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습득하는 정보의 85% 정도를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는 청각, 미각, 후각 등 다른 어떤 감각기관보다 시각이 우리 인간이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데 의존하는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는 매우 다양하다. 눈을 뜨고 보는 모든 것들, 심지어는 눈을 감고 보는 꿈조차도 우리는 시각을 통해 본다. 하지만 이렇게 눈을 통해 받아들여진 정보는 보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인간은 이를 기록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마련했다. 그래서 나중에 두고 읽을 수 있고 또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정보는 그 내용에 따라 우리들이 흔히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문자나 숫자 등의 문자 정보와 이를 제외한 시각정보로 크게 나뉜다. 아이콘은 시각정보에 해당된다. 오늘날 정보화 사회에서 아이콘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아이콘은 학자나 연구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정의내려진다. 거의 모든 시각적 이미지를 포함한 것으로 보는 포괄적인 정의에서부터 어떤 대상과 모습이 비슷한 것만으로 국한시켜, 일반적인 사인(sign)이나 심벌(symbol)과 구별짓는 협의적 정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개 아이콘이라고 하면 ‘시각적 심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기능은 복잡, 사용은 간단
오늘날 아이콘이 많이 활용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이 기계적 제품에서 지적 제품으로 바뀌어짐에 따라 제품의 사용법이 고도로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의 정보화 시대 이전의 산업사회의 제품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기능을 지원해주는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흙을 파는 행위를 대신해주는 굴착기라든가, 걷는 행위를 지원해주는 자전거, 말하는 기능을 확장시켜주는 확성기 등이 산업사회의 제품들이다. 이런 제품들은 구조나 기능이 비교적 간단해 제품 자체의 모양만 보더라도 사용하는 방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제품들은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지원해줄 뿐 아니라 사람의 지적 기능, 즉 사람대신 기억해주고, 알아서 판단해주는 제품들로 바뀌게 됐다. 우리 주변을 잠깐만 둘러보더라도 자동초점 카메라, 옷의 종류와 무게를 판단해 알아서 세탁해주는 전자동 세탁기, 예약 조리기능을 가진 전자레인지 등 ‘알아서 척척해주는’ 제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품들의 기능은 고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이제 제품의 모습만을 보고서 사용법을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아무리 조그만 전자손목 시계를 구입하더라도 사용법이 촘촘히 적혀있는 사용 설명서가 따르기 마련이고 도움말(help)이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1950년대의 라디오와 1990년대의 라디오 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거의 눈을 감고도 조작할 수 있는 라디오에서 인간의 모든 지혜를 총동원해야만 가까스로 조작할 수 있는 라디오로 바뀌게 됐다.
아이콘이 가진 장점 5가지
1. 빠른 정보 전달
이렇게 아이콘은 새로운 제품의 사용방법을 이해시키는 수단으로서 각광을 받게 됐다. 아이콘의 여러가지 장점을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아이콘은 제품의 사용자로 하여금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의미를 매우 신속히 이해시킬 수 있다. 즉 우리가 흔히 문자적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읽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야 하지만 아이콘은 잠깐 쳐다보기만 해도 그 의미가 즉시 전달될 수 있다. 긴급을 요하거나 정보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 고속도로의 아이콘 사인은 문자적 사인보다 2배 정도의 속도로 빨리 읽을 수 있다.
2. 작은 공간, 큰 의미
아이콘은 문자보다 훨씬 작은 공간으로 표현가능하기 때문에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컴퓨터의 화면같이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전달해야할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아이콘은 간결성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가령 ‘배터리의 수명이 약해지고 있음’이라는 문자적 표현은 아이콘으로 간단히 표현될 수 있다.
3. 기억하기 쉽다
아이콘은 쉽게 기억될 수 있고 인지될 수 있다. 우리는 간혹 “얼굴은 눈에 선한데, 이름은 입에서 뱅뱅 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것을 기억할 때 시각적 정보는 그 정보가 가지고 있는 형태의 특성으로 인해 그 내용을 일일이 외워야하는 문자적 정보보다 훨씬 쉽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대하게 될 때 우선 형태로서 인지하고 그 이후 그 내용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인지적 측면에서도 시각적 정보가 훨씬 효과적이다.
유명한 코카콜라 로고를 보자. 얼핏 보기만 해도 그 독특한 형태로 인해 사람들은 쉽게 코카콜라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이를 읽어보면 코카콜라의 철자가 ‘카.코.칼.로’로 잘못 표기돼 있다.
이것은 인지과정에서 시각적 형태가 얼마나 우선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아이콘의 이러한 특성은 갈수록 사용방법이 복잡해지는 제품에서 아이콘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4.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아이콘의 또다른 특성은 사용자의 포괄성에 있다. 문자적정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학습을 거치거나 특정한 지식이 요구된다. 글을 깨우치지 못한 문맹자는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외국인이 우리말을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이콘은 본질적으로 표현대상의 모양을 기본 전달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런 지식이나 교육이 요구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콘은 교육정도, 국적에 상관없이 광범위한 사용자 계층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장점은 오늘날 같이 제품의 국제화가 이루어지고 사용계층이 다양화돼 가고 있는 현실에서는 극히 중요하다. 이는 비단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뿐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과 지구에 대해서 외계인과 의사 교환을 하기 위해 디자인돼 우주선에 부착된 시각적 정보이다. 시각적 형태는 커뮤니케이션 주체간의 모든 벽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마지막으로 아이콘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 기능뿐 아니라 사용자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더해 감성적인 측면에서 만족감을 준다. 아이콘에 활용된 형태나 색채 또는 전체적인 이미지는 무미 건조한 문자를 읽는 것보다 ‘감상하는’ 기능을 더해 사용자의 사용 동기를 유발시키거나 사용의 즐거움을 충족시킨다. (그림 1)의 경우를 보자. 얼마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가. 단순히 화장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볼수록 은근한 웃음을 자아내지 않는가.
상황에 따라 의미 달라져
하지만 이제까지 언급된 아이콘의 중요성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이콘의 디자인과 활용에는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 우선 같은 아이콘이라 하더라도 어떤 배경하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배경이란 그 아이콘과 인접해 있는 다른 아이콘, 아이콘과 관련지어 표기돼 있는 문자정보, 혹은 아이콘이 사용되는 물리적 환경이나 상황 등을 말한다.
어떤 아이콘에 활용된 동일한 빨간색이 교통신호등에서는 ‘멈춤‘, 일기 예보에서는 ‘더움’, 인체 해부도에서는 ‘핏줄’, 그리고 안전 표지판에서는 ‘위험’을 의미한다. 고속도로에서는 ‘식당’, 식당의 메뉴에서는 ‘음료’, 미국의 식품점에서는 ‘커피’, 영국의 식품점에서는 ‘홍차’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콘이 어떤 아이콘과 함께 사용됐는가에 따라서도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사람 모습의 아이콘의 예를 보자. 만약 여성의 아이콘과 함께 사용될 때는 ‘남성’, 노인과 어린이와 함께 사용될 때는 ‘성인’, 혹은 부인과 어린이들과 함께 사용된다면 ‘가족’을 의미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콘은 그 사용 배경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매우 커지므로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음으로 동일한 모양의 아이콘이라 하더라도 사용자의 호기심, 직업, 국적, 문화, 감정, 생활양식 등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전달된다. 우리들이 자주 활용하는 몸짓언어(body talk)의 경우를 보면 나라에 따라 각기 매우 다르게 해석됨을 잘 알 수 있다.
뺨을 손으로 문지르는 같은 몸짓에 대해 프랑스에서는 ‘지루함’, 미국에서는 ‘확신하지 못함’, 이탈리아에서는 ‘매우 거친 사람’,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맹세’, 남미에서는 ‘도둑’을 의미한다.
좀더 직접적인 예를 살펴보자. 어떤 소프트웨어에 실제로 활용되고 있는 그림은 사람이 달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아이콘이다. 독자들은 아마도 이 아이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의미를 가진 아이콘이다. “아니 도대체 달리는 것하고 실행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영어로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RUN’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아하..”라며 무릎을 칠 것이다. 이 아이콘은 영어권 사용자만을 위한 것이지 그 외의 사용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우편함의 기능을 나타낸 아이콘은 주로 미국에서 사용되는 가정용 우편함을 형상화했다. 과연 이러한 물건들을 접해보지 않은 사용자들에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지 궁금하다. 외국의 소프트웨어를 한국에 도입할 때 단순히 영어를 한글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인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적합한 아이콘으로 수정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예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보조수단
그런데 아이콘은 문자를 전적으로 대신하지는 않는다. 문자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는 수단이듯이 아이콘도 하나의 효과적인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문자는 문자 나름대로의 정보적 특성과 효율성이 있고 아이콘은 아이콘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즉 아이콘과 문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상호 배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어떤 경우에도 어느 하나를 배제한 채 한가지 수단에만 의존해서는 그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문자 정보는 아이콘의 의미를 쉽게 학습하게 도와줄 수 있으며, 아이콘은 문자 정보의 불완전한 메시지를 보완해줄 수 있다. 따라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의 특성에 따라 아이콘과 문자 정보를 적절하게 안배해서 사용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