세워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빛의 공해에서 해방

하지만 가로등이 없어지면 한편으로는 밤을 대낮같이 밝히는 가로등으로 인한 피해들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야외조명, 가로등, 네온사인 등이 빚어낸 과도한 불빛이 환경오염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미 과학자들은 대기 중의 먼지 입자와 도시의 불빛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밤하늘 전체가 밝아지는 현상에 ‘광공해’라는 이름을붙였다.

광공해는 미국과 유럽 대륙의 99%와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피해를 입을 정도로 심각하다. 일부 학자들은 선진국에서 매년 유방암 환자가 늘어나는 것이 조명 과다로 인해 인체 내 멜라토닌의 자연스러운 분비가 무너진 탓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간을 비롯해 포유류, 조유, 양서류에서 잠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은 빛의 양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가로등의 지나친 불빛은 생태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알을 깨고 막 세상에 나온 거북이는 해변의 밝은 조명에 이끌려 방향감각을 잃기도 한다. 나방은 불빛으로 모여드는데 정신이 팔려 짝짓는 시기를 놓쳐버리거나 열기에 몸이 타버리기도 한다. 수천년동안 어두운 밤에 적응하며 살아온 동식물의 생체리듬이 가로등 같은 인공조명으로 인해 교란될 수도 있다. 한여름 매미들이 밤까지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도 생체리듬 교란의 결과다.

광공해는 별빛을 가려 밤하늘을 뿌옇기만한 검은색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보석처럼 박혀있던 밤하늘의 별들이 대낮처럼 환한 밤의 불빛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낮에는 태양빛에 가려지고, 밤에는 가로등에 가려 우리 눈에서 사라져버린 별의 수는 자그마치 2000여개다. 현재 세계인구의 5분의 1은 은하수를 볼 수 없는 곳에 살고 있으며, 황도 12궁의 별자리마저 온전히 볼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광공해 때문에 천체 망원경의 해상도까지 심각하게 떨어져 천문학자들은 연구에 난항을 겪기도 한다. 눈앞의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이 저 멀리 우주로 향하는 과학자들의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페이스 팝콘과 애덤 한프트는 ‘미래생활사전’에서 ‘밤하늘 보호지구’(Dark Sky Preserve)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밤하늘 보호지구는 하늘을 보면서 평화롭게 명상할 수 있도록 보호받는 일종의 시각적 휴식지역이다. 비록 미래생활사전에 수록된 내용이지만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하다. 이 책에서는 이미 밤하늘 보호지구로 지정된 미국 애리조나의 팔머호수를 소개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강원도 횡성군에서 천문인 마을이 있는 강림면 월현리를 ‘별빛보호지구’로 선포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도시의 밤은 더욱 환해질 것이고, 부담스러운 인공 빛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도 그만큼 늘어나 더 많은 밤하늘 보호 지구가 생길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가로등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서 광공해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로등이 사라진 밤에도 여전히 건물의 실내조명과 네온사인들은 그대로일 테니까. 또 밤에도 바쁘게 돌아가야 하는 도시에서 밤하늘의 낭만을 위해 가로등을 모조리 없애는 일은 불가능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로등의 밝기를 낮추고 인공불빛의 확산을 막는 것, 하늘에 별이 20~30개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요즘 도시 아이들에게 밤하늘에 대한 감수성을 되돌려 주는 것은 어른들에게 남겨진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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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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