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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분자로 테라급 소자 만든다

과학기술의 산실 KAIST 유기광전자재료연구실

 

기판에 나노분자를 배열시키기 전에 금원자 박막을 입히는 과정을 거친다.


“모니터를 보세요. 규칙적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의 지름이 10나노미터입니다.”

금빛이 반짝이는 얇은 판을 슬라이드에 얹어 현미경에 밀어 넣고 초점을 맞추자 벌집처럼 규칙적인 패턴이 보인다. 10나노미터(nm, 나노는 10억분의 1)면실제 벌집의 구멍에 비해 크기가 100만분의 1밖에되지 않는다.

“나노구조물을 연구하려면 원자현미경이 필수장비입니다. 영상을 보니 패턴이 잘 만들어진 것 같네요.”

생명화학공학과 유기광전자재료연구실 정희태 교수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며 설명을 시작한다.

“ 반도체칩이나 디스플레이 소자는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현재 쓰이는 리소그라피, 즉식각공정기술로는 100nm 이하로 줄이기가 쉽지않고, 최첨단 리소그라피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30nm 이하로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들이 이에 대한 대안을 찾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정 교수팀이 연구하는 유기분자. 유기분자는 실리콘 소재와는 달리 다양한 구조를 갖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팀은 기둥모양의 구조물로 ‘자기조립’을 할 수 있는 분자를 만들었다. 자기조립이란 분자들이 스스로 모여 일정한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자기조립은 생체 내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포막은 지질 분자가 자기조립을 통해 이중막을 형성한 것이다.

연구자들이 설계한 분자의 구조는 자기조립을 할 수 있을뿐더러 다음 단계의 처리를 위한 교묘한 배치를 하고 있다. 즉 분자의 일부분이 자외선에 취약한데 이부분이 기둥의 안쪽을 향해 배치돼 있는 것. 따라서 판위에 분자 기둥을 세운 뒤 자외선을 쪼이면 가운데가 떨어져 나가면서 마치 우물처럼 움푹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멍에 자성물질을 넣어주면 하나의 메모리 단위가 됩니다. 길이가 10nm니까 엄청난데이터 집적이 가능해지죠.”


정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밀도 자기기록소자는 현재의 기가비트급(기가는 10억) 메모리를 뛰어넘어 테라비트(테라는 1조) 이상의 메모리를 구현할 수 있다. 현재 정 교수팀이 개발한 나노구조체를 갖고 KAIST 물리학과 신성철 교수팀이 고밀도 자기기록소자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혼자 연구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혁신적인 결과가 나오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유기구조재료를 전공한 정 교수이지만 전자공학과 생물공학 관련 뉴스들은 빼놓지 않고 챙긴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유기광전자재료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한 정희태 교수(아랫줄 가운데).


바이오칩 연구 활발
 

구멍의 지름이 10nm인 나노구조물의 원자현미경 사진.


정 교수팀은 최근 나노구조체를 활용해 바이오칩을 만드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나노우물의 크기는 단백질 하나가 들어가기에 알맞은 크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 특정 항원에 반응하는 항체 같은 단백질을 고정시킨 바이오칩을 만들면 현재 나와있는 칩보다 크기를 훨씬 줄일 수 있다.

한편 차세대 DNA칩을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의 DNA칩은 주로 형광물질을 붙여 신호를 검출하는 방법으로, 칩의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고 경제성도 낮다. 정 교수팀은 DNA가닥을 탄소나노튜브에 붙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나노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탄소나노튜브는 탄소로만 이뤄진 분자로 죽부인처럼 속이 빈 길쭉한 모양인데 구조에 따라 전도체 또는 반도체가 된다.

연구자들은 탄소나노튜브에 DNA가닥을 붙일 경우 탄소나노튜브의 전도도가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정 교수는 “추가 실험을 하던 도중 DNA가 단일가닥이냐 이중가닥이냐에 따라서도 전류흐름이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탄소나노튜브가 바이오센서 소재로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방법이 실용화된다면 기존의 진단용 칩을 대체하는 기술로 경제적으로도 큰 파급효과가 있을 전망이다.

현재 유기광전자재료연구실에는 박사과정 7명, 석사과정 4명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 교수는 “우리 학생들은 분자를 설계해 합성하는 연구부터 나노구조물을 만들어 조작하는 연구, 광전자소자와 바이오칩을 개발하는 연구 등 기초와 응용기술이 다양하게 필요한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 교수는“아직도 학생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독창적인 기술은 선진국에서 나오고 우리나라는 이를 답습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며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창의성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앞으로의 연구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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