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5월 24일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사무엘 모스(Samuel F.B. Morse)는 전신기의 종이테이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이 보낸 메시지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는 자신이 개발한 전신기가 원거리 통신에 쓰일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64km 떨어진 볼티모어까지 전선을 설치하고 이날 역사적인 시연을 가졌다. 그는 성경에서 발췌한 “신은 무엇이라고 썼을까요” 라는 문구를 모스부호로 타전했다. 만일 볼티모어에 있는 그의 조수 알프레드 베일이 메시지를 받는다면 같은 문구를 다시 보내기로 돼 있다.
잠시후 전신기의 종이 테이프가 움직이면서 부호가 찍히기 시작했다. 기록된 부호를 해독한 모스는 위의 문구가 되돌아왔음을 확인했다. 전신기 제작에 매달린지 12년만에 마침내 원거리 통신에 성공한 것이다.
이 시연이 있은 후 전신선은 이내 필라델피아와 뉴욕으로까지 뻗어갔다. 그 후 4년도 안돼 미시시피 강 동쪽에서는 한 주를 제외한 모든 주가 전신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반세기만에 모스의 전신기는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돼 전신이 정보교환의 주된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이 시연은 7년 전인 1837년 이미 이뤄졌을 일이었다. 당시 자신이 개발한 전신기의 성능을 확신했던 모스는 미 연방 정부에 지원을 요청해서 뉴욕과 워싱턴 사이의 장거리 시연을 해볼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경제 불황 때문에 이 계획을 연기해야만 했다.
경제가 회복 기미에 접어든 1843년 모스는 자신의 계획에 3만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미 하원의 승인을 얻어냈다. 이 자금으로 모스는 볼티모어와 워싱턴 국회의사당 사이에 지하 전신선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건설 분야에서 인정을 받던 엔지니어 에즈라 코넬 덕분에 전선이 통과하는 파이프 매설은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주던 국회의원 스미스가 품질이 나쁜 전선을 구매한 바람에 어렵게 깔아 놓은 지하 전신선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예정된 시연 일자는 다가오고 전선은 이용할 수 없어 절망에 빠진 모스에게 코넬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전선을 기둥이나 가로수에 매달아 부설하면 남아 있는 시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모스는 7년을 기다려온 시연을 겨우 치러낼 수 있었다. 모스의 전신기로 인해 미국은 전신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화가에서 발명가로 변신
전신기의 실용화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모스는 기술자나 과학자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예일대를 졸업한 후, 영국에서 화가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초상화가로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그림을 좋아하고 재주도 있었던 그는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도 인정을 받아 출품한 그림이 금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전신기 발명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1829년 모스는 초상화 그리던 일을 접고 그림공부를 더 하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3년 뒤 귀국길에 오른 모스는 여객선 살리호의 선상에서 보스턴 대 교수인 잭슨과 알게 됐다. 그와 나눈 대화의 주제는 전자기 원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때 모스는 전선을 통해 메시지를 전기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며칠 후 모스는 필요한 장치의 대략적인 설계도를 만들어 잭슨에게 보여줬다. 귀국 후 모스는 곧바로 이 전신기 제작에 매달렸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사실 모스는 전기에 관해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당시 다른 사람들도 전신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런 그를 도와 준 사람이 뉴욕시립대의 화학과 교수로 있던 레오나르드 게일이었다. 게일은 자신이 알고 있던 전신기에 관한 지식을 모스에게 알려줘 모스가 자신의 구상을 개선할 수 있게 도와줬다. 게일과 조수 알프레드 베일의 도움을 받아가며 밤낮으로 매달린 덕분에 모스는 4년 후인 1836년 전자석을 이용한 전신기를 만들었다. 이듬해 9월에 뉴욕대에서 5백m 길이의 전선줄을 설치해 이 전신기로 문자를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 전신기는 철심을 넣은 전자석이 전지에서 흘러나오는 전류의 작용으로 철편을 끌어당겨 종이테이프에 길고 짧은 선, 즉 모스부호를 찍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송신기에 있는 모스 스위치를 눌러 전류의 펄스를 통신선에 보내면 수신기의 전자석이 철편을 끌어당겨 펜이 종이테이프에 모스부호를 찍도록 돼 있다.
이 전신기는 영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던 윌리엄 쿡과 찰스 휘트스톤 전신기에 비하면 구조도 간단하고 사용하기도 간편한 것이었다. 물리학자 휘트스톤의 전신기는 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6개의 자침을 이용하여 알파벳 문자 하나 하나를 송신하는 시스템이었다. 모스의 전신기가 이미 유럽에서 쓰이고 있던 전신기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보내진 신호가 종이 테이프에 기록된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전문 기술자와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