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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웅배의 '최애 은하'] 고흐의 밤하늘을 비춘 소용돌이의 놀라운 비밀

1889년 어느 여름날,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생 레미의 정신병원으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동생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그는 가난한 화가, 반 고흐였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의 유일한 위안은 그림이었다. 그는 몇 년 전 우연히 접한 한 천문학자의 삽화에 매료돼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고흐는 좁은 병실에서 우주를 상상했다.

 

고흐를 매료시킨 우주의 소용돌이

 

고흐에게 깊은 위로를 선사한 주인공은 바다 건너 아일랜드의 천문학자 윌리엄 파슨스였다. 파슨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망원경을 지었다. 지름이 1.8m나 됐다. 사람들은 그 괴물을 파슨스 타운의 리바이어던(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여행했다. 그리고 이상한 천체들을 발견했다. 보통 별은 작은 점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의 망원경엔 점 하나가 아닌 뿌연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형체들이 나타났다. 파슨스는 그 아름다운 모습들을 세밀한 삽화로 기록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개자리 방향에 놓인 아름다운 은하 M51을 그렸다. 반시계 방향으로 휘몰아치는 거대한 별들의 소용돌이 옆에, 또 다른 작은 빛 덩어리 하나가 함께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SF 작가였던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대중 천문학’이라는 책에 소개됐다. 당시 가장 인기있던 교양 천문학 책이었다(지금으로 치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정도랄까).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거의 모든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이 책을 읽었다. 고흐도 마찬가지였다. 고흐는 병원에 머무는 동안 파슨스의 소용돌이치는 은하 그림들을 보며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우리 우주가 그 은하들처럼, 소용돌이치고 물결치는 세상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퇴원한 고흐는 그해 여름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 뒤로 떠오른 밝은 금성과 초승달이 물결치는 밤하늘을 완성했다.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선팔 구조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고흐를 사로잡은 은하 M51은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우주의 수많은 다른 세계들을 제치고 ‘소용돌이 은하(Whirlpool Galaxy)’라는 멋진 별명을 쟁취했다. 은하는 타원은하와 원반은하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원반은하는 대부분 M51처럼 거대한 나선팔 두세 개가 아름답게 휘감긴 모습이다. 나선팔을 가진 원반은하를 나선은하라고 부르기도 한다.

 

재밌는 사실은 원반은하들의 거대한 나선팔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수십 억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선팔은 얼핏 보면 하나의 고정된 구조처럼 보인다. 나선팔을 이루는 별들이 계속 그 안에 머무르며 나선팔을 유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 같은 형체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은하 중심으로 갈수록 별은 더 빠르게 돌기 때문에 나선팔은 안쪽부터 더 팽팽하게 휘감긴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은하의 ‘감기 문제(Winding problem)’에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실제로 원반은하를 이루는 별들은 나선팔과는 별개의 속도로 움직인다. 나선팔은 원반은하와 별개의 궤도를 도는 별들이 원반은하와 겹쳐 보이며 두드러지는 것에 불과하다. 별들이 쭉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나선팔이 실제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고속도로에서 느리게 달리는 트럭이 한 대 있다고 생각해보자. 트럭과 같은 차선을 달리는 트럭 뒤 차량들은 트럭을 앞지르기 위해 옆으로 차선을 바꾼다. 그 결과 처음부터 옆 차선을 달리고 있던 차량들과 맞물려 정체 구간이 생긴다. 하지만 트럭을 피한 차량들이 계속 정체 구간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속도를 내며 정체 구간을 벗어난다.

 

이 상황을 하늘에서 내려보면 차량들이 높은 밀도로 머무르는 정체 구간이 있고, 정체 구간에 속한 차량들은 실제 속도보다 더 천천히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체 구간은 서서히 흐르듯 이동한다. 이것이 바로 나선팔이다. 특정 별들이 계속 나선팔에 머무르며 구조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별들의 밀도가 높은 지역이 흘러간다는 의미에서 나선팔은 ‘밀도파(Density Wave)’ 특성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별들 사이에서 이런 아름다운 교통체증이 왜 시작됐는지 정작 그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거대한 은하 주변을 맴도는 작은 은하를 원인으로 지목하곤 한다. 작은 은하의 중력으로 인해 큰 은하 속 별들의 궤도가 미세하게 요동치고, 그 결과 은하 원반을 둥글게 휘감는 밀도파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M51의 한쪽 끝에도 작고 둥근 은하 NGC 5195가 이어져 있다.

 

 

붉은 구름과 푸른 별이 수놓다

 

별과 함께 가스 구름도 정체 구간, 즉 나선팔 구간을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별과 가스 구름이 높은 밀도로 반죽되며 그 안에서 어린 별들이 탄생한다. 갓 태어난 뜨겁고 어린 별들의 별빛으로 달궈진 가스 구름은 붉게 빛난다. 가스 구름의 대부분은 수소로 채워져 있는데 이것이 높은 온도에서 붉은 빛을 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붉게 빛나는 별 탄생 지역을 ‘수소 II 영역(H II region)’이라고 부른다.

 

나선팔 구간을 통과하는 가스 구름 안에서는 별들이 계속 만들어진다. 갓 태어난 어린 별은 아주 뜨겁고 그래서 푸르게 빛난다. 천문학에서는 뜨겁고 푸르게 빛나는 별을 O형 또는 B형이라고 부른다. 갓 태어난 어린 별들이 모여있는 푸른 별무리를 ‘OB 성협(OB association)’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 별무리는 나선팔 구간을 완전히 벗어나고 그동안 별들도 나이를 먹는다. 실제로 은하 원반에 분포하는 별들의 나이를 보면 나선팔에서 멀수록 나이가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망원경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나선팔을 따라 붉게 빛나는 수소 II 영역과 푸른 별무리 OB 성협들이 줄지어 이어진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붉은 수소 II 영역은 거의 정확히 나선팔 위에서 빛나는 반면, 푸른 별들은 나선팔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에서 빛나고 있다. 이는 푸른 별을 감싸고 있던 붉은 가스 거품들이 시간이 지나면 날아간다는 뜻이다. 나선팔에서 벗어나면 가스 거품은 사라지고 푸른 성단만 드러나게 된다.

 

늦은 밤 이 원고를 쓰면서 창밖을 내려다본다. 도시의 밤은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자동차들의 미등으로 알록달록하게 빛난다. 아름다운 빛의 물결이다. 하염없이 그 풍경을 보노라면 미안하게도 그 불빛 하나하나가 도로에 갇혀 기어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당신도 매일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도로 위의 아름다운 은하수를 만들고 있는가. 도로 위에 갇힌 당신도, 밤하늘에서 소용돌이치며 고흐에게 영감을 줬던 별들도 모두 우주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밀도파의 일원임을 잊지 말자.

 

※필자소개.

지웅배.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은하들이 사랑을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연구한다. 우주를 가이드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은하철도 999 차장을 꿈꾼다. galaxy.wb.zi@gmail.com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지웅배 연세대 은하진화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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