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바닷길은 열릴까. 1994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도버 해협 밑바닥을 관통하는 채널터널이 개통되면서 영국이 유럽 대륙에 연결돼 글자 그대로 ‘유로 공동체’가 실현됐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동해 밑바닥을 관통하는 해저터널이 개통돼 한국과 중국, 일본을 잇는 ‘아시아 공동체’ 가 실현될 수 있을까.
구상 기간만 70년
한일터널, 일본식으로 니칸(日韓)터널로 불리는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구상은 1939년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섬나라 일본이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일터널이 교두보 역할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심화되면서 일본은 더이상 한일터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
40여년 후 일본에서는 다시 한번 한일터널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도 일본에서 유럽 대륙에 이르는 긴 구간을 연결하는 노선의 일부로 한일터널이 제시됐다. 이후 1980년대 일본에서는 해당 지역의 육상 시추, 해협의 음파 탐사 등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지면서 한일터널 연구가 큰 활기를 띠었다.
반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소극적인 자세였다. 1983년 한일터널연구회가 설립된 후 3차례에 걸쳐 일본과 한일터널에 대한 기술교류회를 가졌지만 주로 일본 측의 조사 결과를 교류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한일터널에 대한 실질적인 검토 결과와 구체적인 제안들은 일본 측의 구상이다.
그렇다면 일본 측의 구상에 대해 국내 터널 전문가들이 예상한 한일터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 1 어떤 경로를 지나게 될 것인가?
현재 한일터널의 노선으로 3개 안이 집중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터널의 깊이에 따라 해저 아래 약 1천m, 3백m, 그리고 50m 깊이를 통과한다. 공통적으로 한국의 거제도와 일본의 쓰시마섬, 이키섬을 지난다. 해협으로 보면 한국에서 일본까지 대한해협, 쓰시마해협, 이키해협 아래를 거친다.
여기서 노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해당 지역의 지질 상태다. 그렇다면 한일터널이 지나게 될 대한해협, 쓰시마해협, 이키해협의 해저 지질 환경은 어떨까.
우선 세 해협의 수심은 별 문제가 없다. 수심이 깊을수록 수압이 높아지기 때문에 수심이 얕을수록 터널 굴착에 유리하다. 이키해협은 전역이 수심 70m 이하고, 쓰시마 해협도 가장 깊은 수심이 1백35m로 전해역이 대륙붕에 속한다. 대한해협의 제일 깊은 곳은 수심이 2백30m 가량 돼 다소 깊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터널 굴착에 별 무리가 없다.
세 해협의 해저 지반도 양호한 조건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신희순 박사(지반안전연구부장)는 “일반적인 터널 시공 기준에서 볼 때 세 해협의 지반조건이 시공에 적합하다”고 밝혔다.
쓰시마해협 주변 지반은 주로 퇴적암과 화성암으로 이뤄져 있는데 강도가 단단하고 균열이 발달하지 않아 터널 굴착에 유리한 조건이다. 이키해협 주변 역시 지표부의 약 90%가 화산이 폭발해 생성된 현무암과 용암으로 덮여있어 지반이 비교적 단단한 편이다.
문제는 대한해협이다. 대한해협의 경우 40km 가량의 구간에서 두께 4백m 정도의 지층이 아직 암석화가 되지 않아 이키해협과 쓰시마해협의 지질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 하지만 신 박사는 기술상 보강이 가능하기 때문에 터널 굴착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그는 현재 검토 중인 3개 노선 모두 한일터널의 노선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추후 최종 노선을 결정하기 위해서 단층대와 깊은 수심, 빠른 조류, 계절 태풍 등 세 해협의 지리적 환경에 대한 정밀 지질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궁금증 2 어떤 터널을 만들 것인가?
해저터널은 터널 공법에 따라 크게 3종류가 있다. 수중터널은 선박의 항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일정한 깊이의 바다 속에 터널을 띄우고 이를 해저 바닥에 케이블로 고정시켜 만든다.
침매터널은 터널 노선에 해당하는 지점의 해저 지표에 일정 깊이를 파 홈을 만들고 터널 구조체를 이 홈에 가라앉혀 만든다. 지난해 착공한 거제-부산 간 도로 중 3.7km가 침매터널로 건설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굴착 기계를 사용해 해저 지표 아래 일정 깊이에 토사를 파내면서 뚫는 해저터널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을 잇는 채널터널이 대표적 예다.
터널 종류를 결정하는데 해저 지질 환경은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채널터널은 수중터널이나 침매터널 대신 해저 바닥 밑에 터널을 뚫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는 백악층(White Chalk)이라는 특수한 해저 지질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악층은 도버 해저 지표에서 평균 45m 아래 지점에 형성돼 터널을 뚫기에 적당한 깊이였다. 또 암반이 단단하지 않아 터널 굴착 속도를 높일 수 있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특히 백악층이 불투수층을 형성해 해저터널 건설에서 가장 골칫거리인 방수 문제를 자연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채널터널은 지층의 적절한 위치에 백악층이 놓여 있는 ‘행운’ 이 있었기 때문에 완공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일터널 역시 해저 지질 상태는 채널터널과 비교해 별 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질 환경 외에도 고려할 요인들이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홍성완 박사(한국터널공학회 회장)는 “대한해협에는 선박이 많이 다니고, 전쟁과 같은 만일의 사태에는 잠수함의 이동 경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성 측면에서 수중터널과 침매터널보다는 해저 지표 아래 터널을 뚫는 것이 현실적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중터널이나 침매터널은 선박이 침몰할 경우 터널과 충돌 위험이 있고, 해일이나 지진 등 해저 지질 환경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저 지표 아래 지층에 터널을 뚫는 것이 안전하다. 따라서 한일터널은 채널터널과 같은 종류의 터널로 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궁금증 3 어떤 교통수단을 사용할 것인가?
한일터널의 교통수단으로는 고속도로, 고속철도 그리고 자기부상열차가 중점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특히 터널을 튜브형으로 하고 그 안을 0.1-0.2 대기압 정도의 저기압으로 해 자기부상열차로 마하 4-5(시속 4천7백70-5천9백60km)의 초고속으로 주행하는 구상도 있다.
현재 한국의 부산에서 일본의 후쿠오카까지 훼리선으로 16시간, 고속 수중익선으로 2시간 55분이 걸린다. 만약 한일터널이 완성되면 자동차로 3시간 30분, 최고시속 3백50km의 고속철도로 1시간 20분, 최고시속 7백km의 자기부상열차로는 40분이 걸리게 된다. 이 중 자기부상열차가 교통수단으로 채택되면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비행기와도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자기부상열차를 한일터널의 유력한 교통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미 1970년부터 국가에서 예산을 투입해 시속 5백km 내외의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의 시험운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 측 입장은 조금 다르다. 열차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자기부상열차는 부적합할 것으로 생각한다. 홍 박사는 “일본에서 개발된 자기부상열차가 초전도발생장치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력이 소모돼 이에 따른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도로 역시 여러가지 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고속도로를 건설할 경우 차량의 이동이 전제가 되는데, 아직까지는 무공해 청정 자동차가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량의 배기가스로 인해 터널의 환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차량이 몰릴 경우에는 교통체증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은 자기부상열차나 차량보다는 고속철도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미 한국과 일본에 고속철도가 있고 중국도 조만간 건설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인공섬 건설로 환기, 피난 문제 해결
한일터널이 실현된다면 세계 최장의 해저터널이 된다. 공사 규모면에서도 세계에서 유래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홍 박사와 신 박사 모두 터널 완공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일본은 이미 현재 세계 최장의 해저터널인 세이칸터널을 개통했고, 한국 역시 한강 하저터널 공사(지하철 5호선 여의도-마포 구간) 등을 통해 해저터널 완공에 필요한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다만 한일터널이 수백km에 이르는 해저터널이기 때문에 시공시 고려해야 할 몇가지 요소가 있다. 우선 방수 기술이다. 채널터널의 경우에는 물을 흡수하면 팽창하고 물이 없으면 수축하는 특수 고무를 방수 소재로 사용했는데, 한일터널은 그 길이가 채널터널의 약 4배나 되기 때문에 더욱 견고한 방수 기술이 필요하다.
또 정전 등 비상시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공급시스템, 터널 내 공기 정체를 방지하고 열차 등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냉각시킬 환기시스템, 화재 시 승객이 대피할 대기 장소와 배연시스템 등이 필요하다.
홍 박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터널구간의 약 20km마다 인공섬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인공섬을 건설하게 되면 굴착을 할 수 있는 지점이 여러 곳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공사 기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환기구나 긴급 피난구 등의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어 일석이조다.
한일터널 건설에 기술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면 해저 생태계 파괴의 문제는 어떨까. 신 박사는 한일터널은 해저 바닥을 파헤치는 방식이 아니라 해저 지하에서 굴착하는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해저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고 밝혔다.
또 굴착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발파 방식으로 터널을 뚫는다고 해도 해저 지면 아래 상당히 깊은 지점에서 발파가 이뤄지게 되므로 문제가 없다고 한다.
육상에서 터널을 발파할 경우에는 인접 지역 목장이나 양식장의 위치가 고정돼 있어 가축, 어류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발파 진동으로 인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저에서는 어류 등 해저 생물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설사 발파에 의한 진동이 있더라도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널터널 공사 당시에도 생태계 피해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북한 개방 여부가 터널 성공의 관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한국과 일본의 바닷길은 열릴까. 기술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바닷길을 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해저 생태계 파괴 문제도 없다. 남아 있는 문제는 한일터널 완공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재원조달, 경제성, 양국의 국민적 합의 등의 문제다.
한일터널기술연구회 성백전 회장은 “채널터널이 당시 18조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투자했지만 1994년 개통 이후 당초 예상과 달리 엄청난 적자가 쌓이면서 한때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던 사례를 생각하면 한일터널은 공사비가 80조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개통 이후 경제성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8월 부산에서 열린 제7회 동북아심포지엄에서 일본의 한 연구원은 북한의 개방 여부가 한일터널의 성공에 가장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0년에 건설을 시작해 2020년에 터널이 개통된다고 가정했을 때 터널 개통 후 북한이 대륙을 연결하는 육로를 개방하지 않는다면 2040년 이후 터널 이용 승객 수와 화물량이 증가하지 않아 경제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