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통 엔진이 올 여름을 강타했다.
두 명, 세 명씩 번갈아 뛰어오르는 걸그룹, 크레용팝의 안무가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
덩달아 5기통 엔진의 대명사인 볼보 자동차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정작 볼보는 자사의 5기통 엔진을 전면 4기통 엔진으로 바꾼다고 한다.
5기통 엔진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올해 10월 7일, 볼보자동차코리아는 1600cc 4기통 디젤 엔진을 장착한 신차를 출시했다. 볼보는 5기통 엔진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국내에 판매되는 볼보자동차 가운데 4기통 엔진을 단 모델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추세는 올해 초에 예견됐다. 3월에 열린 ‘2013 제네바 모터쇼’에서 볼보 측은 효율을 높인 4기통 엔진을 확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존보다 작은 엔진을 장착해 무게와 생산비용을 줄이면서도, 성능과 효율은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4기통보다 힘 좋고 6기통만큼 부드러웠던 5기통 엔진
기통의 숫자는 엔진의 실린더 개수를 의미한다. 실린더는 차의 동력을 만드는 아궁이라고 볼 수 있는데, 큰 방을 덥히려면 아궁이가 여러 개 필요하듯 자동차가 커질수록 다기통 엔진이 필요하다.
효율이 가장 좋은 실린더 용량은 500cc이기 때문에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00~2000cc 중소형 차에는 4기통 엔진이, 에쿠스처럼 큰 차에는 6기통 엔진이 쓰인다. 7기통이나 9기통처럼 실린더 개수가 홀수인 엔진이 없는 이유는 무게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효율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5기통 엔진은 예외다. 1930년대 후반, 포드사의 창립자인 헨리 포드는 6기통 엔진의 큰 힘과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하면서도 4기통 엔진처럼 작고 경제적인 엔진을 만들기 원했다.
실제로 에쿠스 같은 대형 자동차를 타보면 매끄러운 승차감에 놀라게 된다. 6기통 엔진과 4기통 엔진은 각각 작은 말 여섯 마리와 큰 말 네 마리가 차를 끄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동차 엔진은 축이 2번 회전할 동안 모든 실린더가 한 번씩 폭발하도록 설계되므로 2회전 동안 6기통 엔진은 6번, 4기통 엔진은 4번 폭발한다.
또한 실린더 한 개가 폭발하는 압력(말 한 마리)은 6기통 엔진이 더 작아서, 마치 약한 힘으로 6번 때리는 것과 큰 힘으로 4번을 때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6기통 엔진이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힘을 낼 수 있고 진동과 소음도 더 적은 것이다.
하지만 헨리 포드가 만든 5기통 엔진은 양산되지는 못했는데, 당시 미국에는 작은 차를 타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4년이 돼서야 메르세데스 벤츠사가 5기통 디젤 엔진인 ‘OM617’을 양산용 자동차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볼보, 아우디, 폭스바겐이 5기통 엔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쌍용차가 5기통 엔진을 장착한 ‘무쏘’를 내놓았다.
올해 들어 ‘동급이면 배기량 적은 모델’이 유행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연비가 좋은 차가 더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또한, 각국 정부가 친환경 정책에 따라 다기통 엔진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자동차 업계는 ‘엔진 다운사이징’으로 대응했다. 5기통 엔진의 대명사였던
볼보조차 4기통 엔진으로 변환하는 것은 ‘엔진 다운사이징’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엔진 다운사이징은 실린더의 크기나 개수를 줄여 배기량을 낮추면서도 동일한 출력을 내는 기술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터보차저’라는 장치로, 엔진이 배출하는 가스 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그 힘으로 실린더에 공기를 추가로 밀어 넣는다. 실린더의 원래 용량보다 더 많은 공기를 넣어 큰 출력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효율과 연비가 좋아진다. 항공기 엔진으로 처음 개발됐지만, 지금은 자동차 엔진에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그린동력연구실 오승묵 실장은 “연비를 높인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배기량을 줄이는 다운사이징이 유행하는 추세”라며 “예를 들어, 2000cc 엔진을 터보차저를 탑재한 1600cc 엔진으로 대체해도 같은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크고 무거운 5기통 엔진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헨리 포드가 원했던 ‘4기통보다 힘 좋고 6기통만큼 부드러운’ 5기통 엔진의 장점은 이제 빛을 발할 수 없게 됐다. 과거에는 두 엔진의 장점을 합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작지도, 큰 힘을 내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엔진이 돼버린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효율이 훨씬 개선된 4기통 엔진만으로도 소비자들은 만족한다.
자동차 업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온 5기통 엔진. 앞으로는 그녀들의 ‘5기통 엔진 춤’만이 마지막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특유의 진동과 소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아쉬운 탄식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