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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구겨넣은 우주의 검은구멍

18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제안됐던 '빛이 탈출할 수 없는 천체'는 2백여년이 지난 후인 1969년 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에 의해 '블랙홀'이라는 공식명칭을 얻게 됐다. 이름만큼이나 신비에 쌓여 있던 블랙홀은 천문학자들의 끊임없는 탐구와 관측기술의 발달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블랙홀은 더 이상 우주공간의 마법사가 아니다. 어쩌면 그 속에 물질의 궁극적인 성질이나 힘의 통일이론을 풀 수 있는 열쇠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슈바르츠실트의 블랙홀^사건의 지평선은 탈출속도가 광속이 되는 지점이다. 블랙홀의 중심에서 사건의 지평선까지의 거리를 슈바르츠실트 반경이라 하며 이 거리가 블랙홀의 크기를 나타낸다. 블랙홀의 질량이 많을수록 슈바르츠실트 반경도 커진다.


빛의 감옥

운동경기 중에 가장 덩치가 크고 힘든 상대와 겨뤄야 되는 종목은 역도가 아닐까?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려야 하는 역도는 지구 중력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힘차게 들어올린 바벨을 온몸으로 버티며 서있는 역도선수의 찡그린 얼굴에서 지구와 바벨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을 느낄 수 있다. 중력이란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려는 힘이다. 역도 선수는 잘 단련된 근육으로 지구와 역기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을 버티고 있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이처럼 지구와의 인력에 서로 이끌리고 있지만, 그 상황에 너무 익숙해 있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중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힘껏 하늘 위로 던져 보자. 연필이든, 지우개든, 어느 높이에 이른 후에는 다시 떨어지고 만다. 더 힘껏 던지더라도 올라가는 높이만 조금 늘어날 뿐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알다시피 던진 물체와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 때문이다. 이제 어깨 힘이 아주 강해서 마음대로 던지는 속도를 올릴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고 우주 공간으로 나가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던져야 할까? 초속 11km를 넘기면 가능하다(박찬호 선수가 던지는 야구공의 속도보다 2백50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이 속도가 바로 지구 중력을 이겨낼 수 있는 탈출 속도가 된다.

어떤 천체에서의 탈출속도는 그 천체의 질량이 크면 클수록, 같은 질량이라면 크기가 작을수록 커진다. 목성에서의 탈출 속도는 초속 60km로 지구의 약 5배이고, 태양 표면에서 태양을 탈출하기 위한 로켓은 초속 6백18km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큰 질량을 가진 천체를 작게 압축해 매우 작은 공간 속에 구겨 넣으면 탈출속도는 커진다. 만약 어떤 커다란 천체를 압축해서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km를 넘을 때까지 압축하면 빛은 자신의 속도로는 도저히 이 천체 밖으로 뛰쳐나올 수 없다. 이렇게 빛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물질이 엄청나게 압축된 천체를 가리켜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SF 소설 속에 가끔 등장하는 블랙홀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괴물에 비유되곤 한다. 만약 태양이 블랙홀이 되면 주위를 도는 행성들이 모두 빨려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블랙홀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는 그것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먹어치운다는 생각이다. 어떤 천체가 블랙홀이 되더라도 블랙홀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효과들은 블랙홀에 아주 가까이 접근했을 때의 이야기이며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가 받는 중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M87^허블우주망원경은 이 은하의 중심핵 부근에서 오른쪽 그림과 같은 나선형의 뜨거운 가스 원반을 발견했다. 이 원반을 이루는 물질은 시속 2백만km 정도의 속도로 회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높은 궤도 속도는 태양 질량의 30억배 가량 되는 물질이 원반에 집중돼 있음을 뜻한다. 작은 공간에 이만큼 엄청난 질량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중심에 블랙홀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질량이 큰 별의 최후

별들은 긴 삶의 여정을 마치고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맞이한다. 미래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생명체와 달리 별은 불타는 동안 자신이 어떻게 죽어갈 것인지를 미리 알고 있다. 별의 질량이 그것을 말해준다.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별들은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백색왜성이 된다. 그러나 죽기 직전 별의 질량이 태양의 1.4배 이상인 별은 중심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계속 일어나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중심핵을 이루며 물질을 끌어당긴다. 고밀도의 중심핵에는 더욱 강한 중력이 작용해 크기는 다시 더 줄어들게 된다. 중력 수축이 더욱 급격하게 일어나면 바깥의 가벼운 물질들이 중심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 이 때 충격파를 발생시키고 이로 인해 별의 바깥 층은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진다. 이것이 ‘초신성 폭발’이다.

한편 중심핵에 있던 원자들은 급격한 수축작용으로 인해 원자들끼리 서로 부딪히고 뭉그러지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수축과정이 더욱 진행되면 원자를 이루고 있던 원자핵과 전자까지 한데 뭉쳐 마침내 ‘중성자별’이 탄생한다. 중성자로만 만들어진 별이 가질 수 있는 질량의 한계는 태양의 3배 정도이다. 만약 수축하는 중심핵이 이보다 작은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중성자별은 안정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중심핵의 질량이 태양의 3배를 넘게 되면 결국 또다시 수축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별 전체의 물질들이 한없이 수축하게 된다. 이것을 ‘중력붕괴’라고 한다.

중력붕괴가 일어나도 중력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것은 물질이 차지하는 공간만 없어졌을 뿐 원래 물질이 가지고 있던 질량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중력붕괴를 일으키고 난 별은 비로소 ‘블랙홀’이 된다.

볼 수 있는 블랙홀

빛마저 가두어버린 블랙홀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블랙홀에서 나오려는 빛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밖으로 나올 수가 없고, 블랙홀을 비추기 위해 들어갔던 빛 또한 엄청난 중력에 붙잡히게 되므로 인간의 눈으로 블랙홀을 찾아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지구 근처에 블랙홀이 있다면 강한 중력의 영향을 감지해 그 존재를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먼 우주에 있어 희미해진 중력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블랙홀에서는 아무 것도 나올 수 없지만, 주위의 물질들이 빨려 들어갈 때 구조신호를 보내오곤 한다. 이 구조신호가 바로 ‘X선’이다.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들어 갈 때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그로 인해 굉장한 충격파가 발생하고 1억도 이상으로 뜨거워질 수 있다. 이렇게 뜨거운 물질은 X선의 형태로 복사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1965년 백조자리의 한 별에서 X선이 발견됐다. 처음에는 모두들 이 X선이 중성자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X선의 세기가 일정한 패턴을 갖는 중성자별과 달리 이곳의 X선은 불규칙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따라서 ‘백조자리 X-1’로 이름지어진 이 천체가 블랙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낳았다. 이것은 우리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X선원의 하나로 약 8천광년 거리에 있다. 그 뒤의 관측을 통해 같은 자리에서 ‘HDE-226868’이라는 태양 질량의 약 30배에 달하는 초거성이 발견됐고, 이 별에서 흘러나오는 고온의 가스가 약 1천만km 떨어져 공전하고 있는 물체로 빨려들어가고 있음이 확인됐다.

아인슈타인 효과

블랙홀에서 보듯이 중력은 빛도 휘게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태양도 커다란 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을 지나는 빛을 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아인슈타인 효과'라고 한다. 태양에 의해 휘는 별빛을 관찰하려면 태양 근처에 있는 별의 위치를 조사해 원래 별의 위치와 차이를 구하면 된다. 하지만 태양 근처의 별빛은 강한 태양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므로 개기일식을 이용해야 했다. 1919년 5월 29일 영국은 개기일식에 맞추어 아프리카와 브라질에 원정대를 파견해 개기일식 중에 태양 근처의 별을 찍는데 성공했다. 관측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별의 위치가 달라졌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태양의 중력은 공간을 휘게 만들고 별빛 역시 휜 공간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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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동훈 아마추어 천문가
  • 김지현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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