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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터프 가이

SK케미컬 생명과학연구소장 김대기

현재 국내 제약업계는 신약개발 바람이 일고 있다. 학계와 연구소간 연계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경영자들의 투자 마인드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내 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가 개발되면서 제약업체들이 자신감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주인공이 선플라 개발의 주역인 SK케미컬의 김대기(44)소장이다.

“내가 과학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꼭 다시 한번 물어 봅니다. 정말 과학자 맞냐고요? 하하하!”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기도 하고 군인처럼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서 그런 것일까. 사실 그의 터프한 모습은 군인이었던 아버님의 영향이 크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가 사관학교에 가길 원하셨다. 만약 양쪽 다리만 붙었다면 지금쯤 사단장이 돼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약개발 시나리오 제1장 자신감

김대기 소장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터프가이다. 청소년 시절 와일드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 하다. 중학교 올라갈 때, 고등학교 올라갈 때 1차 시험에서 모두 패배의 쓴잔을 마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으니 그도 그럴 만하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은 늘 좋아하고 잘했다. 논리적인 것을 다룰 때는 그 무엇보다 즐거움이 앞섰다. 한번은 중학교 수학 시험 문제 중 전교에서 두명만 푼 경우가 있었다. 다른 한 명이 칭찬을 받았던 것에 비해 김소장은 컨닝을 했다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것에 기분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고2 때 철이 들었다. 장손이라는 책임감을 깨닫고 공부에 전념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김소장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작은 성공에 큰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 발명품 경진대회 같은 것이 있었는데 수돗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장치가 상을 받게 됐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 미국에서 공부할 때 28점 만점에 27점을 받으면서 세계 학생들과의 경쟁에서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이란 단어는 김소장을 이끌어내는 큰 힘이다. 버팔로에서 새벽 2-3시경 눈을 밟으며 도서관에서 집을 향할 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임을 가슴에 반복해서 새겨놓았다. 그런 까닭에 자녀들이나 동료들에게 작은 성공을 소중히 여기라고 강조한다. 작은 성공에 감사할 줄 알고, 그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항암제에 눈 돌린 이유

막연한 과학자였던 어렸을 때의 꿈이 약학으로 구체화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의사가 자신의 환자만 고친다면 약을 만드는 일은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울대 약대를 80명중 78등으로 입학했지만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만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소장이 항암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원 때 잠시 약국을 경영하면서다. 유학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경영하던 약국에서 인생의 목표를 정하게 된 것이다. 바로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들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김소장의 약국에는 진통제를 구하러 오는 암환자들의 보호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약국에서 팔 수 있는 진통제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한 가슴 속의 말이라도 하러 온 것이었을까. 당시 김소장은 암환자는 물론 그 주변 식구들의 고통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러면서 뉴욕 주립대로 가서 항암제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일생 동안 3개의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김대기 박사의 목표다.나머지 2개가 기다려진다.


일희일비하지 말아라

미국 제약회사에서 신약 개발에 관한 경험을 쌓았다. 그곳에서 이 정도면 얼마든지 국내로 들어가서도 자신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개발한 선플라는 그가 미국에서 국내로 귀국할 때 가져온 20개의 계획 중 한가지를 성공시켰을 뿐이다.

늘 자신감에 차있던 김소장이었지만 실패의 그림자는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사실 선플라 이전에 함암효과가 훨씬 좋은 약을 개발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심한 탈수증을 보이는 독성 반응이 나와 다 된 신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93년의 일이다. 이 때부터 김소장은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신약이 성공했을 때는 덤덤했다.

김대기 소장의 꿈은 생애 동안 3개의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이제는 가속도가 붙어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자랑한다. 자신처럼 약을 디자인하는 사람과 합성하는 사람, 테스트하는 사람, 약리학자, 의학자들의 인프라가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국내의 조급증 문화는 신약 개발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아쉬움을 표한다.


SK케미컬 생명과학연구소장 김대기

 

200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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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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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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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녕만 기자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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