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과학계의 명문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약관 20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희대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월프램. 그는 학계를 하직하고 컴퓨터 소프트웨어계에 뛰어 들어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물리학계에서는 그를 수십년만에 나타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물리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를 캘리포아공대에서 지도했던 물리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며 노벨물리학 수상자(1965년도)인 '리차드 페인만'은 이 젊은 이의 머리에서는 '닐스 보어'(19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물리학 수상자)와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의 젊은 시절처럼 아이디어가 마구 뛰어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 젊은이는 16세에 최초의 논문을 물리학회지에 발표했고 20세에 물리학박사가 된 뒤 22세때 맥아더재단의 가장 어린 '천재 장학금'수령자가 되었으며 23세때 권위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가장 연소한 연구자가 되었다. 동료들 중에서 그가 노벨상 수상자감이라는데 의심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학계를 떠나 소프트웨어계에 뛰어 든 것이다.
|신동이자 문제아
스티픈 월프램은 1959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수출입상을 경영하는 한편 소설도 썼다. 그의 어머니는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부모들의 촉망을 받지 못했다. 부모들의 눈에는 그가 '가망이 없는 미친 아이'로 비쳤으며 '심리학적으로 도저히 정상을 찾을 수 없고 제대로 인생을 살아 갈 수 없는 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언제나 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튼'학교에 다니던 시절 미국인 관광객에게 판일도 있었다.
그는 신동이었으나 동시에 문제아였던 것이다. 뒷날 그가 잠시 머물었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 '해리 울프'는 그를 "타고 난 고독감을 지니고 세련된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있다. 또 지난 5년간 그에게 컴퓨터를 제공하고 있는 '마이크로시스팀즈'사의 과학부장'존 게이지'는 그를 가리켜 "참을 성은 전혀 없고 누구나 적대시하며 이해관계에는 약삭 빠르다'고 말하고 있다.
아뭏든 월프램소년은 16세 되면 해에 이튼학교 도서관과 과학대중지외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않고 최초의 2편의 논문을 만들었다. 그는 이 논문덕에 졸업장없이 17세에 옥스퍼드대학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진정한 과학자형의 사람들과 사귀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등교한 첫날 1학년 강의를 듣고 몹시 실망하여 3학년 강의를 들었는데 역시 지겨웠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얼마 뒤 다시 졸업장없이 옥스퍼드대학을 떠나 캘리포니아공대 대학원과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시 캘리포아공대는 그의 논문과 싹터오르는 명성에 끌려 그를 초빙해 간 것이다.
월프램은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노벨수상자(1969년도)'머레이 겔-만'을 비롯하여 세계정상의 물리학자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뒤 그는 시간낭비만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자리를 옮길 충동에 견디지를 못한다. 월프램을 데려오는데 힘쓴 겔-만은 그를 잡아두기 위한 술책을 썼다. 그에게 박사학위를 준 것이다. 그래서 월프램은 갓 스물이 될까말까한 나이에 박사가 되었다. 이 대학의 물리학자들은 그가 이 학교에 붙어 있게 선임연구원의 자리도 주었으며 맥아더 재단 장학금 12만 8천달러를 5년간 제공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잡아 두기는 어려웠다.
|소프트웨어의 귀재
월프램은 캘리포니아공대에서 고에너지 물리학, 수학, 우주론, 컴퓨터 그리고 심지어는 인공지능연구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겔-만, 페인트만을 비롯한 많은 물히학자들의 인정을 받았으나 진작 이들의 물리학연구에만 전념하라고 권했을 때 거절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소립물리학의 아름다움과 기본성격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스티픈은 별난취미를 갖고 있다"고 겔-만은 말하고 있다.
그가 파사데나(켈리포아아공대 소재지)를 떠나 다음으로 옮긴 곳은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로버트 오펜하이머등이 연구하던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였다.
월프램은 노벨상까지 바라 볼 수 있었던 과학자의 길을 스스로 떨치고 나은데 대해 조금도 미련이 없다. 그는 "거의 모든 과학자들은 한가지 훌륭한 업적을 성취하면 나머지 여생을 그일을 계속해 나간다. 많은 과학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이 회의에서 저 회의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강연을 하는 한편 매 6개월마다 논문을 발표하면서 사는 것을 매우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지루하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성의 천국에서도 월프램은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그는 반드시 자기 차례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종신근무직 자리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젊은 천체물리학자에게 돌아가자 그곳을 뜨기로 결심했다.
월프램은 아무에게나 응답할 의무가 없고 마음내키는대로 일할 수 있게 내버려 둘 대학을 찾아 나섰다. 일리노이대학이 선듯 손짓했다. 이 대학은 그에게 여러가지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이리하여 월프램은 2년전 부터 일리노이대학이 제공한 샴페인소재 복합시스팀 연구센터의의 사무실에서 굉장한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그는 수학문제라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손을 댔으며 최근 마무리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매더매티카(Mathematica)'라는 이름의 이 소프트웨어는 탁상용 퍼스널 컴퓨터에서 슈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수학적인 표기를 스크린 상에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을 뿐아니라 아무나 쉽게 다를 수 있어 수학교육방법에 새로운 길을 틀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교의 대수, 삼각과 미적분학부터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응용수학에 이르기까지 즉석에서 해결해 준다. 이 프로그램은 순수과학자들의 이론적이며 난해한 명상과는 대체될 수는 없으나 방정식을 스크린위에서 3차원의 그림으로 옮겨 이 방정식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한눈에 보여 줄 수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모든 응용수학문제를 컴퓨터로 쉽게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대학의 수학과정을 밟는 학생은 물론 4백만의 미국 과학기술자 그리고 경제학자, 정치학자 및 사회장자들을 포함하여 계량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월프램은 현재 미국의 주요한 컴퓨터 하드웨어 메이커들과 이 소프트웨어의 공급교섭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이 소프트웨어가 최소한 1천만달러의 사용료를 거둬들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월프램을 타고난 소프트웨어의 귀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컴퓨터업계에서는 한사람의 프로그래머가 하루에 할 수 있는 평균작업량을 많아야 수십행(行)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월프램은 보통사람이 편지를 슬슬 써 나가듯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하루 작업량을 줄잡아 1천행으로 어림하고 있다.
그는 벌써 어렸을 때 부터 프로그램밍에는 남다른 솜씨를 보였다. 13세때 이른 학교의 상급생친구들의 컴퓨터 게익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컴퓨터 게임에 미친 아이는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게임은 손에 대지도 않는다. 그는 7살 때 처음 체스(서양장기)를 놀다가 진 이래 게임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 그의 말을 빌면 우선 지는 것이 싫엇고 둘째, 게임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더매티카의 원형
월프램은 1969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던 해 그의 이론물리학연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수학을 다룰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만 해도 부호 조작기는 몇가지밖에 없었으나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MIT개발의 '맥사이마'(Macsyma)라는 이름의 부호조각기를 사용했다. 이것은 연간 1백명분의 작업능력을 갖고 있었다.
아뭏든 그는 당시 IBM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던 '크리스 콜'이라는 대학원생을 끌어 들이고 그밖에도 6~7명의 대학생을 채용하여 1년 남짓 작업한 끝에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이프로그램은 사실상 오늘의 '매더매티카'의 원형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바로 월프램과 캘리포니아공대간의 싸움의 불씨가 되어버렸다. 월프램은 자기가 공들여 만든 이 프로그램을 팔려고 했으나 대학 당국은 대학의 돈과 자원으로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월프램의 것이 아니라 대학에 귀속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이런 엇갈린 주장에서 벌어진 불화로 월프램은 파시데나를 떠나고 만것이다.
오늘날 캘리포니아공대의 이 프로그램은 로스앤젤리스의 '인퍼런스'사라는 기업이 시판하고 있는데 컴퓨터의 종류에 따라 5천달러에서 9천9백50달러로 팔고 있다.
월프램의 당면 목표는 이 프로그램에서 1천만달러의 돈을 건져내는 일이다. 그는 재정적인 독립도 필요하지만 그가 일찌기 개발한 이론적인 개념에 근거를 둔 강력한 병렬처리 컴퓨터의 설계자금이 필요한 입장에 있다. 그는 20대초에 세포자동차라는 분야를 개척했는데 뇌와 컴퓨터에서 유체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든 그속의 복잡한 행동은 간단하고 동일한 부품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전개될 수 있는 방법의 이론적인 모델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는 이 설계에 필요한 비용을 5백만달러 안팎으로 어림잡고 있다. 그가 이런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몇가지 계획중의 하나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생각하는 기계'를 목표로 인공지능분야에 진출하려고 꿈꾸고 있다.
|초콜렛중독자
월프팸의 생활은 별난데가 많다. 작업시간도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하오2시에 사무실에 나와 밤을 샌다음 아침 6시에야 퇴근을 한다. 그는 샴페인시 교외에 집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을 때는 집에서 작업한다. 그의 복장은 사업거래관계자들이 전형적인 영국 물리학자의 복장이라고 좋게 표현을 하지만 미국에서는 구세군에게 구호물작용으로 기증해야 할 정도로 아주 볼품이 없다. 그는 초콜릿 중독에 걸려 있어 하루종일 수없이 많은 초콜렛을 먹는다. 그의 옥스퍼드 학창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어떤 물리학자는 과장된 말이기는 하나 "그는 하루 백만개의 초콜렛 바를 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낡은 폴크스바겐 래비트차를 몰고 다닌다. 그의 차의 차양에는 레이다 탐지기가 달려 있다. 그것은 곧장 뻗은 일리노이의 고속도로를 시속 90마일(135킬로미터)이상으로 달리기 위한 것이다.
그는 더 빠른 속도로 내고 싶어도 차가 낡아서 속력을 더 낼 수 없다고 투덜대면서 어서 돈을 벌어 새차를 사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월프램은 28세의 나이에 일리노이대학의 어엿한 정교수요 그의 연구센터의 소장이기도 하지만 불과 2~3년전까지만해도 가끔 10대 청소년과비슷한 행동을 했다. 그는 로크연주회에도 나갔고 여학생들과 데이트도 했다. 그는 로크연주회나 데인트는 자기를 낮추는 일이라고 믿고 이를테면 '지적으로 잘난체' 했기 때문에 10대시절에는 이런 일을 하지 못했다고 털어 놓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런 자그마한 즐거움이 오히려 작업의 능률을 올려 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월프램은 그의 수학 소프트웨어가 과학의 관료적인 혼돈속에서 빠져 나오는 길을 제공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정부로부터 돈을 구걸하는 일은 새들이나 할 짓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연구를 위한 자금을 구해야 한다면 정부가 기금을 운영하기위해 고용한 머리가 돌지 않는 사람 들보다는 벤처 캐피틀회사를 운영하는 영리한 기업인들과 흥정하겠다"고 주장했다.
월프램의 기업가적인 취향은 최근 격월간 학술지인 '복합 시스팀'(Complex Systems)을 창간하는데서도 들어 나고 있다. 그는 이 잡지를 내기 위해 여러 출판사를 찾아 설명하고 돌아 다녔다. 그러나 출판사마다 이런 출판물 팔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자비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다. 은행계좌에 있던 2만 5천달러를 밑천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흑자를 내고 있다.
|광대한 시장성
'매더매티카'의 시장성은 매우 크다고 그는 내다보고 있다. 2~3년전만해도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던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한정된 인원의 과학자들만이 '맥사이마'와 같은 프로르램을 통해 대형 컴퓨터나 마이크로 컴퓨터 위크 스테이션을 사용했다.
그러나 월프램은 되도록 많은 고객을 겨냥하고 있다. 그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초심자들도 IBM의 PS/2계열과 지난해 나온 신형 매킨토쉬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퍼스널 컴퓨터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 그래서 고등학생들까지도 숙제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다만 출하를 앞두고 요즘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매더매티카'라는 이름이다. 임시방편으로 붙인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름은 보통 수준의 보통학생들에게 자극을 줄만한 것은 못되고 또 진지한 연구자들에게는 어쩐지 싸구려 제품같은 이름으로 들리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명을 위해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도 영어사전과 그리스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본다는 것이다.
아뭏든 요즘 월프램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돈 버는 일이다. 그러나 돈을 버는 재미로 월프램을 언제까지나 묶어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다시 더 재미 있는 다른 프로젝트로 쏠릴 것이라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