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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슈퍼 파워’ 가졌지만 저체온증 시달려

 

‘35.7세, 166cm’.


과학동아 편집부 기자들의 평균 연령과 평균 키다. 마감 기간 이들은 13만8000원 어치의 과자를 섭취하며, 퇴근 후 들이붓는 맥주의 양은 가늠하기 어렵다. 미래의 어느 날, 신박한 기계 하나가 발명돼 기자들의 몸을 14분의 1로 줄여버린다면 어떨까. 키 12cm가 된 기자들이 세로 25.7cm인 과학동아를 제작하느라 아등바등할 터이다. 아, 물론 기자들의 평균 나이는 여전히 35.7세다. 1월 11일 개봉한 영화 ‘다운사이징’은 이렇게 신장 180cm인 주인공이 14분의 1로 줄어들어 12.7cm가 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다운사이징하면 돈 걱정은 ‘안녕’이야!”

 

평생 같은 집에 살며, 10년째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때우던 폴 사프라넥(맷 데이먼)은 인간축소 프로젝트인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 시술은 단순히 사람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1억 원의 재산을 120억 원의 가치로 변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프라넥은 궁궐 같은 집을 갖춘 소인(小人)들의 도시 ‘레저랜드’로 떠난다.

 

다운사이징 기술은 생물학자인 요르겐 박사가 모든 유기체의 세포 크기를 축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 시발점이다. 한정된 토양에서 인구가 점점 늘어가며 식량, 식수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르겐 박사가 인도적 차원에서 개발했다. 하지만 정작 이 시술은 사회에서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중산층들의 심리를 자극했다. 월 10만 원 이하의 한정된 소득과 자산으로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저랜드로 떠나기 위해서는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아야 한다. 머리카락, 눈썹 그리고 은밀한 부위의 털까지 신체의 모든 털을 미는 것으로 다운사이징 시술이 시작된다. 수면마취 뒤 금니나 교정기처럼 신체 속 고체 보형물을 모두 제거하고, 몸속 분변도 제거한다. 다운사이징 용액주사 30mL를 주사한 뒤 특수 기계를 가동하면 천지개벽의 세상이 열린다. 한 입에 몇 개씩 털어 넣던 과자가 몸집만 한 크기의 위협적인 물체가 되니 말이다.

 

 

‘슈퍼 파워’ 가졌는데, 체온 조절은 안돼


다운사이징처럼 사람의 크기를 축소한다는 설정은 영화에 종종 등장했다. 1966년 개봉한 고전영화 ‘바디캡슐’에서는 적혈구보다 작아진 의사가 다른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의학 치료를 진행한다. 1990년 개봉한 ‘애들이 줄었어요’에서는 실수로 자녀들이 줄어들어 앞마당 전체를 헤집고 다니는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사람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설정이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사람이 개미만한 크기로 줄어든다면 쓸데없이 강한 힘을 갖게 되는 동시에 피부를 통한 열에너지 손실이 커져 저체온증에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 길이, 면적, 부피의 크기 변화를 간단히 계산해 보자. 영화에서처럼 키 180cm, 몸무게 70kg인 사람이 다운사이징 이후 12.7cm의 소인이 됐다고 가정하자. 다운사이징 시술 전후의 키 비율(L)은 14분의 1이다. 이때 부피의 비율(L³)은 2744분의 1이 된다. 밀도가 일정하다면 질량은 부피에 비례하므로 몸무게는 25.5g 정도 된다. 몸 길이가 비슷한 앵무새(painted tiger parrot)의 평균 몸무게가 55g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운사이징을 거친 사람은 지나치게 가볍다.

 

몸무게는 대폭 줄어들었지만 ‘슈퍼 파워’의 소유자는 될 수 있다. 동물은 근육의 힘으로 움직인다. 근육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는 근육의 단면적에 비례한다. 근육모양은 그대로인 채 몸의 크기가 2배 작아진다면 근육의 단면적은 4배 작아지고, 힘의 세기도 4배로 준다.

 

1. 폴 사프라넥(맷 데이먼)은 다운사이징 이후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뒤 시술을 결심한다.

2. 몸집만한 노란색 장미를 든 사프라넥. 소인국의 세상에는 현실세계의 물건을 판매하는 시장도 생겼다.

 

3. 마지막 잔치를 벌이는 최초의 소인국 사람들. 보드카한 병이면 소인국의 모두가 취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다운사이징 된 사람의 키(L)가 14분의 1로 줄어들 때, 근육의 힘(L²)은 196분의 1로 줄어든다. 대개 사람의 근육은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 배 정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 현실에서 70kg인 사람은 약 140kg까지 들 수 있다. 근육의 힘으로 따지면(140kg의 196분의 1) 다운사이징 된 사람은 약 714g을 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신의 몸무게(25.5g)보다 무려 28배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린다는 의미다. 몸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힘이 강해진다.

 

또 사람의 크기가 이렇게 줄어들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어렵다. 세포 대사 활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열에너지는 몸의 부피에 비례한다. 외부 기온이 체온보다 낮은 경우 몸에서 체외로 발산하는 열에너지는 몸의 표면적에 비례한다.

 

키 180cm인 사람이 12.7cm로 줄어들면 길이(L)는 14분의 1, 표면적(L²)은 196분의 1, 부피(L³)는 2744분의 1의 비율로 변한다. 열에너지의 관점에서 만들어내야 할 에너지는 2744분의 1로 줄어드는데, 피부를 통해 발산되는 에너지는 196분의 1이 된다. 몸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보다 체외로 발산되는 에너지가 14배 더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체온 유지가 불가능하다.

 

전자기력 커져 물 마시기도 어려워


엔트로피 문제도 걸린다. 박용섭 한국물리학회 대중화 위원회 위원장(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은 “사람뿐 아니라 물체의 크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영화의 설정처럼 사람의 크기가 마술처럼 줄어든다면 무질서한 정도를 의미하는 엔트로피의 변화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질서를 유지하며 낮은 엔트로피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잠을 자는 등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 결과 생명체와 환경을 포함한 전체 자연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만약 인간을 제외한 모든 대상의 크기는 유지된 채 인간만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본래 엔트로피를 낮게 유지하던 사람의 부피가 줄어든다면, 사람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이에 따른 신진대사의 양도 함께 줄어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기 전 신체의 분변, 금니 등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처럼 인간에게 속했던 물질들이 환경에 포함되면서 일부에서는 엔트로피가 늘어나기도 한다. 즉, 이 경우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효과와 늘어나는 효과가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설사 사람과 같은 생명체의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활 하기는 불가능하다. 박 위원장은 “사람의 크기가 줄어들면 전자기력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며 “가령 아주작은 컵에 물을 담아 마시려고 해도 물방울이 컵에 붙어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 마시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모습이었을 때처럼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소변을 보는 등 모든 행동이 레저랜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기후변화 막을 다운사이징


한편 영화에서 다운사이징은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 멸종이라는 전 지구적 문제에도 연결된다. 후반부에서 사프라넥은 요르겐 박사가 있는 최초의 소인국 마을에 찾아갔다가 기후변화로 인간의 멸종이 확실시됐다는 얘기를 듣는다.

 

인간의 크기를 줄이면 쓰레기와 배기가스, 생활하수 등 인류가 배출하는 폐기물의 양이 줄어들고 지구도 서서히 기후변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류의 멸망도 막을 수 있다. 다운사이징 기술은 이런 목적에서 개발됐지만, 시술을 받은 인구는 전체의 3%뿐이었다. 나머지 97%가 야기한 환경오염이 기후변화의 속도를 막지 못했다.

 

최초의 소인국 사람들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지하에 구축한 벙커로 들어간다. 자체 발전 설비, 각종 곡물의 씨앗과 동물 등을 갖춘 소인국판 ‘노아의 방주’다. 물론 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인류의 멸종이 바로 시작되진 않을 것이다. 소인국 사람들이 벙커로 들어가는 이유는 지구가 복구될 때까지 벙커에서 숨죽여 지내며 인류 종족을 보존하겠다는 사명감이다.

 

사프라넥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사명감을 가진 최후의 인류가 돼 벙커로 들어설지, 아니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것인지. 당신이 14분의 1로 줄어들었다면 인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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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권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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