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행운을 만드는 생물공학계의 아이디어 뱅크 이상엽

1990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생물화공학회에서 한 학생이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 후에 질문을 했다. 당시 강연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지 대답을 못해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 질문을 한 학생이 바로 이상엽교수다. 이렇듯 그는 늘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거리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질문을 창의적으로 해결해왔다.오늘날 세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상엽! 그럼 기억나죠. 실험할 때 다른 애들과 달리 굉장히 침착했어요. 그리고 늘 부지런했고. 얌전했지만 질문할 것은 반드시 묻고 지나가는 그런 학생이었죠. 가끔 질문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어린애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었어요.” 이상엽교수(37, KAIST 화학공학과)의 27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송두식(61)선생님의 말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제격이라고 하면 좋을까. 실험할 때 침착하고 궁금한 것을 꼭 질문하던 그 학생이 이제는 21세기 생물공학의 선두주자로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대장균을 이용한 생분해성 고분자(일명 썩는 플라스틱)와 다습한 환경에서 오히려 점성이 강해지는 생물접착제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 항생제와 의약품, 그리고 향료 등 고부가치 제품의 원료인 광학활성물질을 미생물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뇌와 간에 구리가 축적되는 유전병인 윌슨병 조기 진단 DNA칩 개발 등 이상엽교수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과 논문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더욱 놀랄만한 점은 이 모든 연구들은 응용성이 높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물질 탄생의 메카 대사공학

이에 대해 그는 발표된 연구결과들이 다양해 보이지만 중심축은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이라고 설명한다. 대사공학? 생소한 용어인 듯 하지만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어있는 첨단 테크놀러지다. 오늘날 많은 의약품들은 미생물에 의해 생산된다. 물론 생산단가가 적절해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성장호르몬 주사를 1번 맞는데 1억이 필요하다면 빛좋은 개살구에 그칠 것이다. 이런 경우 생산량을 늘리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이것과 관련되는 연구가 생물공학이다. 요새는 이를 두고 재조합유전자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 성장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대장균 같은 생물체에 넣어 잘 키우면서 대장균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원하는 인간성장호르몬 같은 것을 만들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좀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대장균 자체에 여러가지 조작을 한다. 사람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는 무언가를 먹으면 그것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고, 아미노산이나 단백질 등도 만들어 삶을 살아간다. 이것을 통틀어 대사회로라고 한다. 이 대사회로를 연구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원하는 물질을 더 많이 만들도록 하는 것이 대사공학이다.

“효율적으로 원하는 물질을 많이 만드는 것도 대사공학이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이죠.” 이교수의 말이다. 인간에게 해로운 박테리아를 죽이려고 개발한 물질이 항생제다. 그러나 항생제를 자꾸 사용하면 내성이 강한 박테리아가 등장한다. 박테리아들이 살기 위해 자신들의 대사회로를 변화시킨 까닭이다. 하지만 인간도 이에 질세라 새로운 박테리아를 이겨낼 항생제를 개발한다. “새로운 항생제를 만드는 것은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항생제 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박테리아에게 테스트해보는 것이예요. 이때 기존의 항생제를 합성하는 미생물의 대사경로를 조금씩 바꿔주면 새로운 물질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죠.” 대사회로를 조작해서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게 된다는 이교수의 설명이다.


이교수는 제1회 한중 청년학 술상(과학공학부문)을 수상 했다(1996년). 수상자인 조수 미(예술), 이인화(문학), 황 영조(체육), 이종화(경제)와 함께.


암호문이 전공으로

사실 이상엽교수가 차세대 생물공학자의 리더로 대접받기까지는 어려운 일이 많았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마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생산하려는 물질의 공정에 맞게 공장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와 관련되는 프로세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지도 교수가 자신의 관심 분야와 맞지 않아 고민을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생물공학을 전공한 텍사스 라이스대의 파푸차키스교수가 새로 부임했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분야였지만 그는 ‘재미있을 거야!’라면서 주저하지 않고 결정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파푸차키스교수는 그에게 전공할 학문에 대한 연구 방법을 익히고, 텍사스의 연구 장비를 노스웨스턴대로 옮겨와 실험실을 꾸미는 일을 첫 과제로 주었다. 한번 선택한 것은 끝을 보고야 만다는 것을 신조로 살아온 그였지만 텍사스대 연구원들이 하는 말이 그야말로 암호문으로 들리는 상태에서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사전에 후회나 좌절은 없었다. 정말 열심히 연구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차츰 재미가 붙었다. 물론 지도교수에게 인정받는 제자가 됐다. 최근에는 지도교수와 함께 대사공학에 대한 책을 미국에서 발간하기도 했다. 생물공학의 ‘생’자도 모르던 그가 ‘대사공학’이란 영문책을 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초청강연차 10년만에 다시 찾 은 노스웨스턴대 옛 실험실 에서 후배들과 함께(2000년).


실용적 관점 강한 ‘화공쟁이’

이상엽교수는 성실하다. 그리고 언제나 노력한다. 그러한 자세가 오늘의 이교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의 성실함은 장호남교수(KAIST 화학공학과)도 인정한다. 장교수는 1992년 이교수가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KAIST의 생물공정연구센터에서 연구를 겸했던 기간을 떠올리며,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국에서 한 것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을 보면 놀라워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교수도 그 시기가 자신에게 제일 힘들었지만 가장 열정적인 시기였다고 토로한다. “밤을 새운 날은 수두룩하고, 보통 3-4시간만 잤죠. 그때 논문을 많이 쓴 것 같아요. 악이 받쳤다고나 할까요”하면서도 당시에 열심히 했기에 KAIST에 교수로 부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당시 이교수는 만29세라는 KAIST사상 최연소교수 부임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그는 제자들에게 아이디어 뱅크로 불린다. 그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극히 평범한 카드를 내보인다. “계속 공부하는 거죠.” 그는 ‘사이언스’나 ‘네이처’같은 잡지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지금 이순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에서 출발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봐요.” 그는 사이언스나 네이처를 볼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것을 어떻게 쓰면 뭔가 되겠다. 또는 돈이 되겠다’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히 말한다. 순수과학자들과는 보는 관점부터가 틀리다는 말이다. 그는 이런 훈련이 연구에서 생산까지 전체적인 그림을 다 그려야 하는 화학공학의 특성이 몸에 뱄기 때문이라며 자신을 ‘화공쟁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전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이 읽는 잡지 속에서 보물을 캐듯이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것은 자신만의 능력이라고 자신만만한 여유를 보인다.


실용적 관점 강한 '화공쟁이'


우연한 행운의 뒷이야기

그가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외국의 유수한 잡지를 통해서만 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호기심이 많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이언스나 네이처의 논문들을 보면서 ‘이것을 이렇게 이용하면 이런 것이 나올텐데….’ ‘이런 연구는 왜 아직 안나오는 것일까’ 등을 떠올린다. 그러면 곧장 자신의 아이디어북을 펼친다. 그는 실제로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언젠가 이뤄질, 아니 이뤄질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아이디어들에 대한 소중한 밑그림을 그린다. “아이디어는 곧바로 써놔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어떤 연관된 일이 생기면 연상작용이 가능해지거든요. 그런 것들이 연결돼 새로운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것이예요. 그리고 관습을 타파하는 것이 중요하죠. 남들하고 똑같은 생각을 해서는 과학이란 분야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요.” 과학을 하는데 중요한 것에 대한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자세는 광학활성 정말화학물질을 얻는 대어를 낚기도 했다. 이 연구로 미국의 바이오테크놀러지 바이오엔지니어링 잡지에서 수여하는 제1회 엘머 가든상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1999년 여름 이교수는 대장균을 이용해 썩는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는 생분해성 고분자를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효율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학생이 이교수에게 뛰어왔다. 대장균 속에 가득차 있던 고분자(하이드록시카르복실산)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사진 속에도 있던 고분자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당시 이교수는 대장균 속에 채워진 고분자가 분해돼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대장균 배양액 바깥을 분석해보라고 지시했다. 결과는 놀라움 그 자체. 배양액 바깥쪽에 고분자가 분해돼 나와 있었다. 실험 중에 계속 버려만 왔던 쓰레기 같은 곳에 21세기의 신기술이 진흙 속의 진주마냥 놓여져 있었다.

원래 고분자는 세포를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세포 바깥으로 나가려면 처음에 흡수하던 포도당처럼 아주 크기가 작은 분자 형태(모노머)로 바뀌어야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고분자는 특성상 한가지 종류의 광학이성질체(오른손과 왼손처럼 분자의 구성요소는 똑같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구조가 다른 물질)로만 구성돼 있다. 그 이유는 생명체의 모든 효소가 광학적으로 어느 한쪽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체도 마찬가지다. 물질들 중에는 R과 S형태의 광학이성질체가 존재하지만 생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이중 어느 하나의 광학이성질체와만 이뤄진다. 바로 효소의 입체특이성 때문이다. 따라서 광학적으로 순수한 약품과 같은 정밀화학물질을 만드는 것은 화학자들의 큰 관심거리다. 그런데 고분자 분해물이 세포 바깥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하이드록시카르복실산의 한가지 종류의 광학이성질체가 얻어졌다는 의미다. 고분자에 1백40여 종류나 되는 다른 물질을 만들어 넣을 수 있으므로, 이 기술은 그만큼 많은 광학적으로 순수한 물질들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약품과 같은 정밀화학물질을 얻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예를 들어 항생제가 우리 몸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광학적 활성(R 또는 S 형태의 광학이성질체로 이뤄진 약품이 몸 속에 들어가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전의 화학약품 합성의 경로를 거치면 약품 속에는 2종류의 광학이성질체가 모두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수율이 떨어지고 분리가 어렵다. 지금껏 먹어온 진통제인 이부 프로펜도 반은 전혀 효능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이 경우는 활성이 없기 때문에 다행이다. 어떤 경우에는 쓰이지 않는 다른 형태의 이성질체가 독성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국 FDA(식품의약안전국)를 비롯해 약을 허가해주는 기관에서는 약품의 광학적 순수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의 연구가 얼마만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연구소들이 그의 연구실을 두드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광학적으로 순수한 정밀화학물질을 얻을 수 있는 기술과 관련한 모든 전세계의 특허를 쥐고 선진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까지 조용히 지내려고 한다. 현재 실험실에서는 이 기술을 이용해 광학적으로 순수한 정밀화학물질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다. 조만간 그의 연구실이 다시 한번 전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초등학교 5학년의 작은 불씨

“그 친구가 교수가 됐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노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참 똘똘한 친구였어요. 뭐든지 관심을 가지면 집중하는 것이 놀라웠죠.” 대학교때 친구인 노균박사(삼성종합화학)의 말이다. “우리 선생님은 화끈하고 적극적이죠. 회식때 학생들과 당구치자고 하는데 저희가 당할 수 없어요. 당구는 3백, 볼링은 애버리지 1백70이상이니까요.” 제자인 정기준박사의 말이다.

사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외향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 너무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 부모님께 고민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5학년 과학반에 들어간 것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작은 불씨가 됐다. 비록 과학경시대회 예비반이었지만 저녁 8-9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해보는 5학년 때의 실험은 그 무엇보다 즐거웠다. 또 5학년때는 남산의 어린이회관에서 시행하는 어린이과학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 과학왕이 되면서 서서히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싸움을 제일 잘하는 친구와 기를 쓰고 싸워 이긴 다음부터는 성격이 1백80도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의 기억이 겸연쩍은지 웃으면서 “그때부터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뭐든지 하면 잘하게 됐어요”한다.

세계 제1의 보이지 않는 친구

그는 성격이 변화하면서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고 하지만 사실 그 밑바탕에는 보이지 않은 준비가 있었다. 준비된 자에게 온 기회라고나 할까. 그는 어려서부터 뭐든지 열심히 했다. 자기 관리가 몸에 밴 것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그의 부모님 특히 아버님의 영향이 크다. 이교수는 지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를 꼽는다. 아버지가 보여준 성실한 모습이 그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 됐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제자들에게도 자기 자신에게 책임질 수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학생들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무섭게 화를 낸다. “자신이 언제까지 실험을 한다고 했으면 하루 24시간을 48시간으로 늘려 사용하던 밤을 새던 지키라고 해요. 그것이 결국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물론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안다고 덧붙인다. 정기준박사는 “다른 실험실에 비해 일이 많지만 학생들의 목표와 선생님의 목표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고생을 감수하는 것이죠”라면서 자신이 교수가 돼도 선생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상엽교수. 그는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어려운 일은 없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열정 뒤에는 냉혹한 자기 관리가 자리하고 있다. 연구실에 출근하고 30분, ‘오늘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계획한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 30분, ‘오늘 무엇을 했는가,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리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일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친구에게 인사한다.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세계 최고의 친구에게. 그는 지구촌에 있을 자신보다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를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다. 그리고 그 친구와 경쟁한다. 자신의 연구실 학생들이 최고라고 자부하면서도 “세계에는 너희들 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상엽교수가 걸어온 길

1964년 서울 출생, 영훈초등, 도봉중, 용문고 졸업
1986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87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생물화학공학 석사
199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생물화학공학 박사
1992년-1994년 KAIST 생물공정연구센터 선임연구원, 군복무
1994년-현재 KAIST 교수
1996년 제1회 중한청년 학술상(공학부문) 수상
1997년 한국과학기술원 학술상 수상
1998년 제1회 젊은 과학자상 수상
1999년 신세기 지도자상(미국 BARONS) 수상
2000년 제1회 엘머 가든상(미국 화학회) 수상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사진

    장성환 기자

🎓️ 진로 추천

  • 화학·화학공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