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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보안기술 양자암호

도청·해킹 원천 봉쇄한다

양자암호는 도청이 불가능한 꿈의 암호로 불린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아직 사람들은 이 기술을 단지 미래형으로만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양자암호기술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오스트리아 빈의 시장은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 방식의 은행 송금시스템으로 빈대학의 짜일링거 교수에게 3천유로(약 4백만원)를 보냈다. 빈 시장은 이 송금시스템을 개발한 짜일링거 교수에게 양자암호연구에 써달라고 이 돈을 기부했던 것이다.

한편 6월 3일에는 양자암호기술이 쓰인 컴퓨터 네트워크가 세계 최초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미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위치한 BBN 테크놀로지와 하버드대 사이의 약 10km 거리에 양자암호기술을 사용하는 Qnet이라는 양자통신망이 개설된 것이다.

Qnet 이전까지의 양자암호 실험은 두 지점 사이에서만 진행됐다. 반면 Qnet은 통신망 상의 여러 통신당사자들 사이에서 양자암호기술을 실험한 것이다. Qnet의 이런 특징은 실용성을 매우 높여준다. 만약 1백명이 양자암호통신을 하기 위해 둘씩 묶으면 양방향 양자암호통신채널이 4천9백50(=100×99/2)개가 필요하지만, Qnet 방식을 이용하면 이것들을 하나의 양자통신망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자암호기술은 이미 실험실에서 벗어나 적용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국방연구원과 원자력연구소 등 우리나라 6개 국가기관이 해킹을 당했다. 이로 인해 국가기밀이 상당량 유출됐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Qnet과 같은 양자통신망은 이같은 일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조만간 핵심적인 보안시스템에는 양자암호기술이 쓰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년 전 양자암호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해도 이런 성공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양자컴퓨터로 위협받는 공개키

1984년 IBM의 베넷 박사와 캐나다 몬트리올대의 브라사드 교수가 양자암호기술을 발명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정도로만 생각됐다. 보통은 이론가들이 제시한 신기한 아이디어를 실험가들이 나서서 실험을 하는데, 이 아이디어는 실험가들에게조차 이목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그래서 이론가인 베넷 박사가 직접 나섰다. 그리고 1989년 세계 최초로 양자암호 실험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기존의 암호전문가들에게는 그렇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기존의 공개키 암호기술이 워낙 든든해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공개키 암호기술은 1970년대 리베스트, 샤미르, 에이들먼, 이 세사람이 발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 앞 글자를 따 RSA라는 보안회사를 차렸는데, 현재도 공개키 암호기술로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공개키 암호기술은 매우 큰 수의 소인수분해를 이용한다. 수십 자릿수의 소수 2개를 곱해 만든 아주 큰 자연수가 공개키가 되는데, 이를 사용해 메시지를 암호문으로 만든다. 이렇게 한번 만들어진 암호문은 처음의 소수를 알아야만 메시지를 변환할 수 있다.

개발자들은 공개키 암호시스템의 보안성을 자신했다. 그래서 1977년 미 과학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자신들이 만든 1백29자릿수의 자연수를 소인수분해하면 1백달러를 주겠다는 현상문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리베스트는 1초에 10억번의 연산을 하는 컴퓨터를 쓰더라도(이런 컴퓨터는 1990년대에나 출현했다), 4경(京=${10}^{16}$)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1994년 4월 2일 이 문제는 전세계 25개국 6백여명의 자원자들이 1천6백여대의 컴퓨터를 동원해 8개월 동안 계산한 끝에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인수분해는 숫자의 자릿수에 거의 지수함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어려운 문제다.

공개키 암호시스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서였다. 1994년 미국의 유명한 통신회사인 AT&T의 피터 쇼어 박사가 양자컴퓨터를 써서(자릿수의 세제곱 정도에 비례하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소인수분해를 할 수 있는 양자알고리즘을 고안해낸 것이었다.

아직은 본격적인 양자컴퓨터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디지털컴퓨터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계산들을 순식간에 해치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아주 어려운 문제’에 보안이 보장되는 공개키 암호시스템은 양자컴퓨터 앞에서 언젠가 무장해제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양자암호기술의 실용화가 현재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동안 양자암호기술이 실용화되는데 전송거리가 걸림돌이었다. 1989년 성공한 양자암호실험에서는 단일광자가 고작 32cm를 날아가서 검출됐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양자암호의 전송거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양자암호기술의 실용화를 향한 경쟁에 불이 붙어 여러 방식의 양자암호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으며 관련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에서 무선 통신 성공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와 도시바가 2003년에 각각 80km, 1백km 광섬유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다. 스위스 제네바대 지생 교수가 세운 벤처기업 id Quantique는 2002년부터 제네바와 로잔 사이의 67km 광섬유를 통한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의 벤처기업 MagiQ Technology도 2004년 7월 현재 1백20km 광섬유 양자암호통신을 할 수 있는 나바호라는 제품을 팔고 있다. 나바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암호통신에 인디언 언어를 활용한 미국 인디언부족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양자암호에 쓰이는 단일광자가 광섬유를 통해서 흡수되거나 상태가 변하지 않고 전달될 수 있는 최대 거리가 약 1백20km에 달한다고 한다. 거리상으로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셈이다. 하지만 이 정도 거리는 대도시 내부 또는 가까운 도시 사이의 양자암호통신이 가능하다.

양자암호기술을 광섬유통신뿐 아니라 위성통신에도 적용하려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현재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연구하고 있는 래러티 교수팀은 2001년 23.4km 떨어진 알프스 산맥의 두 봉우리 사이에서 무선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다.

또한 원자탄을 개발한 곳으로 유명한 미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의 휴즈 박사팀은 2002년 대낮에 10km 무선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했다. 이 실험은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에 대기 중에서 성공했다는데 대단한 의미가 있다.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엄청나게 많은 광자가 대기 중에서 산란돼 흩어지면서 양자암호통신에 쓰이는 광자들과 뒤섞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성공은 저궤도 위성암호통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광섬유는 광자를 정확히 원하는 곳까지 전해주는 통로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선 양자암호실험에서는 수십km 떨어진 두 지점이 서로를 정확히 겨냥해야 하고 광자가 대기 중의 공기분자와 충돌해 사라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호주도 2002년부터 국가차원의 양자암호통신연구에 무선 양자암호통신을 포함시키고 있다. 위성양자암호통신이 가능하게 되면 광섬유(유선) 양자암호통신이 가진 거리 제한을 넘어서 전지구 양자암호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가안보국 연구원 학회 파견

이처럼 양자암호가 기술적으로 빠른 진보를 거두고 있는데는 그만큼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기술적 진보를 재촉하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양자컴퓨터의 등장으로 양자암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 국가안보국(NSA)은 수많은 음모론의 중심에 서있는 곳이다. 음모론 가운데 하나가 에셜론이라는 프로젝터로 세계의 모든 통신을 엿듣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공개키 암호시스템으로 암호문을 엿듣는다고 해보자. 현재는 이 메시지를 해독할 수는 없지만 이 암호문들을 계속 모아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머지않은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만들어지면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져서는 안될 과거의 비밀들이 밝혀지는 것이 시간문제인 것이다.

요즘 NSA는 양자정보 관련 국제학회에 자신들의 연구원을 한두사람씩 파견하고 있다. 미국의 통신보안을 위해 양자암호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남들의 공개키 암호통신을 해독하기 위해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이 NSA의 공공연한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공개키 암호시스템의 메카 RSA 연구소의 연구책임자인 칼리스키 박사는 양자암호기술을 “암호기술의 주요한 패러다임 변혁”이라면서 “기존암호기술과 양자암호기술의 결합은 더욱 안전한 통신체계를 실현하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매년 약 5천만달러 규모의 양자암호관련 연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매년 양자암호 및 양자정보관련 국제학회가 둘셋 이상 열리고 있다. 또한 물리학자들뿐 아니라 컴퓨터 및 정보전공의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얼마되지 않는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만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통신사업 분야의 기업적인 투자는 전무한 형편이어서 현재의 정보통신강국이라는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또한 우리나라 정보보안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정보의 국제경쟁에서 정보보안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양자암호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양자암호기술은 가장 기초적인 양자정보기술로서, 앞으로 양자컴퓨터를 비롯한 다른 양자정보기술의 토대가 된다. 양자정보과학분야의 연구는 아직 역사가 길지 않아서 우리가 얻을 기회도 많이 있어 보인다.

양자암호가 도청이 불가능한 이유는?
 
최근 양자암호기술은 무선인 위성통신에도 적용하려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무선 양자암호기술이 실용화되면 전지구 차원의 양자암호통신망이 구축될 수 있다.

양자암호기술은 20세기에 출현한 양자역학의 핵심적인 원리를 이용한다. 이 점 때문에 암호에 쓰이는 양자정보는 기존의 디지털정보와 차이가 있다.

디지털정보는 0과 1로 나타내지는데 비해, 양자정보는 0과 1 뿐만 아니라 0과 1이 겹쳐진 상태도 나타낼 수 있다. 이같은 양자정보를 양자비트 또는 큐비트라고 한다. 또한 디지털정보는 얼마든지 복사할 수 있는 반면, 양자정보는 그렇지 않다. 만약 양자정보의 복사가 가능하면 현대물리학의 양대축, 즉 불확정성이론을 비롯한 양자물리학과 빛보다 빠른 통신이 불가능하다는 상대성이론이 무너진다.

양자정보의 또다른 특징은 측정이 비가역적이라는 점이다. 즉 일단 측정을 하면 양자정보의 상태는 변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원래의 상태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어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양자정보의 이같은 특성이 도청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양자통신채널에서 양자정보를 도청하는 방법으로 2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도청의 한 방법으로 양자통신채널을 지나가는 양자정보를 복사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정보의 복사 불가능성 덕분에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다.

또다른 방법은 지나가는 양자정보를 살짝 끄집어내어 측정해보고 다시 양자통신채널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측정 전과 후의 양자상태가 달라지므로 정식 통신당사자들이 보낸 상태와 받은 상태를 일부 비교해보면 도청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양자암호는 어떻게 이뤄지나?
 
양자암호는 어떻게 이뤄지나?

01 갑돌이가 0 또는 1의 난수열을 준비한다. 0이면 90°(수직), 1이면 45°로 단일광자를 편광시켜 갑순이에게 보낸다.
02 갑순이도 0 또는 1의 난수열을 준비한다. 0이면 1백35°, 1이면 0° 방향의 편광필터로 갑돌이가 보내온 단일광자를 통과시켜본다.
03 갑돌이의 단일광자의 편광방향과 갑순이의 편광필터의 방향이 90°를 이루면 단일광자가 편광필터를 통과하지 못한다(N). 만약 45°를 이루면 50%의 확률로 통과한다(Y 또는 N). 따라서 단일광자가 통과한 경우(Y)는 단일광자의 편광방향과 편광필터의 방향이 45°를 이룰 때다. 즉 갑돌이와 갑순이의 난수가 같은 경우뿐이다.
04 갑순이는 갑돌이에게 몇번째 단일광자가 필터를 통과했다고 알려준다. 두 사람은 편광방향과 필터방향을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통과한 단일광자에 해당하는 난수가 같다는 것을 안다. 두 사람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같다고 여겨지는 난수들을 일회용난수표로 사용한다. 혹시 도청이 있는지 또는 통신채널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같다고 여겨지는 난수들 중 일부를 비교해본다. 이때 두 사람의 난수가 다른 경우가 있으면 도청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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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재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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