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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싶다. 안그러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제 이 지겨운 입시지옥에서 탈출하려나 하고 애태우던 때가 얼마 전 같이 느껴진다. 이제 3학년이라는 상급학년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이 새삼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대학이란 문에 첫 발을 들여 놓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김심과 기대가 나를 수다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하던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장래와 나의 전공에 묻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한채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 위에는 상당한 후회와 고민만이 남았다. 앞낲에 대한 불안감에 젖어 자신을 주체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홍역을 앓듯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과학자가 되기를 결심하면서부터 더욱 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올바른 과학자 상을 스스로 세우지 못했지 때문이리라.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한가하게(?) 생각할 틈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보고 듣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또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서 자리잡고 있는 비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16비트 XT는 간단히 구입할 수 있고 스스로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학교 정규 교과목에 컴퓨터 교육과정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 더욱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 컴퓨터가 쓰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는 사실만 봐도 우리 생활이 얼마나 급속도롤 변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3학년 신찬수 학생


●- 모형 글라이더를 만들면서

여기서 잠깐 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해 보자.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도 과학수업은 실험과 관찰을 통한 이해보다는 이론의 암기 위주였다. 실험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물리 생물수업을 마쳤던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학교에서 모형 글라이더조립대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직접 모형 글라이더를 만들면서 '비행기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듯 감탄을 연발했다. 완성된 비행기를 날리면서 맛본 희열감이란···빙글 빙글 돌다 땅에 떨어지면 크게 실망도 했더. 마침내 완벽한(?) 나의 글라이더가 하늘을 멋지게 나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가슴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이러한 소박한 감정들이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하고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한 고귀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특별히 뛰어난 사람만이 하는줄 알고 그저 신기하게만 여기던 생각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의 과학수업은 보이지 않는 압박감과 함께 입시위주의 암기과목으로 전락했다.

어느 정도 과학에 대해 알게 되면서 과학은 나에게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특히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고 좋아했던 과목은 생물과목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되는 것은 너무도 흥미로왔고 한번 깊게 연구해 볼만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대학은 계산통계학과에 진학했다. 계산통계학(Computer Science and Statistics)은 3학년 때 계산학과 통계학으로 나누어지는데 지금 나는 계산학을 전공하고 있다. 내가 계산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입학할 당시의 막연한 호감 때문이라기 보다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많은 매력을 축적시켰기 때문이다.

계산학은 말 그대로 컴퓨터 사이언스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컴퓨터 엔지니어링(commputer engineering)과는 약간의 챠이가 있는 것이다. 컴퓨터 사이언스는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한 연구보다 전체적인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계산학에서 주로 취급하는 분야를 열거하면 자료구조론 계산기구성론 컴파일러 운영조직론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래밍언어론, 인공지능개론 등이 있다. 바로 이 '사이언스'라는 매력이 계산학을 선택한 주된 이유가 된 것이다.

통계학은 계산학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교과과정인데 타대학의 응용통계학과와는 다르다. 우리 대학에서는 순수 통계 분야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3, 4학년 통계학 과정에서는 주로 수리통계학 희귀분석 표본조사론 시계열분석 수치해석 등을 공부한다.

●- 컴퓨터과학자의 올바른 상

현대사회는 말 그대로 '정보홍수의 시대'이다. 매일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져 이를 끊임없이 분류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계속된다. 여기서 컴퓨터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컴퓨터의 기능을 높이러면 '컴퓨터의 기억소자를 조그마한 공간에 얼마만큼 많이 집적시킬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앞세운 하드웨어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소프트웨어의 문제이다. 정보의 처리 방법과 그 정보의 운영 문제 그리고 이용 문제 등 전반적이고 충체적인 운영체계(OS : Operating System)의 개발이 최대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쓰이느 대표적인 OS로는 각 금융기관에서 사용되는 온라인 시스팀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요즘 활발히 진행되는 국내 전산처리 종합정보망(부가가치통신망 : VAN) 또한 확장된 시스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단순한 조합으로는 정보처리를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정보는 반드시 재사용되며 정치 경제 문화적인 평가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정보에 대한 처리결과를 올바르게 검증하는 통계학적 추론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통계학적 지식이 요구되는데 장차 그 필요성이 점증될 전망이다.

이제 컴퓨터를 연구하는 '컴퓨터 과학자'의 올바른 상을 그려 본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생가하고 지향해온 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은 컴퓨터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컴퓨터는 사람이 프로그램화시키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때문에 컴퓨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컴퓨터와 친숙해지면서 끊임없이 컴퓨터를 개조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생활속에서 컴퓨터를 조력자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컴퓨터 교육은 대학교는 물론이고 초·중·고료로 확산, 약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그러나 질적이로는 제자리 걸음이다. 단순히 컴퓨터의 기능이해 정도에 그치는 실정인 것이다. 장차는 컴퓨터의 구조나 운영체계등에 관한 체계적 교육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특히 생활속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컴퓨터를 연구하는 사람이 기계에 매몰되는 경향도 경계해야 한다. 또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한국 사회, 나아가서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다. 또 현재 컴퓨터 과학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동적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단독적이고 고립된 컴퓨터과학이 되서는 안된다. 다른 학문분야들과 상호 보완하면서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컴퓨터과학의 위치를 재점검하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예로 현재 거론되고 있는 문제점 한 가지를 들어보기로 하자.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 최근호에 컴퓨터에 관한 몇가지 문제를 제기한 논문이 발표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 책은 인공지능(AI : Artificial Intelligence)에 관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에 인공지능을 부여한 이른바 '전문가 시스팀'이 개인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또 논리적 추론과정의 실수로 핵전쟁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고 겁을 준다.

둘다 일리가 있다. 입력지식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증세를 오판, 의사와 오진을 유도할 수 있다. 또 전세계의 정보 통신망을 장악한 컴퓨터의 실수로 인류에게 큰 재앙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돌발적 상황에서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프로그램대로 고지식하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크나 큰 과학기술적 사명과 시대적 의무가 나를 무겁게 한다. 이 짐들이 나를 재촉, 앞으로 더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와 우리 주위의 모든 이에게 말하고 싶다. 좀더 좋은 사회를 위해 과학은 필수불가결하며 과학 없이는 아무 것도 해결 할 수 없다고. 어떠한 분야에서 일하게 될지라도 우리 사회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인격적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 본다.

198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하성주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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