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치료를 받던 환자가 백혈병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미국에서 진행중인 27건의 유전자치료를 전면 중단시켰다고 발표했다. 유전자치료 중 백혈병이 발생하기는 2002년 9월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당시에는 3건의 유전자치료가 중단됐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로 유전자치료가 전면 중단되기는 처음이다.
유전자치료란 유전자에 문제가 있어 질병을 앓거나 앓게 될 환자를 대상으로 세포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치료하는 기술이다. 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건강한 새 유전자로 바꾸거나, 유전자를 추가로 넣어 새로운 기능을 갖게 하고, 질병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새 유전자는 벡터라는,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에 실어 인체에 집어넣는다. 벡터 바이러스는 병의 원인인 목표물을 정확하게 찾아가 손상된 유전자를 건강한 유전자로 바꾸는 것이다.
1990년 미 국립보건원(NIH)이 중증면역증(ADA)을 앓고 있던 여아 2명을 대상으로 최초의 유전자치료를 실시했다. 이후 유전자치료는 선천성 면역결핍증과 암, 관절염, 순환기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 인류의 난치병들을 치료할 미래 의학기술로 주목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 9월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유전자치료를 받던 제시 젤싱어라는 17살 소년이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벡터로 사용된 아데노바이러스가 심각한 면역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지만, 좀더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진이 유전자치료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데 있었다. 그래서 유전자치료는 계속 진행됐다.
유전자치료 중 백혈병에 걸린 환자는 X염색체 돌연변이로 인한 혼합면역결핍증(X-SCID)을 앓고 있었다. 혼합면역결핍증은 면역계의 T세포와 NK세포가 만들어지지 않아 외부에서 침입한 병균에 전혀 대항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거품처럼 외부와 격리된 무균실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버블보이’(bubble boy)병이라고도 불린다.
계속 실시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어
혼합면역결핍증에 대한 유전자치료는 프랑스 네커 아동병원 알랭 피셔 박사팀에 의해 처음 실시됐다. 이 연구결과는 2000년 4월 미국의 ‘사이언스’에 발표됐는데, 유전자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면역기능을 완전히 회복해 정상인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2002년 9월 프랑스에서 같은 치료를 받던 3살 남아가 백혈병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에서 똑같은 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사실 FDA는 첫번째 백혈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 혼합면역결핍증을 비롯해 3건의 유전자치료를 미국에서 중단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모 병원이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했던 것이다.
현재 FDA는 유전자치료 중 어떤 이유로 백혈병이 발생했다는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치료를 위해 넣어준 유전자가 백혈구에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특정 유전자(Lmo2) 옆에 끼어들어서가 아닐까 추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유전자치료를 중단한 것에 대해 FDA는 예방 차원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중단시킨 유전자치료의 목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FDA의 유전자치료 담당 필 노구치 박사는 수백명의 암환자에 대한 유전자치료도 포함돼 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유전자치료의 전면적인 중단이 환자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혼합면역결핍증의 경우 유전자치료의 성공률은 90%지만, 골수 이식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 1년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셔 박사는 “부작용이 없는 치료법 개발을 위해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전자치료는 1995년 처음 시도돼 수건이 학계에 보고돼 있다. 차병원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정형민 소장은 “다른 치료 수단을 모두 사용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만 유전자치료를 해야 한다”면서 “임상시험 전에 안전성을 확보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치료에 대한 법률적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지만, 과학자 스스로가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유전자치료는 조만간 현대 의학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질환을 치료할 유용한 수단이 될 전망이다. 치료를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치료에 의한 결과는 환자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대물림이 되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예측하기 힘들다. 국내에서도 유전자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