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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새로운 세상을 본다

우리 시대의 ‘잡종적 지식인’ 홍성욱 교수

우리 시대의 ‘잡종적 지식인’ 홍성욱 교수


역사적 전통과 정통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우리사회에 언제부턴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양자를 소통하는 역할을 하는 경계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여러 전공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연구하는 간학문적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사람들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그곳이 보수적이라고 이름 높은 학계라면 환영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지 모른다. 그런데 아예 ‘잡종(hybrid)’에 대한 관심 정도가 아니라, ‘잡종적 지식인’이 돼야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잡종 정신’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학자가 있다.

Yes와 No의 지식을 넘어서

서울대 홍성욱 교수. 그의 잡종론은 이미 1990년대 후반 토론토대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부터 인터넷과 여러 저서를 통해 국내에 꽤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그의 학문적 연구에도 일관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홍 교수는 최근 ‘과학은 얼마나’(서울대출판부, 2004)를 펴냈다. 이 책은 과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과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과학은 얼마나’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 혹은 아닌가” “과학은 사회적으로 구성됐나, 혹은 아닌가”라고 물으며 Yes와 No라는 대답을 강요하는 대신, “과학은 얼마나 가치중립적인가” “과학은 얼마나 사회적으로 구성됐나”라는 질문을 통해 양쪽 세계를 함께 조명해볼 줄 알아야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과학의 성격과 본질에 대한 논의를 비롯해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자의 창의성과 리더십 등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에 대한 비판과 대안, 과학학의 이론적·실천적 쟁점 등을 종합 정리했다. ‘과학은 얼마나’라는 질문의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서 과학과 과학학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기대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에 대한 소개와 비판은 이미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문학과지성사, 1999)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이 책은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과학사회학과 과학철학의 연구성과를 결합시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봤다. 이번에 쓴 ‘과학은 얼마나’는 그 속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과학은 얼마나’는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들녘, 2002)에서 정보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 비판을 극복하고, 과학기술의 열림과 닫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기도 하다. 미래사회가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라는 논쟁 대신 두가지 가능성 모두를 인정하고, 네트워크 혁명의 ‘열린’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닫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갈등하는 서로 다른 세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홍 교수의 생각은 ‘잡종, 새로운 문화읽기’(창작과비평사, 1998)와 ‘하이브리드 세상읽기’(안그라픽스, 2003) 같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그가 말하는 ‘잡종’은 양쪽 세상의 언어와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둘을 연결시켜주는 메신저다. 따라서 잡종은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고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소중한 존재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잡종에서 발견한 생명력과 힘

자연과학을 인문·사회학적으로 탐구하는 과학학이 전공인 홍성욱 교수는 과학사와 기술사를 같이 연구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마칠 때만해도 양자를 아우르는 것이 장점이 될 줄 알았던 그는 뜻하지 않는 벽에 부딪쳤다. 과학사학계에서는 기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냐는 시선을, 기술사학계에서는 과학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냐는 의심을 동시에 받았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낳았고, 경계에 놓인 자아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졌다. 잡종론은 바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민과, 그 안에 있는 끈질긴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에 대한 발견으로 이뤄진 셈이다.

홍 교수는 최근 미니홈피 등 인터넷에서 이뤄지고 있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흥미를 갖고 있다. 다른 세계와의 공유와 소통이라는 네트워크의 기본정신을 위반하고, 아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미니홈피를 분석한 내용이 그의 다음 책이 될 전망이다.

홍 교수가 일찍부터 주목해온 인터넷에 대한 관심은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공저, 창작과비평사, 2001),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책세상, 2002) 같은 책에 잘 드러난다.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무한한 자유만을 강조하는 인터넷 낙관론과, 기존 인간관계와 사회질서의 해체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성만을 강조하는 주장을 비판했고, ‘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은 정보유출과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그는 관심은 학자로서의 전공분야인 근현대 과학기술사 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와 인터넷혁명,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과 예술의 결합 등 다양하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시킨 새로운 가능성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T자형 인간’이 되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다양한 분야를 넓게 알면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은 누구보다 깊게 알 필요가 있죠. 여러 세계를 접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각 분야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지적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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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일삼 기자
  • 사진

    박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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