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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로 유전병 고친다

간섭 원리 이용한 의약품 쏟아져 나올듯

 

최근 생명공학연구자들은 RNA 간섭을 이용한 유전병 치료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9월 7일 미 생명공학기업인 시르나(Sirna)는 생명공학계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퇴행성 각막질환 치료를 위해 개발한 신약의 임상시험 허가를 미 식약청(FDA)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신약을 상용화시키려면 임상시험 허가는 당연히 거쳐야할 과정이다. 그런데 유독 시르나사의 신약이 화제가 된 건 왜일까.

바로 신약이 알약이나 가루약이 아닌 RNA였기 때문이다. 만약 시르나사의 임상시험이 성공해 시판이 허가된다면 앞으로 RNA는 질병을 치료하는 차세대 ‘신약’ 으로 급부상할 것이다. 생명공학계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주연으로 급부상한 RNA 간섭
 

1950년대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생명현상의 중심이라고 발표한 DNA로 이뤄진 염색체.


요즘 생명공학연구의 화두는 단연 RNA다. 하지만 RNA가 생명공학 연구의 주연 자리를 꿰찬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50여년전 DNA가 생명현상의 중심이라고 발표한 이후 생명공학 연구의 관심은 온통 DNA에 쏠려 있었다. 일부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정보를 DNA에 보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간 RNA는 DNA의 조연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됐다. RNA는 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전달 받을 때 전사라는 과정을 거쳐 합성된 후 다시 이 유전정보에 담긴 기능을 수행할 단백질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중간자일 뿐이었다. RNA는 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단순히 전달자의 역할만 담당한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일련의 연구를 통해 DNA로부터 전사되는 RNA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1년부터 작은 크기의 다양한 small RNA(sRNA)가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과정에 여러 형태로 관여해 세포의 기능을 총괄 조정하는 지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RNA 연구는 급물살을 탔다. 이런 조류를 반영하듯 세계적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는 지난 2002년 그 해의 ‘10대 하이라이트’ 를 선정하면서 sRNA 연구를 ‘최고의 과학 업적’ 으로 선정했다.

특히 최근에는 RNA 연구 중에서도 RNA 간섭(RNAi, RNA interference)에 대한 연구가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사이언스’가 과학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10대 중요 과학적 성과를 발표하면서 여기에 RNA 간섭 현상을 유도할 수 있는 소간섭 RNA(siRNA, small interfering RNA) 기술을 포함시켰다. 올 2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기술정보잡지인 ‘테크놀로지 리뷰’ 에서도 21세기를 변화시킬 10대 기술에 ‘RNA 간섭을 이용한 질병치료 기술’ 을 선정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도대체 RNA 간섭은 무엇일까. 그리고 RNA 간섭과 질병치료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유전정보 발현 억제해 간섭

RNA 간섭은 쉽게 말해 RNA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간섭을 받아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생명체에서 유전정보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DNA의 유전정보가 RNA로 전사된 후 이 유전정보에 담긴 대로 단백질이 합성돼야 한다. 만약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단백질 합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RNA 간섭은 이런 원리를 활용한다. DNA의 유전정보를 단백질 정보로 전달할 때 이 과정에 관여하는 전령RNA(mRNA, messenger RNA)를 방해하거나 파괴해 단백질 정보가 중간에서 전달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유전정보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이다.

사실 단백질 합성 단계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증거는 1990년대 초 식물세포에서 가장 먼저 발견됐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까지 식물학자들 외에는 RNA를 매개로 한 유전자 발현 조절 현상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RNA 간섭에 대한 생명공학자들의 관심이 증폭된 것은 1993년 미 다트머스대 빅토르 암브로스 박사 연구팀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하등생명체의 일종인 꼬마선충의 발생과정을 조절하는 일련의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유전자들 중 일부가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유전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sRNA였던 것. 암브로스 박사 연구팀은 이 RNA가 특정 발생단계에서 발현돼 발생을 조절한다는 의미에서 stRNA(small temporal RNA)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1998년 미 카네기연구소의 파이어 박사와 매사추세츠의대 멜로 박사 연구팀이 우연히 단일 가닥의 RNA 염기들을 서로 결합시킨 2가닥의 RNA를 꼬마선충의 세포 안에 주입하자 표적이 되는 RNA만이 특이적으로 파괴돼 유전자 발현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이러한 현상은 RNA 간섭으로 불렸다.

하지만 RNA 연구자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유전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sRNA나 RNA 간섭현상이 관찰된 것이 모두 하등생명체였기 때문이다. 포유동물을 비롯해 인간과 같은 고등생명체에서 RNA 간섭현상을 유도할 수는 없는지, 만약 고등생명체에서 RNA 간섭현상을 유도할 수 있다면 이를 활용해 새로운 유전병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

2001년부터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토마스 투셀 박사(현재 미 록펠러대 교수)가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에서도 RNA 간섭현상을 효율적이고 특이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siRNA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1년과 2002년 암브로스 박사 연구팀을 포함해 4개 연구팀이 1백50여개에 달하는 전령RNA의 염기서열과 80-90%의 상보성을 갖는 새로운 sRNA를 발견해 이를 마이크로RNA(miRNA)라고 불렀는데, 최근 이런 miRNA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연구를 통해 miRNA가 세포질에 존재하면서 단백질 합성단계에서 RNA 간섭을 통해 진핵생물의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스위치 역할하는 RNA
 

RNA 간섭을 처리하지 않은 폐암세포


그렇다면 RNA 간섭을 활용해 어떻게 유전병 치료를 한다는 것일까. 현재 4천종 이상의 질환이 유전자 변이나 유전자 발현의 이상 때문에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정보를 가진 유전자로부터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는 RNA를 세포내에 주입하면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전선의 스위치를 누르면 전류가 흐르고 스위치를 떼면 전류가 흐르지 못하는 것처럼 RNA 간섭을 일으키는 siRNA는 마치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RNA 전선의 유전자 스위치처럼 중간에서 단백질 합성 유전정보를 차단한다. 이것이 RNA 간섭을 이용한 유전병 치료의 기본 개념이다.

시르나사가 임상시험을 요청한 RNA 신약도 RNA 간섭을 유도하는 siRNA다. 퇴행성 각막질환은 각막 내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과대형성 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현재 의학기술로는 치료가 매우 힘든 난치성 질환의 일종이다. 때문에 시르나사는 혈관형성 명령을 인식하는 혈관세포 수용체 단백질의 합성을 방해하는 siRNA를 세포내에 직접 주입해 과도한 혈관 형성을 제어하도록 했다. 임상시험이 성공한다면 RNA라는 새로운 신약 사용이 곧 실현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RNA 간섭의 ‘능력’ 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RNA 간섭은 유전병 치료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응용이 가능하다. 우선 RNA 간섭은 바이러스 감염성 질환 치료에 이용될 수 있다. 현재 RNA 간섭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원천특허를 확보한 투셀 박사를 중심으로 설립된 생명공학기업인 알나이람(Alnylam)뿐 아니라 시르나사를 비롯한 많은 제약회사와 대학 연구진들이 여러 종류의 암과 에이즈 바이러스, 간염 바이러스,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siRNA를 개발 중에 있다.

식물학자들 역시 RNA 간섭 기술에 적극적이다. RNA 간섭 기술을 식물에 적용해 경제성이 높은 작물의 재배기간을 단축하거나 병충해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생명공학연구자들은 다른 이유 때문에 RNA 간섭 기술에 열광한다. RNA 간섭 기술을 유전자 검정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놈프로젝트 등을 통해 수많은 질병관련 유전자, 신약개발 관련 유전자, 발생과 분화, 노화 등 생명현상과 관련된 유전자 등 현재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전자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유전자들의 기능과 응용가능성을 쉽고 빠르게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불과 2-3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전자 하나의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 적게는 1년, 많게는 3년이라는 긴 시간과 엄청난 연구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RNA 간섭 기술을 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RNA 간섭 기술을 활용하면 수개월내에 유전자 하나의 기능을 쉽게 규명할 수 있다. 이 점이 현재 수많은 연구자들이 RNA 간섭 기술에 걸고 있는 기대다.
 

RNA 간섭을 처리한 폐암세포. RNA 간섭을 처리하면 폐암세포의 사멸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안전한 siRNA 전달시스템 개발이 관건

현재 세계적으로 RNA 간섭 기술 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됐을까. 연구실에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는 현재 RNA 간섭 기술 수준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전자 대량 검정이나 의약품 개발을 놓고 보면 RNA 간섭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풀어야 할 난제들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siRNA 운반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RNA 간섭 효과를 충분히 유도할 수 있도록 siRNA를 표적세포에 주입하는 효율적이고 안전한 전달시스템이 없다.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되느냐에 따라 RNA 간섭 기술이 화려하게 꽃 필지 정체될지 결정된다.

또 RNA 간섭 현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동물세포에서 RNA 간섭이 일어나게 되면 표적이 된 단백질뿐만 아니라 다른 단백질의 합성이 억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현재 전문가들은 RNA 간섭 현상은 특이성이 높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

치료제로 사용될 siRNA의 안전성 및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연구도 필요하다. RNA 간섭 현상을 유도하는 miRNA와 siRNA 중에서 miRNA는 생명체내에서 발현돼 생성되는 반면 siRNA는 생명체내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에 따라 표적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합성해 주입하거나 세포 안에서 발현되도록 조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RNA 간섭에 관한 연구가 한창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팀은 miRNA의 생성과정에 과한 메커니즘과 종류 및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또 많은 연구자들이 유전자의 기능 및 세포의 신호전달 과정 연구에 siRNA를 매개로 한 RNA 간섭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이 밖에 국내 생명공학벤처기업인 벡터코에이에서는 siRNA를 효율적으로 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을 통해 기초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안전성이 향상돼 인체에 무해한 siRNA 발현 및 전달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아직까지 RNA 간섭 기술이 보편적으로 임상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

하지만 과거에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기술적 제약들이 과학의 힘으로 해결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RNA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등 RNA 간섭을 통해 새로운 생명공학기술의 패러다임을 여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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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연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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