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고삐 풀린 망아지」 옛소련 핵무기

과연 안전한가

옛 소련이 개발한 최신예 차륜이동식 ICBM 상상도


다중의 안전장치에도 불구 전술핵무기중 일부는 해외로 유출돼 잘못 쓰여질 가능성이 있다.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이 붕괴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동안 소련측이 보유했던 핵무기에 모아지고 있다. 상딩수를 러시아공화국이 인수해 외형상 큰변화가 없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나라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혹 핵무기가 '고삐 풀린 망아지'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과거 소련 시절에는 모든 핵이 중앙통제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핵무기를 이야기할 때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화학무기와는 달리 안전장치가 아주 견고하다는 것이다. 핵무기가 발사돼 폭발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버튼이 눌러져야 하는데, 버튼 하나하나는 고도의 정밀 프로그램으로 잠겨져 있다. 예를 들어 핵무기를 싣고 가던 비행기가 추락해도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1966년 핵탄두를 싣고 가던 미국의 B52가 스페인 파로마레스 상공에서 다른 비행기와 충돌해 추락했다. 이때 지상에 떨어진 1Mt의 핵폭탄(히로시마에 투하된 것보다 약 80배에 이르는 성능)세발 중 두발이 파괴돼 핵물질이 흩어졌으나, 방사능 오염은 발생했어도 핵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열쇠'는 물리적 충격에도 결코 풀리지 않음이 증명된 것이다.

핵무기의 열쇠는 크게 두분야로 나뉜다. 하나는 '발사명령'의 열쇠이며 다른 하나는 '폭발명령'의 열쇠다. 옛 소련 전략핵무기의 경우는 약 12개의 열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열쇠(제1버튼)는 소련 소멸과 더불어 고르비에게서 옐친으로 넘겨졌다. 까만 가방에 들어있는 암호박스가 바로 제1버튼인 셈이다. 두번째의 열쇠는 국방장관이 가지고 있다. 이후에는 점차 계급순으로 내려가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이나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의 현장 담당 장교에까지 마지막 버튼이 넘겨진다. 이 과정에서 하나만 빠져도 ICBM은 발사되지 않는다.

발사된다고 해도 핵폭탄이 폭발되는 것은 아니다. 또다시 폭발버튼이 눌러져야 한다. 따라서 현재 옛소련 상황이 아무리 어수선하더라도 전략핵무기가 발사돼 문제를 일으키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전술핵무기(단거리미사일의 핵탄두, 야전포의 핵, 핵지뢰 등)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여기도 잠금열쇠는 3~5개 정도 있어 군사령관 군단사령관 사단장 등의 명령을 거쳐야 한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과 비슷하지만 옛소련에는 독특한 핵무기 관리시스템이 있다. 핵버튼에 KGB가 관련돼 있는 점이다. 전술핵무기의 탄두와 폭탄은 KGB가 보관하고 유사시에 군의 각 부대에 넘겨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를 두고 옛소련 전술핵무기의 암거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과연 그럴까.

지금은 KGB도 휘청거리고 있으며 전술핵무기를 엄격히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약1만기 정도 되는 전략핵무기는 국외유출이 불가능하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잠금열쇠가 풀어져 폭발에 이를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데 핵전문가들은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약 2만발 정도 되는 전술핵무기는 크기가 작아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옛소련의 1백52㎜자주포의 핵탄두는 지름 15㎝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여행가방 안에 들어가 시리아나 리비아로 얼마든지 '수출'될 수 있다. 유출된 핵무기는 열쇠부분을 개조한다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열쇠를 해석하고 이를 개조하는데는 일정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문제가 농축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재료로 핵무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지못하도록 감시하는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을 체결하고 핵사찰을 받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유출문제는 당면한 위협으로 부각되고 있다. 더군다나 핵과학기술자들도 함께 유출된다면 더욱 심각하다.

전술핵무기를 모두 모아 폐기처분하자는 안이 부시와 고르비 사이에 체결되기도 했지만(91년 12월30일) 우크라이나 공화국 등은 이에 쉽게 응할 태세가 아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핵무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마'로 당분간 남아 있을 듯하다.

199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 진로 추천

  • 군사·국방·안보학
  • 정치외교학
  • 국제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