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군으로부터 생명의 위협 속에서 성적 학대와 모욕을 당한 한 이라크인이 “창피해서 고향에 못가겠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됐다. 어쩌면 그는 군인이 옆에만 지나가도 깜짝 놀라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 평생 반복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당시의 공포감이 단지 마음의 상처로 남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뇌에 뚜렷한 물리적 손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의대 신경정신과 채정호 교수팀은 1999년부터 4년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40대 남녀 27명의 뇌파를 조사했다. 이 장애는 과거에 ‘죽을 것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 몸은 회복됐어도 평생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가정과 사회에서 정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의 생존자, 산업재해 피해자 등도 일부 포함됐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환자 뇌에서 고등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뇌파가 정상인에 비해 지나치게 단조로운 패턴을 보였다. 채 교수는 “인지기능이 활발할수록 뇌파는 단조로움이 줄고 복잡해진다”며 “이번 결과는 과거의 사고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유연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강하게 집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공포감을 담당하는 영역인 변연계의 뇌파는 복잡한 정도가 정상인보다 훨씬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