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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봇 시대가 온다

정찰로봇에서 행성탐사선까지

 

전극 끝에 매달려있는 생체모방종이. 종이표면에 전류를 흘려주면 마치 잠자리의 날개짓처럼 펄럭인다.


‘떴다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어린시절 학교 운동장에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종이비행기를 접던 추억을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다. 칙칙한 8절 연습장을 뜯어온 아이에서 누나 몰래 두툼한 고급 도화지를 가져나온 꼬마녀석까지. 가을철 운동장 하늘은 형형색색 크고 작은 종이비행기들의 경연장이었다. 기껏 날아봤자 불과 5초 남짓. 단 몇초만 더 날아도 선망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좀더 높이 멀리 날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낱 공산일 뿐.

정말 종이비행기의 비상(飛上)은 단 몇초만의 희열로만 남을 운명일까. 인하대 기계공학과 김재환 교수가 이끄는 생체모방종이작동기연구단이 그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김 교수가 이끄는 연구단은 2003년부터 종이의 전기적 특성을 파헤쳐 그 움직임과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실 생물계의 움직임을 모방해 좀더 자연스럽게 동작하는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는 오래전에 시작됐다. 그러나 모터를 써서 만든 회전운동이나 직선운동만으로 생체의 정교한 움직임을 표현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팔근육의 움직임을 모방한 로봇팔만 해도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잠자리의 정교한 날갯짓은 기계 동작으로 결코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이로 모터 대체한다

최근의 생체모방작동기 연구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실제 동물 근육처럼 좀더 작으면서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말 그대로 인공 근육을 만들자는 것이다.

“인체 근육과 비슷한 특성을 갖는 재료를 찾는 연구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 전기작동폴리머(EAP)라고 불리는 재료가 있습니다. 이 재료에 전기를 흘려주면 실제 근육처럼 구부렸다 폈다하죠.”

김 교수 연구팀의 연구도 이와 비슷한 성질의 재료를 찾는데서 시작됐다. 이미 해외에서는 폴리머나 탄소나노튜브 등을 이용한 연구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남들이 손 안댄’ 독특한 소재를 찾던 김 교수에게 어느날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생체모방작동기 재료로 종이를 써보면 어떨까란 생각이었다.

“복사기 회사 연구소에서 병역특례연구원으로 근무했을 때 심심풀이로 종이에 전기를 걸어줘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기를 받은 종이가 ‘부르르’하고 떠는게 아닙니까. 그때는 그냥 재밌네 하며 넘어갔어요.”

곧바로 김 교수는 실험에 착수했다. 담뱃갑 종이는 물론이고 껌종이, 복사용지, 셀로판지까지 종이란 종이는 모두 가져와 실험대에 눕혔다. 그렇게 수백번의 실험 끝에 김 교수는 셀룰로오스 함량이 종이의 떨림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셀룰로오스 함량이 높은 종이가 더 잘 떨린다는 것. 연구팀은 종이가 떨리는 원인이 전기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압전효과와 종이 내부의 결정과 비결정부분을 옮겨 다니는 전하 움직임이 힘으로 바뀌는 이온전이현상 때문이라는 것도 함께 규명했다.

이런 특성을 갖는 종이 위에 얇은 안테나와 고주파 신호를 전기로 바꿔주는 회로만 덧붙이면 ‘종이로봇’이 만들어진다. 이 종이로봇은 무거운 배터리를 싣고 다니지 않고도 10~20기가헤르츠(GHz)의 전파만 쏘여주면 스스로 움직인다. 수신된 전파를 이용해 이동하는데 필요한 동력과 수집한 정보를 되돌려 보내는데 필요한 신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아직도 종이 움직이는 원인을 계속해서 찾고 있습니다. 앞서 규명한 원리 외에도 5~6가지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김 교수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이미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생체모방작동기 연구의 지침서격인 ‘Electroactive Polymer Actuator as Artificial Mucles’라는 책에까지 실리게 됐다.

화성 상공에 뿌려질 수천장의 종이로봇
 

에어백을 써서 화성에 착륙한 탐사선 상상도. 하지만 실패에 따른 결과는 참혹하다. NASA가 값싸고 실패에 따른 위험부담이 적은 탐사방식을 개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종이 로봇은 도대체 무슨 목적에 쓰이게 될까.

현재 김 교수 연구팀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연구를 펼치고 있다. 최근 들어 NASA는 값비싼 탐사선 대신 값싼 탐사선을 다량으로 외계로 보내는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당 수백~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탐사선에 만일 이상이 생겨 임무에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기능은 간단하지만 훨씬 저렴한 탐사선을 대량으로 제작해 보내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한마디로 ‘물량공세’를 펼쳐 성공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좀더 값싼 제작방식을 찾던 NASA연구진의 눈에 김 교수의 연구가 들어왔다.

“전기적인 특성 외에도 종이는 가볍고 잘 썩는다는 특성이 있죠. 특히 ‘움직이는’ 종이를 만드는데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그들(NASA)의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두 번, 올해 한 번 등 모두 세차례에 걸쳐 연구팀을 이끌고 직접 NASA를 방문해 샘플을 제작했다. 현재 NASA연구팀은 고주파신호를 받아 필요한 전력이나 정보로 바꾸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공동연구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화성이나 목성, 토성 상공을 수놓는 수백수천장의 종이탐사선을 보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NASA는 태양풍으로부터 위성을 보호하는 방안 중 하나로 이 기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처리된 종이작동기를 큰 우산형태로 만들어 접었다폈다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거대 구조물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데 필요한 막대한 로켓발사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연구단의 연구는 로봇 제작이나 일상생활에서 더 큰 변화를 예고한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며 날아다니거나 기어다니는 종이에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기술로 만든 초박막 렌즈를 붙이면 종이정찰로봇으로 탈바꿈한다. 종이가 눈앞을 날아가는 것을 무심코 지나쳤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또한 군사용 목적뿐만 아니라 교통량 측정이나 환경 감시 등 대량의 센서가 필요하거나 센서를 설치하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기분에 따라 색상과 문양을 바꾸는 ‘똑똑한 벽지’나 환경에 따라 모양을 이리저리 바꾸는 인조 화초의 등장도 기대할 만하다. 김 교수는 “우주기술이나 로봇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기존에 종이가 이용되던 모든 분야와 접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은 시작단계, 그러나
 

하이테크 제품 소개로 유명한 얼리어답터사의 마스코트 얼리 로봇. 직접 종이로 로봇을 접어 움직이게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총 9년에 이르는 연구기간 동안 연구단은 종이가 전기에 반응하는 원리를 규명하는 것은 물론 이를 이용해 실제 작동장치를 만들게 된다. 연구단은 우선 1차년도가 끝나가는 2005년 3월중 기어다니는 로봇, 일명 ‘크롤링 로봇’을 선보일 계획이다. 지금의 국내 연구와 NASA와 공동연구가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실제 구현은 무난할 것으로 김 교수는 보고 있다.

“종이 성분을 바꿔가며 정전기적 특성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측정장비를 이용해 결과들을 수치로 분석하는 연구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만 끝낸다면 MEMS기술과 결합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겁니다.”
2차 연구가 끝나는 2009년경에는 종이와 안테나, 회로를 하나로 합쳐진 통합 모델이 완성된다.

물론 여러가지 기술적 장벽들이 앞에 놓여 있다. 셀룰로오스 함량이 많은 종이를 제작하는데 심각한 공해가 발생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문제다. 종이가 습도에 민감하게 작용한다는 점과 종이 스스로 움직이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도 아직까지 연구가 더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최근들어 지금까지 연구성과와 계획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해외 연구자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의 한 주요연구기관으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서 열린 일본기계학회 발표자로 나섰다가 아시아 기술의 현황을 파악하려고 나온 이들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미국 관계자들은 김 교수 연구단의 발표에 매료돼 즉석에서 연구비 지원을 제안했다고 한다. 단순한 현상에서 색다른 발상으로 이어진 아이디어가 전세계에 주목을 받게 된 셈이다.

200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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