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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다리·똘똘이 유전자의 허황된 약속

유전정보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P씨(38)는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유전자 검사 보고서를 읽고서는 눈앞이 아득해옴을 느꼈다. 1주일 전 P씨는 막내딸의 건강과 적성을 알기 위해 사설 유전자 검사업체에 의뢰해 딸아이의 유전자를 검사했다. 장남인 오빠와는 달리 막내딸은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딸은 학교 생활에도 적응을 잘 못했고 성적도 부진했다. 막내딸은 P씨 부부의 걱정거리였던 것이다.

부부는 의논 끝에 딸아이의 유전자를 검사해보기로 했다. 남편은 유전자 검사의 효용성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부인은 취업 경쟁이 날로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적성과 특기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좋다고 고집했다. 남편은 결국 부인의 “안전하다면 뭐가 문제겠어요?”라는 마지막 한마디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 결과를 받아든 부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딸이 이렇게 문제가 있었나?’하는 걱정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막연함만이 P씨 부부를 바라보는 딸아이의 눈동자에 비춰 되돌아올 뿐이었다.

질병은 물론 인성까지 검사


최근 개인의 유전자를 검사해 특정 유전병에 걸릴 확률을 알려주는 유전 자 검사가 유행이다. 특히 이런 유전자 검사는 대상이 학생일 경우 인성 과 지능, 체력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선전한다.


최근 개인의 유전자를 검사해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은 물론 적성까지 알아보는 유전자 검사가 유행하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관한다는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 일반인들도 유전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 업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유전자 검사’ 또는 ‘DNA 검사’라는 단어를 조사해보면 수천개가 넘는 사이트가 검색됨을 알 수 있다. 비록 상당수의 인터넷 주소가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중복된 사이트가 포함됐다 하더라도 매우 많은 수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이들 사이트는 신문이나 잡지, TV보다는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 검사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다. 세민연구소의 강경미 연구원은 “이런 사이트들은 각종 시민단체나 인권단체에서 제기하는 유전자 검사의 오·남용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인터넷을 주로 이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검사 결과의 신빙성에 상관없이 유전자 검사 자체에 흥미와 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많은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머리카락 하나로 한 개인의 인성과 적성, 그리고 질병 유무까지 점칠 수 있다는 유전자 검사는 과연 믿을만한 것일까. 검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며, 혹시 검사를 통해 나의 유전정보가 함부로 유출되는 것은 아닐까.

과장과 아전인수식의 해석

대부분의 유전자 검사 업체는 한번의 테스트로 질병 관련 유전자뿐 아니라 개인의 인성과 적성까지 검사해주고 있다. 특히 대상이 학생이라면 인성과 적성 검사는 ‘학습관련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빠지지 않는다. 비용은 어떤 상품을 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20-30만원 선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이나 체모, 타액을 검사 업체로 보내면 결과를 1주일 내에 받아볼 수 있다.

검사 결과는 어떨까. 대부분의 사설 업체는 질병관련 유전자 검사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보고서를 보낸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얘기다. 보고서에는 특정 질병과 관련돼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들어있다.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연구한 결과와 그동안 학술지에 소개된 내용, 권위 있는 과학자들의 코멘트 등으로 구성돼 있는 설명서는 누가 봐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말 특정 유전자를 검사함으로써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특정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

가톨릭대 의대 황수연 교수는 “이들의 결과는 한마디로 과장과 ‘아전인수’일 뿐”이라며 “유전병의 대부분이 특정 유전자 이상으로 발병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질병은 그렇게 간단하게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유전자 테스트에 포함되는 치매가 대표적 예다. 치매는 뇌 속에 섬유질의 노폐물이 쌓이면서 혈액 순환을 막고 결국 뇌 조직까지 그 기능을 잃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뇌 속에 딱딱하게 굳은 섬유질의 노폐물은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주성분인데, 이들의 원래 기능은 신경 세포를 보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이들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뇌 속의 비정상적인 단백질 침착에 관여하는 여러 인자들이 발견됐는데, ‘아포리포프로틴 E’(Apo E)도 그 중 하나다. Apo E의 주된 업무는 뇌 조직 내의 지방질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베타 아밀로이드와 함께 딱딱한 플라크를 형성한다.

대부분 유전자 검사 업체의 치매 테스트는 바로 이 Apo E 유전자로 이뤄지고 있다. 정상적인 Apo E에 비해 ‘치매성’ Apo E는 유전자 패턴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즉 유전자 검사로 비정상적인 Apo E 유전자 패턴이 발견되면 그 개인은 ‘잠정적 치매 환자’가 되는 것이다.

유전자 이상으로 치매 예측은 무리


치매에 대한 대부분의 유전자 검사는 전체 치매 환자의 10%도 안되 는‘가족성 치매’에 대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치매는 여러가 지 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인만큼 좀더 정밀한 검사가 필 요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황 교수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치매는 크게 유전적 요인에 의한 ‘가족성 치매’와 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산발성 치매’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Apo E 유전자가 유발하는 가족성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의 10%도 채 안된다. 대부분 치매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발성 치매에 속한다.

더욱이 가족성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인자에는 Apo E 유전자 외에도 매우 많은 수의 인자들이 알려져 있다.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직접 생산하는 베타 아밀로이드 유전자가 대표적이며, ‘프리시닐린 1 & 2 유전자’도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생성량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Apo E 유전자가 비정상적이더라도 이들 유전자가 정상이면 치매가 발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유전자 검사 업체는 이들 유전자에 대해서는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일까. 황 교수는 “다른 유전자들은 Apo E 유전자에 비해 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리시닐린 1 & 2 유전자나 베타 아밀로이드 유전자는 정상과 비정상 유전자 사이에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 사이의 정확한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정밀한 검사장비가 필요하므로 대부분 소규모의 연구 설비를 갖춘 유전자 검사 업체로서는 무리다.

황 교수는 “치매는 매우 복합적인 원인이 얽혀 발생하므로 유전자 이상으로 그 발병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치매라도 Apo E 유전자 외에 다양한 유전인자를 두루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한국에서의 유전 정보 오·남용 사례를 연구한 서울대 생물교육과의 김희백 교수는 “유전자 검사 업체의 검사 대상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대다수 업체는 치매나 골다공증의 경우처럼 특정 질병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단일 유전자를 조사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천식과 폐암, 유방암, 고혈압, 당뇨 등의 경우가 그러했다. 예를 들어 폐암의 경우 ‘CYP1A1’ 유전자만 조사한 뒤 폐암 발병 여부를 예측하는 식이다.

김 교수는 “이같은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며 “검사 대상 질병의 대부분이 다양한 유전자와 개인마다 특수한 환경, 생활 습관 등이 함께 어우러져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단일 유전자의 이상 유무로 병의 발생을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지적한다.

똘똘이 유전자와 모험심 유전자

사실 생물학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Apo E 유전자가 이상이 있다고 해서 당장 치매에 걸리지는 않을까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 단일 유전자(BRCA 1) 변이로 발생한다고 알려진 유방암의 경우도 발병율이 최대 50%다. 바꿔 말하면 비정상적인 BRCA 1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유방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 치매에 관련된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단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조금 높을 뿐이며, 이제부터라도 치매 예방을 위해 자신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좋은 계기로 삼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조사 대상이 질병 유전자가 아니라 학습 유전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 교수는 “질병 관련 유전자 검사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참고사항을 알려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학습관련 유전자는 오용될 소지가 매우 많다”고 말한다. 학습관련 유전자 검사는 주로 학생을 대상으로, 학습 능력이나 체력, 심지어 IQ까지 유전자로 검사하는 것을 말한다.

학습관련 유전자로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는 ACE 유전자와 DRD 2 & 4 유전자가 있다. 이들은 주로 ‘지능 유전자’나 ‘체력 유전자’ ‘똘똘이 유전자’ ‘엄살쟁이 유전자’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ACE 유전자는 근육세포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기능이 밝혀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업체들은 이 유전자의 이상 여부를 판단해 검사 대상자의 체력, 지구력을 판단한다. 심지어 업체 자체의 ‘해석’을 붙이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는데, 모 유전자 검사 업체에서는 ‘ACE 유전자 정상⇒ 지구력이 강하다⇒ 끈기가 있으며 학습에도 적극적이다⇒ 남보다 잘 하려는 노력형이며 리더십도 강하다⇒ 하지만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성향을 보인다’라는 자체 해석까지 하고 있다.

한편 DRD 2 & 4 유전자는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도파민은 약물에 대한 감수성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이 수용체에 이상이 생기면 약물 중독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도파민 수용체 형성에 미치는 DRD 2 & 4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업체는 이 유전자의 이상 여부를 판단해 술, 담배, 마약 등 유흥에 빠지기 쉬운 성격인지 여부를 검사하며, 심지어 모험심과 지적 호기심, 충동성, 흥분성 등을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테스트들은 유전병 검사와 달리 대상 형질과의 과학적 상관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심지어 상관관계가 없다는 보고가 제시된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예가 ‘롱다리 유전자’다. 이 유전자의 변이형은 아주 드문 성장 장애를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다리 유전자가 마치 키가 커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오도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기능에 지장없는 미미한 변화만 검사

유전자 검사는 결과에 대한 업체 자체의 주관적 해석도 문제이지만, 검사 자체의 유효성에도 많은 의구심이 있다. 황수연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대부분 사설 유전자 검사 업체는 대상 유전자의 돌연변이(mutation)가 아니라 다형성(polymorphism)을 조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란 해당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이 기능을 못하거나 아예 단백질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유전자에 심각한 변화가 생긴 경우를 말한다. 이에 비해 다형성은 만들어진 단백질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높거나 낮은 기능을 나타나게 하는 정도의 미미한 유전자 변화를 뜻한다.

만약 해당 단백질이 아예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될 정도로 심각한 변화가 있다면 이는 유전자 검사 전에도 그 증세가 나타나 이미 병원 등에서 치료받고 있거나, 검사 결과 없이도 어떤 유전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사설 업체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업체는 검사 대상 유전자의 변이형들을 돌연변이가 아니라 다형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황 교수는 “따라서 유전자 검사로 나타난 특정 유전자 변이형이 실제 질병으로 이어질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 검사가 어떤 효용성을 갖겠느냐는 말이다.

믿을 수 없는 검사 방법


대부분의 사설 유전자 검사업체는 제한효소를 이용해 해당 유전자를 자른 다 음, 이들의 상대적 이동거리를 정상 유전자와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 다. 하지만 문제는 이 방법이 적용되는 유전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유전자 검사의 효용성도 문제지만 검사 방법은 더 큰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검사 업체는 검사 방법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다. 어차피 전문 지식이 없는 의뢰자에게 이를 설명해봤자 아무런 소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검사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떨까.

황 교수는 “유전자 검사 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 업체는 RFLP 조사방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한다. ‘RFLP’는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자르는 제한효소를 이용해 대상 유전자를 자른 다음, 잘린 유전자 조각들을 전기영동 방법을 이용해 상대적인 이동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만약 대상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정상 유전자와 다르다면 제한효소에 의해 잘리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전자 조각은 정상 유전자 조각과 크기에서 다를 것이며, 그 결과 전기영동에서 이동거리가 달라진다.

언뜻 들어서는 그럴듯해 보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한효소에 잘리는 조사 대상 유전자 조각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황 교수는 “조사에 의하면 현재 시행되는 검사들 중에는 RFLP 방법으로 차이를 볼 수 없는 유전자들이 있다”며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검사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황 교수는 RFLP 방법으로 구별할 수 없는 유전자는 좀더 분별력이 좋은 ‘SSCP’라는 방법을 써야 하나, 사설 업체에서 이 방법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SSCP는 제한효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가닥으로 된 유전자를 단일가닥으로 푸는 방법을 이용한다. 단일가닥으로 풀린 유전자는 이내 자체적으로 결합해 3차원 구조를 이룬다.

이 3차원 구조는 염기서열에 따라 독특한 구조를 갖는데, 염기서열이 다른 유전자는 서로 다른 3차원 구조를 만든다. 이 차이에 따라 전기영동에서 이동거리가 달라지는 점을 이용하면 대상 유전자가 정상 유전자와 같은지 또는 다른지를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SSCP 방법은 전문적인 실험실에서조차 오차 범위가 커, 최소한 10번 정도의 실험을 거쳐 결과를 발표하는 방법이다. 황 교수는 “학계에서는 이렇게 발표된 결과도 오차범위 내에서만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SSCP는 매우 전문적이고 숙련된 테크닉이 필요한 고난도의 실험방법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사설 업체에서 SSCP 방법으로 대상 유전자를 조사했더라도 그 결과의 신빙성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몇몇 유전자는 RFLP나 SSCP 방법으로도 차이점을 알아내기 어렵다. 이 경우는 대상 DNA의 염기서열을 직접 판독(시퀀싱)해야 한다. 만약 대상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직접 시퀀싱했다면 그 결과는 매우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사설 업체에서 고가의 염기서열 분석장치를 갖추고 대상 DNA를 직접 시퀀싱하는지는 의문이라고 황 교수는 지적한다.

조기 발견과 예방 차원에서만 이용

인류가 걸릴 수 있는 수많은 질병들 중 현재 그 발병에 관련된 유전자가 밝혀져 있고, 그 유전적 원인을 검사하는 방법이 개발된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발병 원인이 단일 유전자로 밝혀져 있어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헌팅턴씨 병의 경우도 해당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김희백 교수는 “아직 생명과학은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유전자 테스트 결과는 단지 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 차원으로만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만약 유전자 테스트의 결과를 근거로 한 개인의 건강 또는 품성을 미리 단정짓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떤 유전자를 가졌느냐에 따라 개인의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영화 ‘가타카’가 그리는 암울한 미래처럼 말이다.

생명과학 부작용 지킴이 ELSI 연구

지난 5월 24일 서울의 세브란스빌딩에서는 ‘유전정보의 오·남용 사례와 방지책’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서울대 생물교육학과의 김희백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그동안 한국에서의 유전자 검사 실태와 유전정보에 따른 보험 등에서의 차별대우 문제점 등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날의 발표는 ‘생명과학과 ELSI 연구’ 심포지엄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ELSI는 ‘윤리와 법, 그리고 사회적 함의’(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의 약자로 생명과학이 제기하는 여러 사회적·법적 문제점에 대한 연구를 의미한다.

최근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됨에 따라 인류는 유전정보를 이용해 인간의 복지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복제와 유전자조작식품, 개인 유전정보의 무분별한 유출과 오용 등 여러가지 윤리·제도적 문제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생명과학의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연구가 바로 ELSI다.

미국 등 생명과학 선진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90년부터 ELSI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 국립보건원(NIH)과 에너지성(DOE)은 각각 연구비 총액의 5%와 3%를 할애해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와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대응책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ELSI 연구는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단 중 하나인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KAIST 사회학과 윤정로 교수는 “지금까지 ELSI 연구의 1단계가 마무리됐다”며 “우리나라 생명공학이 세계적 수준인 만큼 이에 걸맞는 ‘ELSI’의 위상을 위해 앞으로 좀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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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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