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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과학기술계 탐방기-자영협동체 결성, 연구성과 분배요구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의 과학기술 전문연구소에서는 '연구성과의 몫'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사회주의 연방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러가지 혁신정책이 펼쳐졌다. 그 중 하나가 과학기술에 대한 집중지원이었다. 이 정책의 결과는 특히 물리학과 수학에 기초한 우주과학과 군수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련은 50~60년대에 걸쳐 미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각종 현대무기를 개발했고, 우주에 처음으로 인간을 보내는 새로운 역사를 펼쳤다. 이에 대한 소련인들의 긍지는 각종 동상 박물관 우표 등에서 여러형태로 나타난다.

미래의 과학과 산업을 이끌어갈 학문으로 주목받고 있는 생물과학이 소련에서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를 그들의 교육 연구제도를 통해서 살펴보자.

소련에서의 생물학관계연구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대학과 전문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모든 기관은 국가소유이고 연구비 또한 거의 전액이 국가로부터 지급된다. 소련의 어려운 경제여건과 낮은 생활수준을 감안할 때 연구소 숫자나 연구비 액수는 높은 편이다.
 

미국 하버드대 분자유전학 교수인 김선영


5년제의 대학과정

소련에서는 10년의 초중등교육을 거쳐 5년제의 대학과정을 밟는데, 대학입시는 꽤 치열한 것 같다. 입학시험은 물론이고 수년전까지만 해도 내신성적이 반영됐다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입학정원의 일정비율은 미개발지역이나 다른 공화국 사람들, 또는 육체노동자의 고급교육을 위해 배정하는 것이다.

대학원교육은 두가지 형태로 받을 수 있다. 하나는 대학교 내에서 3년동안 과정을 마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문연구소에 근무하면서 5~10년에 걸쳐 논문을 쓰는 방법이다. 후자에서 전자로 과정을 바꾸는 것도 가능한데, 전문연구소에 근무하면 봉급이 2,3배 높다. 대학원 입학시험으로는 전공과목, 외국어 그리고 철학을 보는데 철학은 주로 공산주의 이념관계를 다룬다.

대학원교육은 3,4과목의 시험은 치르고 연구논문을 작성한 후 마치는데, 이 때 받는 학위는 Candidate of Science. 다른 나라의 박사학위에 해당된다. Doctor of Science도 있는데 이는 주로 학문의 절정기에 거대한 논문을 작성한 후 받는 학위로서 교수가 되는데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의대학생들도 연구에 종사할 수 있는데, 경쟁이 몹시 치열해 1백명당 1,2명 정도가 선발돼 과학자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중에서 생물학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곳은 전소련에 걸쳐 3개 정도밖에 안 된다. 모스크바대학 레닌그라드대학 그리고 노보스빌스크대학 등으로 모두 러시아공화국에 있다.

소련에서 활발하게 생물학연구를 하는 곳은 아카데미(학술원)나 각종 정부 부처에 소속돼 있는 전문연구소들이다. 소련의 아카데미는 단순히 학자들의 모임만이 아니라 국가정책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실천적인 조직이다. 우리에게는 물리학자이자 반체제 사회운동가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있었던 과학아카데미가 잘 알려져있다. 이 아카데미는 공산주의 통치하에서도 매우 독립적이어서 정부는 사하로프를 아카데미로부터 축출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아카데미 회원(아카데미션)이 되는 것은 학자로서는 큰 영예이며 물질적 보상도 크고, 특권계층에 속하는 것 같았다.

생물학관계 아카데미로는 과학아카데미 의학아카데미 농학아카데미가 있는데 이러한 아카데미들은 산하에 많은 생물학 전문연구소들을 거느리고 있다. 연구소들은 생물과학의 다양성에 맞추어 세분화돼 있다. 예를 들면 과학아카데미 산하의 분자유전학 분자생물학 일반유전학연구소 등이 그것이다. AIDS관계연구는 대부분 의학아카데미 산하의 바이러스연구소들에서 행해지고 있다. 각 연구소는 10~20개의 독립된 실험실로 구성돼 있는데, 연구소 간에는 같은 아카데미에 소속되더라도 재정과 인사의 독립성이 유지돼 있다.
 

활발한 생물학 연구


기초생물학 상대적 낙후

생물과학이나 산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부 부처로는 보건부와 의학 및 생물학관계 생산부 등이 있다. 이들 부처는 산하에 10여개 이상의 생물관계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현대생물학이 워낙 다양하고 전문화돼 있어 일반화시키기는 곤란하지만, 분자유전학 바이러스학 등의 소련의 수준은 비교적 뒤떨어진 듯하다. 그 근거로 잘 알려진 국제학술잡지에 소련 생물학자들이 기고하는 논문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련의 기초생물학 수준이 물리학이나 수학과는 달리 국제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연구에 사용되는 소모품이나 기자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형편에, 이를 뒷받침할 연구비가 절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소련생물학의 후진성을 초래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농학아카데미회장이었으며 과학아카데미회원이었던 뤼셍코라는 사람의 독선적인 과학정책이다. 이 사람은 50년대에서 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소련정부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는데, 현대 유전학이론을 부정하고 자기의 이론에 반대하는 생물학자들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 결과 현대생물학의 근간이 되는 유전학이 심하게 위축됐다. 이데올로기의 경직성과 독선적 요소가 과학발전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하는 교훈을 남긴 좋은 사례다.

「과학기술자 좋은 대우」옛말

일반적으로 소련에서는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20여년 전의 일이거나 현재는 극히 일부인 아카데미회원에게나 적용되는 말일 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박봉속에서 분투하는 듯했다.

필자와 직접 대화를 나눈 과학자들은 10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혐오감을 표시했다. 과학발전의 저해는 물론 낮은 생활 수준도 모두 70여년의 실정과 학정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개량을 통해 변화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비판 대상에는 소비에트연방 창설자인 레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소련 생물과학의 장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비록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초과학 실험분야에서는 낙후돼 있지만 이론생물학은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생물응용과학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어서 빠른 속도로 모방개발 단계를 넘어서 자체내에서 공장화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장과학자들은 모두 의욕적이고 박진감이 있었고, 어려운 경제여건에 슬기롭게 대처해나가고 있었다.

근간은 아직 사회주의

소련이 지금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큰 변혁을 겪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정치적 변화는 여러 형태의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으나, 경제변화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의 공산주의 경제체제가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나 아직 경제의 근간은 사회주의에 입각하고 있음을 느꼈다. 70여년 동안 중요한 재산에 대한 사유권이 인정되지 않았던 상황, 거의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가 점유한 상태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인지 많은 혼란이 있는 듯했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소련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경제변화와 혼란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음을 목격했는데 그 방법이 특이하고 재미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1957년에 설립돼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해온 의학아카데미 산하의 바이러스관계 전문연구소에는 약 3백명의 연구원 및 지원인원이 일하고 있었다. 이 기관의 특징은 실험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응용해 대량생산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공장시설을 연구소내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연구비는 전액 정부로부터 지원받아왔고 연구소내에 실력자는 연구소창설 때부터 근무해오던 공신들인 노장층이었다. 그러나 1985년말에 새로운 연구소장이 부임해 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의욕적이고 야심만만한 소장파 학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히 AIDS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에 대한 연구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기초과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AIDS가 금세기 최대의 전염성질병이라는 점에서 응용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련 의학아카데미 산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강의하는 필자

 


연구성과 배분 연구

이들의 기본 연구전략은 매우 실용적이었다. 즉 소련경제의 후진성과 기초 생물과학의 낙후성을 감안할 때, 기초과학분야에서는 구미 선진제국의 결과를 뒤쫓기만 할 것이니 일단 응용연구에 치중해 상품화로 연결시키면서 기술을 축적해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소련이 그 때까지만 해도 AIDS진단시약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한다는 점에 착안해 시약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자체개발이라야 구미상품의 모방개발 정도지만, 귀한 외화를 절약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2년여의 연구로 이들은 기술개발은 물론 상품생산에까지 이르렀는데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10여명을 중심으로 '바이오서비스'라는 자영협동체(조합)를 조직하게 됐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협동체라 하면,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생산결과를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협동농장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 협동체는 연구노력의 결과로 인해 개발된 상품 판매로 얻어지는 수익금에 대한 정당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종전같으면 연구결과가 상품화되더라도 거의 모든 수익금을 국가가 차지했기 때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자기 연구에 큰 의욕을 가지지 못했는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개방 정책으로 이러한 자영협동체의 조직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들이 개발한 진단시약은 현재 다섯곳의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이는 소련에서는 유일한 진단시약이다. 사회주의 체제답게 대량검사를 실시하므로 이에 따른 수익이 막대하다. 현재 판매액의 20% 정도를 자영협동체로 회수하는데, 세금과 경상비를 제외하고는 미래의 연구와 실험실 확장을 위해 저축도 하고 회원들에게 분배도 한다. 이들의 분배는 획일적이거나 회원들의 필요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발 기여도에 따라 그 비율을 달리한다. 자본주의 보상형태를 원론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이 협동체 회원들은 같은 수준의 다른 과학자들보다 3~5배가 되는 보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보상제도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구에 임하는 태도를 가지게 했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현재 이들은 다른 바이러스진단시약의 개발, 치료시약에 대한 연구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고 부지를 매입해 연구소확장도 계획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다른 동료들을 자극해 분위기를 활성화시켜 놓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가 구성된다면 모든 인간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이상사회에 대한 갈구가 봉건체제 타도에 큰 원동력을 제공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며, 또한 밑바닥 소외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도 사회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실행과정에서 성공과 소유, 행복에 대한 개인적 욕망이 경제발전의 또다른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노동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 자영협동체의 성공과 그로 인한 생산성의 증가는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조그마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협동체가 전 사회로 퍼져나갈 때 이로 인해 야기될 분배 문제를 이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또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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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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